이토록 철저한 직업 정신이라니.. <존오브인터레스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고

by 김태경

직업은 사람에게 중요하다.

의식주를 이어주는 생계수단이자 사회적 상호관계 속에 자신을 내놓으며 적성과 역량을 시험당하는 장이기도 하다. 조직이 원하는 성과를 달성하면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부(富)을 쌓을 수도 있다.

아이들은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가질지에 대해서 배운다. 세상에 있는 수만 가지의 직업들 대해서 알아보고 그 직업을 가지기 위한 학업적, 개인적 포트폴리오를 설계해 나간다.


중학생 아들은 단순하다.

발군의 실력으로 유명 노래를 커버한 유투버가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샀다거나,

전 세계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들이 콘서트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온라인상 썰들을 보며 유투버를 한다는 둥, 아이돌을 한다는 둥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유명인들이 몇 십억 아파트를 현금으로 샀다거나 페이커나 손흥민의 개런티가 이슈가 되어 몇 십억, 몇 백억이 뉴스에 나오면 그런 돈들이 어떤 수준의 양인지를 인지하지 못한다. (나는 이런 뉴스들에 이질감을 느끼지만, 아이들은 호기심 어려하는 듯하다)


서당 훈장, 교장선생님이 할법한 훈계조의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 오르지만 참아낸다.

'아들아, oo직업을 선택하냐도 중요하지만 ooo 한 사람이 돼서 그 직업인으로 살 것인지가 더 중요하단다'


내가 가장 보고 싶던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를 드디어 봤다.

분명 지루하고 재미없는 장면들과 대화들 뿐인데 마치 악마를 본 것 같은 불편함을 주는 영화다.

기승전결도, 클라이막스랄 것도 없는데 상당히 많은 생각과 감정을 유발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고작 담벼락 하나를 두고 있는 집, 동화책에 나올 것 같이 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과 자로 잰 듯 균형 잡히게 설계된 마당의 수영장, 깔끔하고 정돈된 내부, 그림 값은 그 저택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이 살고 있다.

소장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는 중이다. 최고이자 가장 빠른 성과를 내는 조직의 일등 공신. 그의 성과를 조직이 미처 알아주지 못할 때 행정직으로 발령이 나지만 당시 최고 경영자였던 히틀러가 그의 실적을 알아본 후에는 다시 아우슈비츠의 소장으로 복귀하게 된다.


"당신만큼 빠르게 많은 성과를 내는 사람은 없다"


그는 그 아름다운 집에서 유대인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는 가스실 설계에 대한 회의를 하고, 그 결과로 헝가리 유대인들을 가장 많이 수용하는 프로젝트의 핵심인물이 되기도 한다.

그가 키우는 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마구 먹어대고, 발령으로 집을 떠나야 할 때 그는 마구간으로 가서 키우던 말과 교감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의 아내는 자신이 꿈꿔 왔던 삶이 바로 여기에 있다며 정원을 꾸미고 가꾸는데 올인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 곁을 떠날 수 있었음에도 그곳에 남아 살기고 선택한다. 그의 아이들은 매일 담벼락 너머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목격하고 밤이면 활활 타는 뜨겁고 거대한 불길을 마주한다. 예쁘고 멋진 옷을 입고 학교에 가고 강가에서 배를 타며 독일장병 놀이를 하며 부유하고 평온하게 일상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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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홀로코스트 영화와 달리 단 한 번도 죽는 유대인을 보여주지 않음에도 연기와 불,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들로 그 잔악성이 전달된다. 그 참혹함을 전 세계, 전 세대가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진행되는 영화적 연출은 그 고통을 다시 상기시켜 줌에도 불구하고 학살자(악,惡)의 완벽성, 평범성을 충격적으로 각인시켜 주며 지금 시대로까지 생각을 연장시켜 준다.


지금도 여전히 악은 완벽히 평범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말이다.


그들은 그저 군인으로서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역사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의 실행자라는 사실에 면죄부를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저 내게 맡겨진 일을 했을 뿐이라는 그의 변명은 스스로 악마라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디까지 성공해서 살아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내 자식들과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인가를 목표로 살아가야 하는 듯하다.

모든 선택은 최소한의 인간성을 바탕 한 것이어야 하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장땡이라는 생각 역시 최소한의 도덕성과 양심 선을 기준해야 하는 것이다.


영화 속 수용소장은 실제인물이다.

그는 45살에 처형당했고, 그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조국을 떠나 비참하게 살았으며, 아직까지도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가 유대인 학살의 부역자였다는 사실로 숨어 살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최악의 전쟁범죄자임에도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제작되어 전 세계에 상영되고 있지 않나!

그는 놀라울 정도의 고도의 직업 정신과 완벽한 자기 관리, 가정을 꾸렸지만 그는 앞으로도 영원히 홀로코스트 역사의 주요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정말 잘 만든 영화이기 때문이다.


역사 혹은 기억된다는 것은,

꽃밭에 사는 '악마'가 되지 말고 별 볼일 없더라도 '생각하는 양심적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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