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2010년 영화 <허트 로커>를 만든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영화이다.
<허트로커>에는 미군이 잔뜩 등장하지만 그들은 영웅이 아니고, 미국과 언제나 대척점에 서 있는 중동 사람들은 정체 모를 시선으로 총을 겨눈 미군들을 바라보고 있다. 영화는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교훈 따위 늘어놓지 않은 언제 폭탄에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 속에서 병들어 버리고 만 군인을 묘사한다.
2025년 11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전쟁터를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배경은 백악관 상황실, 미국 국방부장관 사무실, 미국 대통령이 타고 다니는 차와 에어포스원 안이다. 테러집단도 폭발 장면도, 전투 신도 없다. 누군가 미국을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고 미사일이 도착하기까지 남은 24분 동안 정치적, 군사적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진 자들의 당황스러움과 공포심을 보여줄 뿐이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이 가장 잘하는 리얼리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24분 뒤면 시카고에 핵 미사일이 떨어진다
이 영화에는 딱 이 사람이다 할 주인공이 없다. 백악관 상황실에서 근무하는 워킹맘, 딸과 관계가 소원한 국방부 장관, 격무에 시달리는 대통령, 임신 6개월 아내가 있는 국가안보부 부보좌관,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받고 있는 미사일대대 장교.. 일터가 좀 특별할 뿐 등장인물들의 삶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각, 백악관 상황실은 미국을 향해 발사된 ICBM을 확인한다. 위성이 해킹되었는지 누가 쐈는지도 모른 채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핵미사일이라는 말은 안 나오지만 ICBM이 주로 핵미사일을 탑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니 영화 속 인물들은 자연스레 핵 미사일이라 여기는 듯하다(이 부분의 나의 무지가 약간 있다). 조금 후면 시카고에 떨어질 이 미사일은 시카고에 살고 있는 천만명의 시민들의 삶을 초토화 시킬 것이다. 시카고만이 문제가 아니다. 미사일의 여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매뉴얼에 따라 자국을 향한 미사일에 고가의 요격 미사일을 발사하지만 맞출 확률은 사실 동전 뒤집기와 비슷했고, 요격은 실패한다. 이제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결정은 하나다. 보복할 것인가 말 것인가
다 죽을 판인데 히어로가 없는 미국
영화 <인디펜덴스데이>에는 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자충을 불사한 우주비행사들이 나오고 <미션임파서블>에는 인류 평화를 위해 환갑이 넘어서까지 몸을 갈아 넣는 에단 헌트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 히어로는 없다. 백악관 상황실 책임자는 불발일 수도 있다며 동료를 안심시키지만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어린 딸을 차에 태우고 최대한 서쪽으로 도망치라고 말한다. 미국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은 미국 시민들 생각은커녕 시카고에 살고 있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로서의 삶을 회개하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국가가 부여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스스로 져버리고 만다. 대통령이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핵미사일 발사 시나리오 중 선택하라는 재촉에 고작 한다는 게 부인에게 전화하는 일이다. 어디서 누가 쐈는지도 모르는데 도대체 어디로 쏘란 말인가. 2분 뒤면 다 죽을 텐데 우리만 죽을 수는 없으니 죽기 전에 우리도 미사일을 쏴서 보복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게 정말 맞는 말인가
감당도 못할 거면서 뭔지도 모르고 폭탄을 가득 채워 놓기만 한 집, 누가 책임 질 것인가
2시간 가까운 영화는 24분의 상황을 3가지 배경과 인물들을 묶어 반복해서 보여주는데 그 덕에 관객은 수화기에 대고 말하는 자와 수화기 너머 듣는 자의 표정과 상황을 모두 목격하게 된다. 이들은 국가 안보에 중요한 위치에 있는 훈련받은 엘리트 전문가들임에도 불구하고 임박한 죽음 앞에 극도의 불안을 내보이며 횡설수설한다. 영화 제목처럼 집을 지키기 위해 집에 폭탄을 가득 채워 놨는데 다른 누군가가 불울 붙인 상황이 되었는데 뭘 할 수 있겠나. 안절부절 전전긍긍할 수 밖에. 감당도 못할 거면서 온갖 폭탄들을 쌓아두고 몸 둘 바를 몰라하는 영화 속 고위관료들의 모습을 보는데 자괴감이 들었다. 영화가 보여주는 극도의 현실감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생과 사는 보유한 무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면 대체 누가 무엇으로 책임질 수 있는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 쏠 수 있다면 맞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영화는 그래서 시카고가, 미국이 어떻게 됐는지 보여주지 않고 끝난다. 사람들은 속 터진다며 별점 테러를 하기도 했지만 나는 의견이 다르다. 결론은 중요하지 않다. 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정한 그 모든 과정은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신뢰롭지 않으며,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 않나.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전쟁을 시작한 이상 끝낼 명분을 찾기 위해 온갖 짱구를 굴리고 그러는 사이에 수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고 집을 잃고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캐서린 비글로우는 이 영화를 통해 미국도 타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미국이라고 뭐가 다를 것 같냐 되묻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모두가 결정을 어려워하고 주저하는데 도대체 트럼프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인간의 불완전성은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으니 트럼프가 이러는 건 완정성과 관계없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미쳤거나 생각이 없거나..
몇 사람의 결정으로 일어난 전쟁이 부디 빨리 끝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