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7월 22일>을 보고
오래전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주관적 행복지수 즉 아이들 스스로가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는 정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노르웨이였던 게 기억난다. OECD국가에 사는 아이들 중 가장 덜 행복했던 우리나라 아이들과 대조되어 부러움과 씁쓸함이 있었다.(어차피 안될 거, 계속 이럴 거면 그냥 OECD 탈퇴가 답 일 수도 있다.)
이케아로 대변되는 단조로움과 실용적인 생활방식, 가족과 소박하고 여유로운 안락한 환경을 최상위 일상 행복으로 여기는 북유럽인들의 휘게라이프, 연대와 협력으로 사회를 지탱해야 한다는 참여 지향적인 교육방식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노르웨이를 이상적인 곳으로 이미지화했다.
1. 행복한 줄만 알았던 노르웨이에도 테러가 있었다니..
우연히 알게 된 이 영화 <7월 22일>은 세계현대사에 대한 나의 무지와 얼토당토않았던 환상을 깨주었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테러가 있었다. 테러(Terror)는 두렵게 하고 공포에 떨게 한다는 뜻이다. 많은 국가에서 일어난 무차별적이고 잔인한 테러를 보며 두려움과 공포심을 느꼈지만, 이 노르웨이에서 일어났던 테러는 그 방식과 테러대상에 있어 단연코 충격적이었다.
이민자에 대한 혐오와 이슬람의 축출을 주장하는 나치주의자처럼 보이는 최극우적 생각을 지닌 남자 하나가 테러를 자행한다. 총리가 있는 건물에서 폭탄이 터졌고, 노동당 주최 청년 캠프를 위해 모여 있던 10~20대 아이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 총을 난사했다. 아니, 난사가 아니라 저격이었다. 그것도 경찰 옷을 입고.
캠프가 밤섬 같은 섬에서 일어났던 탓에 한 명 한 명 저격하는 테러리스트를 피해 아이들이 여기저기로 도망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말 그대로 무차별, 무관용적으로 도망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향해 총을 쏘고 다가가 확인사살을 하는 잔인함도 서슴지 않았다. 공포 속에서 도망 다니는 것 외에 할 게 없었던 아이들 중, 빌야르는 테러범이 저격한 5발의 총을 맞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는다. 더 이상 테러범의 총알을 맞을 일은 없지만 그날 이후 빌야르의 인생은 달라졌다. 그날 아이들이 있던 우퇴이아 섬에서는 68명의 아이들이 사망했다.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에도 테러가 일어난다는 것, 미국의 MAGA나 우리나라 부정선거 주장을 하는 극우 세력이 북유럽에도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결국 잘 살아내는 행복한 국가는 없는 건가? 인간의 만용과 이기심, 편협함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정말로 없단 말인가?
2. 테러 후 테러 같은 일상을 연출한 제이슨 본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
맷 데이먼 주연의 제이슨 본 시리즈는 제임스 본드 영화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했다. 가제트 같은 화려한 무기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무기로 써서 좁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혈투는 긴장감과 현장감 넘쳤다. 내가 바로 영웅이오 하며 등장하는 주인공 신도 없었고 늘 좁고 어두운 길로, 작은 가방 하나만 맨 채 조용히 인류를 구하는 영웅 요원의 영화는 말 그대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영웅 시리즈를 알렸다.
이 영화가 끌렸던 이유도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었다. 테러가 끝난 후를 어떻게 다룰지가 궁금했다. 영화적 상상으로도 할 수 없던 실제 테러 사건은 도망치는 아이들의 공포를 실감 나게 그렸고, 테러가 끝난 후 테러범의 재판 장면, 생존자들의 무너진 삶을 담백하고 과장 없는 연출로 목격하게 해 주었다.
3. 약한 동시에 강할 수 있다는 사실
이 영화는 피해자의 회복을 극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빌야르는 생존자였지만 생존한 것 같지 않았다. 친구들은 모두 죽었고, 걸을 수 없었으며 한쪽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러범이 쏜 총알 파편은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테러범은 뇌에만 파편을 남겨둔 것이 아니라 빌야르와 빌야르 가족 인생 전체에 지울 수 없는 파편을 남겼다.
테러범의 재판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한 빌야르는 반성 없는 테러범에게 복수하고 싶었고, 약해진 몸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몸의 회복을 스스로 다그치기까지 한다.
하지만 테러범에게 한 진짜 복수는 테러의 파편으로 무너져 버린 삶임에도 이전과 같이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친구들을 잃었고, 시력도 잃었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나를 응원해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저 테러범은 혼자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다"
자신과 정치신념이 다른 게 꼴 보기 싫었다면 신념을 바꿔달라고 호소를 해야지 왜 총을 쏘냔 말이다.
끝까지 반성하지 않았던 정신 나간 테러범을 영화로 봐도 분노가 치미는 데 생존자들이 느꼈을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과 연대, 평범한 일상을 말하는 생존자들에게 인류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배워야 한다.
목격자들은 악에 동조하거나 선동당하지 않는 것이 평범함임을 알고 실천해야 하며,
생존자들은 인간다움과 희망의 이정표가 되어 삶을 지속해 나가 주길 바란다.
희생자 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