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마(硏磨) 중일 것이다.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를 쉬고 집에 있으니 일과가 참 루틴하다.
일어나서 책 읽고 유튜브 보고 요가하다가 아이들이 일어나면 아침 식사 챙겨주고 학교를 보낸다.
이제 다 커서 학교를 보낸다는 표현은 좀 그렇고 학교를 알아서 간다.
그리고 며칠은 동네 공원을 빠르게 걸으며 운동 비슷한 것을 하기도 하고
또 며칠은 유튜브에서 찾은 홈트 근력 운동 50분짜리 영상을 틀어 놓고 흉내 내며 나는 지금 운동이란 것을 하고 있다는 자기 위안을 얻으며 헉헉 거린다.
샤워를 마치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다음에 뉴요커라도 되는 냥 커피를 내려서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노트북을 펴서 글을 쓴다.
나는 4개의 브런치 북을 연재 중이다.
소설(단편소설 중심)을 읽고 든 생각을 쭉 써 보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든 생각을 쭉 쓰기도 하고,
요즘에 빠져 있는 시집 속 시를 읽고 시가 주는 감성을 글자로 옮겨내는, 재미있는 애를 쓰고 있다.
최근에 시작한 육아휴직 후 나의 일상 기록은 브런치 북의 많은 작가들의 글을 보고 영감을 얻은 것이다.
글이라는 게 꼭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써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평범한 개인의 소소한 일상 속 생각들을 쓴 글을 통해서도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배움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점심 즈음이 되면 또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며(왜 계속 먹는 걸까.. 이 먹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로 생각을 정리해 볼 생각이다) 주로 뉴스를 시청한다. 뉴스 외의 채널은 가급적 접근하면 안 된다.
특히 OTT... 쉽게 TV에서 나올 수 없게 만드니 말이다.
그렇게 TV 채널 몇 바퀴 돌리고 나서 다시 책상에 앉는다.
읽던 책을 펴서 읽기도 하고, 블로그에 영화감상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오전에 썼던 서랍 속 글을 다시 꺼내어 읽으며 수정하고 빼고 덧붙여 쓴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집으로 온다. 오는 시간에 맞추어 간식을 준비해 두는데 집에 들어온 아이들이 이제 곧, 즉시 무언가를 입에 넣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안 순간 나타내는 그 기쁨의 표정이 매우 흐뭇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애들이랑 이 얘기 저 얘기하다 보면 저녁 식사 준비할 시간이 된다.
준비된 저녁은 남편이 돌아오면 아이들과 함께 먹는다.
오늘 있었던 일, 내일 하려고 하는 일, 아이들 이야기 등 주저리주저리 떠들며 밥 먹고, 정리하고 나면 금세 저녁이 훌쩍 지나간다.
회사 다닐 때는 회사에서 참 치열했다.
여러 개의 회의에 참석해서 머리를 쥐어짜 내고 스케줄을 정리했고,
보고서 기한을 맞추기 위해 이거 저거 하다가 결국 어느 날은 일을 집으로 싸 들고 온 적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집에 와서 늦은 저녁 먹고 씻고 소파에 앉으면 그제야 머릿속으로 회사 일을 정리한다.
내 하루의 에너지는 모두 회사에서 소모되었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사무실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이 일 저 일을 의논하며 말도 많이 하고 다양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상대적으로 말도 별로 안 하고 움직임도 적다. 하지만 창문 밖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봄 햇살을 흠뻑 맞으면서, 책과 영화 속 이야기에서 교훈을 찾으려 생각하는 시간을 통해서 그리고 생각을 글로 뱉어내며 수사해 보려는 나름의 안간힘을 통해 오히려 내 사고가 조금 더 넓어지는 것 같고, 내 마음이 좀 더 관대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지금 어디에 앉아서 세상을 보고 있느냐 보다는,
얼마큼의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쫓기지 않고 하고 싶은 생각을 계속 이어서 할 수 있는 것,
글이든 그림이든 내 속을 꺼내서 반추해 볼 수 있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과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따뜻한 햇살과 봄의 싱그러움을 어딘가에 앉아서 꽤 오랜 시간 동안 느낄 수 있는 것,
일요일 늦은 오후면 찾아왔던 다음 주 회사 스케줄과 과업 생각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것..
이것들이 대표적으로 좋은 것 같다. 회사를 다니다 잠시 휴직을 하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들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고요해 보이고, 별 것 없는 것 같아 보여도 모두 다 시간으로 값을 치르고 있는 것이기에
반드시 그 열매를 확인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일상의 충만함으로, 감사함으로, 끊임없이 내 속에서 생겨나는 생각들을 끊어내지 않고 바르고 건실하게 내 속에 자리 잡게 하는 법을 연마(硏磨) 중이.. 연마 중인 것이기를 바란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이 귀한 시간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