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행복, 육아의 연장선 '밥'
주변에서 출산을 하면 축하 인사를 건넬 때 꼭 내가 덧붙이는 말이 있다.
"축하해. 그리고 고단한 행복의 길에 들어선 걸 열렬히 환영한다"
갓난아기를 돌본다는 건 잠을 제대로 못 잔다는 말과 같다. 4시간마다 수유를 하든지 분유를 먹여야 한다.
수유일 경우,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으므로 젖을 갖다 물려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내가 가장 편한 자세로, 선잠이라도 잘 수 있는 자세로 수유할 수 있을지 그 잠결에도 궁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분유일 경우, 부엌으로 나가 불을 켜고 젖병에 분유를 넣고 물을 데워야 한다. 남편이 도와주기도 하지만, 아침에 일 나가야 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그냥 자라고 했다. 이게 갓난아기를 둔 엄마와 아빠가 따로 자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기가 조금 커서 배변을 화장실에서 할 수 있게 되면 똥을 닦아 달라고 부른다.
모든 아빠가 그럴 일은 절대 없지만, 모든 엄마는 아이의 똥을 보고 더럽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똥 싸는 아이의 표정을 보며 한계없는 사랑을 느끼고, 똥의 모양과 색깔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기를 서슴치 않는다.
하루도 빠짐없이 투닥거리는 아이 둘을 보면 절로 목소리가 커진다. 아동학 전공하면 뭘 하나.
본능을 숨길 수 없는 것을... 그래도 아이 둘이 노는 걸 보면 '아~행복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며 행복해 한다.
온갖 세상의 풍파 속에 있던 엄마 아빠는 집에 돌아와 아이가 보여주는 미소 한 방에 무장해제 된다. 그러니 육아는 고단한 행복이 맞다. 이것 만큼 사람의 일생에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이가 다 자란다고 엄마의 고단함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다 컸다고 생각하는 자식이 제 어깨 위에 제 짐을 올려두는 것뿐이다. 아이가 커 갈수록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고, 똥을 닦아주고, 새벽에 열나면 수건으로 계속 문질러 대던 엄마의 고단함은 어린이집을 거쳐 초, 중, 고등학교를 거쳐가며 일상의 노심초사로 변모해 갈 뿐이다. 그리고 엄마는 젖병, 기저귀 대신 '밥'을 손에 쥔다.
내가 회사를 다닐 때는 친정엄마가 집에서 아이를 봐주셨어서 집에 오면 대부분 저녁을 차려 주셨다.
그게 일상이었으므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내가 이제 전업주부가 되어 보니, 세상 가장 큰 걱정이 저녁 반찬 걱정이다. 일 마치고 집에 오는 남편에게 뭘 먹일까.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에게 어떤 간식을 주고 저녁밥상으로 뭘 차려야 배부르게 먹게 할까.. 이게 매일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이다.
오늘 아침, 전례 없던 내 늦잠으로 큰 아이가 늦게 일어나 빈속으로 학교에 갔다. 무슨 죄지은 것 같은 감정이 잠시 몰려왔다. 그리곤 생각한다.
'이따 4시 넘어 집에 오면 푸짐하게 간식을 차려 줘야겠군. 저녁은 뭘 먹어야 배가 든든하려나..'
전업주부로 있는 내게 아무도 저녁밥을 차려 내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시켜 먹어도 되니까 그냥 편하게 너 하고 싶은 일 하라고 우리 남편이 말해 주지만, 또 그게 안 된다.
쌀에 잡곡 넣어 저녁 시간 맞추어 따뜻하게 지어내고, 국이나 찌개는 하나씩 내고, 아이들 좋아하는 반찬 만들고, 우리 남편 좋아하는 고기도 가급적 이틀에 한 번은 저녁 상에 올리려고 노력한다.
거창하게 '요리'까지는 아니지만 음식 몇 개 만들고, 후다닥 먹고, 설거지와 뒷정리에 주말 즈음 되면 손목이 시큰 거리기도 하는데 나는 이제 그게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말하는 그런 일 말고, 내가 아이들에게 물릴 수 있는 젖병, 갈아주는 기저귀, 소풍 때 싸 주는 도시락 같은 거 말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집에 오면, 주말이면 쉬어야 하는데 내가 밥 짓기에 설거지에 청소까지 다 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괴로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괜히 가만히 있던 남편에게 왜 가만히 있냐고 짜증부리기가 다반사였다. 근데 이제 이런 짜증은 없어졌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변한 게 아니라 회사에 가지 않으니 시간적으로 정서적으로 생긴 내 여유가 나를 괜찮은 인성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만들어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이제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건네는 인사말 "밥 먹었어?"는 "별일 없지? 잘 지내고 있어?"라는 말이고, 특히 엄마 아빠가 자식에게 "배고프지. 밥 먹을까?" "집에 와서 밥 먹어" "뭐 먹고 싶어 밥 먹으러 가자"라고 하는 말은 "아이고 우리 이쁜 애기, 별일 없었어? 아이고 이뻐라. 뭐 먹고 싶어? 필요한 게 뭐야? 아이고 내 새끼 아픈 데는 없어? 엄마 아빠한테 뭐든 말해. 다 해결해 줄게"라는 말이라는 걸 말이다.
내가 이래 봬도 결혼한 지 15년이 넘었고, 10살 넘은 자식이 둘이나 있는데도, 이 말이 그런 의미라는 걸 스스로 깨달아 가는데 이 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오랜 회사 생활을 잠시 쉬고 집에서 전업주부로 살며 간식과 저녁을 만들 수 있는 내 모든 상황이 부족함 없이 딱 알맞은 것 같아 참 감사하다. 할 수 있을 때 많이 해 두어야 겠다.
이따 우리 큰 아이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감자+옥수수콘+치즈 전에, 핫케이크에, 시원한 참외 깎아 먹여야지. 저녁은.. 뭘 해야 하나.. 어디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