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가야 할 길이라면 <늪>

정호승의 시 <늪>을 읽고

by 김태경

그 옛날에는 누군가와 '사랑'하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감정 변화에 오르락내리락하며 혼자서 영화 주인공이 되었더랬다.

내가 주인공인 줄 아무도 모르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결혼을 인생의 종착으로 여기기도 했고

40살, 50살이 되는 건 상상도 안 했었다.


40살이 넘으니

남녀 간의 사랑은 예쁘고 귀여운 소꿉놀이처럼 여겨지고

결혼, 출산, 육아는 인생이 줄 수 있는 최고치의 행복한 고난이구나 싶다.

그리고 그 너머에 또 다른 삶의 여정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늙어가는 부모님을 보며 죽음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고

갑자기 찾아온 노안(老眼)과 약해진 체력은 내게 속도를 조절하라 요구한다.

커 가는 자식을 보며 인류애와 사회정의가 정말 중요한 가치라는 걸 느끼게 되고

어느 날은 내 유언장에 삶에 대해 뭐라고 적어둘지를 생각하며 내 노년을 그려보기도 한다.


매번 마주하는 삶 속 산 너머에는 특별한 뭔가가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평한 태양과 시간이 있고,

우리가 다 알 듯 한 명도 예외 없이 겪는 육체의 노쇠함과 죽음이 있다.


다만 그 산을 힘겹게 넘어가는 내 마음이 어떤지에 따라 여정길이 달라질 뿐.

생각했던 것보다 험난하고, 남들이 오르는 산길보다 외지고 어두울 순 있겠지만

내게 주어진 내 길을 걸어가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그러니 절망, 불만, 분노 같은 마음을 지니고 산을 넘는 것보다

소망, 믿음, 감사, 웃음, 희생 같은 걸 지니고 도착해 나의 여정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놓는 게 어떨까.

그리고 또다시 내 앞에 있는 산을 넘어가는 거지.


그럴 때 나와 같이 길을 가는 사람이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말해 준다면

나 역시 삶이 준 찬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된다면

여정길이 좀 덜 힘들지 않을까.


꼼짝없이 넘어야 할 산이고,

건너가야 할 늪이라면 희망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 것 같다.




-정호승


지금부터

절망의 늪에 빠졌다고 말하지 않겠다

남은 시간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희망의 늪에 빠졌다고 말하겠다

절망에는 늪이 없다

늪에는 절망이 없다

만일 절망에 늪이 있다면

희망에도 늪이 있다

희망의 늪에는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가득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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