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o대 중년 여성의 자격증 시험 도전
육아 휴직을 시작한 지 4개월이 꽉 찼다. 정말 시간이 빠르다.
휴직을 시작할 때 몇 가지 목표를 세운 게 있었다. 목표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말고 휴직이 끝나고 회사로 복직할 때, 나 스스로 '그래 좋은 시간을 잘 보냈어'라고 할 만한 것들로 정했다.
-읽고 싶던 책을 마음껏 읽는 것, 생각을 차분차분 정리하고 꾸준히 글로 써내려 가보는 것
-매일 프로젝트(매일 운동하기, 매일 성경책 읽기, 매일 읽고 쓰기)
-오랫동안 못 만난 친구, 동료 만나기
-주중 봉사하기 등이다.
이렇게 하다 보니 나는 정말 좋았다. 마치 혼자 소꿉놀이, 인형놀이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재미있었다.
그런데 뭔가 그랬다. 조직 생활을 20년 가까이해서 그런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일종의 공식적 성과물 같은 게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격증을 따 보기로 했다.
나는 대학, 대학원 졸업하고 바로 입사를 했기 때문에 요즘 젊은 친구들처럼 소위 스펙을 위한 자격증 따기에 도전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일만 했다. 일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애기 둘 낳고..로 살다 보니 자격증에 도전해 볼 시간도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어떤 자격증을 따 볼까부터 생각했다.
이왕 공부해서 딸 건데, 앞으로 두루두루 도움이 될 만한 것 위주로 찾았다.
일단 영양사 자격증을 찾아봤다.
부모님, 아이들, 남편, 내 건강을 위해 공부해 보자 싶었는데 자격조건의 문턱에서 걸렸다. 식품영양 관련 학사 학위가 있어야 했다. 아무리 학점은행제와 같은 옵션이 있다고 해도 그 정도까지 도전할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영양 관련은 도서관에서 책 빌려 보기로 하고 접었다.
두 번째로 경영 관련 자격증을 찾아봤다.
경영 쪽이 다분야에 대해 두루두루 알 수 있게 되는 개론적인 부분이어서 관련 공부를 하면 나에게 상식이나 교양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물론 복직 후에도 회사에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영어라는 문턱이 있었다. 공인 영어 점수가 요구되었는데 내가 지금 이 나이에 토익 토플 이런 걸 다시 공부하는 건 무리다. 안돼 안돼 영어 싫어 싫어..
그러다 요즘 핫하다는 데이터 분석 관련 자격증으로 눈이 갔다.
국가공인이긴 하지만 아직은 일정한 필수분야의 학사 학위를 요구하지 않고, 자격증의 레벨도 기초, 심화, 전문단계까지 있어서 기초 수준에는 도전해 볼만했다. 그래서 무턱대고 응시를 했다. 그리고 책을 샀다. 그리고 시험을 앞둔 1개월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첫 번째 도전 자격증은 [데이터분석준전문가]이다.
빅데이터로 큰 결정들을 하는 시대인데,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로 가는 엄청 초입길인 듯하다.
기본적인 개론은 이해하고 외우면 되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통계였다. 숫자들을 어떤 통계툴을 이용해서 분석해서 결과를 해석,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하는 뭐 그런데.. 다행히도 대학원 때 통계학을 잠시 배웠어서 아주 기초부터 하지는 않아도 되었다.
데이터분석이라는 것은 사실 그간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분야였었는데 공부를 해 보니,
-'대학, 대학원 시절 엄청 비싼 등록금 내고 배웠던 내용들이 모두 쓸모없는 건 아니군' 하며 이제라도 내게 쓸모가 되어준 그때의 지식과 경험이 새삼 감사했다.
-회사에서 많은 숫자들을 놓고 분석하는 일을 했었다. 나는 그게 데이터 분석이라는 걸 알지 못했고 엑셀을 이용해서 지금 나타나는 현상들을 어떻게 볼 것인지, 문제를 찾고 대안을 만드는 일인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머리 아프고 힘겹게 했던 일들이 이 공부를 할 때도 쓸모가 되어주었다. 더 나아가 '아! 그 일은 이렇게 했으면 더 잘할 수 있었겠구나' 싶기까지 했다.
40년 넘는 인생, 그리고 성인이 된 후 20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내가 배웠던 지식, 경험들이 내 속에 남아있었다. 그걸 40대 중반이 되어 꺼내 보니 완벽하게 기억되는 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아서 인생에서 쓸모없는 경험은 없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두 번째 도전 자격증은 [SQL개발자]이다.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분석, 조회해 주는 전문 프로그램에 넣고 이런저런 결과물을 산출해 내는 일이 있는데 이때 사용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를 공부하는 자격증이었다. 자격증 이름이 개발자이지만 그 위의 전문가 단계나 빅데이터분석기사 관련 자격이 있어 이것 역시 이 분야의 가장 초입길인 자격증으로 보인다.
내가 했던 컴퓨터 사용이라곤, 검색해서 찾고 보고 복사하고 붙여 넣고 정도가 다인데 이거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그러니까 외국어 하나를 습득하는 것과 유사해서 쉽지 않았다.
근데 또 하려고 하면 토익토플을 다시 하는 거나 영양학과를 학점은행제로 이수하는 것에 비하면 수월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이것 역시 일단 응시했고, 책을 샀고, 시험 한 달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이것 역시 공부를 해 보니,
-이런 분야가 있구나, 숫자들의 조합으로 정말 많은 해석들을 해대는구나 하고 신기한 지식을 조금 얻었고,
-회사에서 했던 그 분석들을 이런 방식으로 했다면 좀 더 효과적이었을 텐데, 역시 전문가가 필요하군 이라며 새삼스레 회한에 젖기도 했다.
나이 들어 공부하는 게 쉽지 않지만, 더 어려운 공부를 하시는 분들이 있을 테니 엄살을 피우지는 못하겠다.
그냥 책 사서, 읽고, 또 읽고, 외워야 할 것들 외우면 되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첫 번째 도전한 자격증은 다행히 한 번만에 합격했고, 두 번째 도전 자격증은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간당간당하게 된 것 같은데 또 간당간당하게 안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실제로 저 자격증을 내 스펙으로 쓴다고 직종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몇 가지 배운 게 있다.
-젊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스펙을 쌓는 노력을 하는 것이 대견하다 여겨졌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가서 공부하고 졸업한 것도 칭찬받을 만한 일인데 바로 취업 못하고 또 공부하고 또 공부해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청년들의 어려움이 조금이나마 안쓰럽게 여겨졌다.
-내가 이 자격증을 못 딴다고 해서 내 삶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내가 스스로 세운 작은 목표에 도전해서 성공적인 결과물을 얻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나태와 무료함에 빠질 수 있는 일상에 긴장감을 주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두 가지 자격증을 보러 고사장에 갔는데, 젊은이들 속 중년은 나 밖에 없었다(적어도 내가 봤던 응시자 중에서는 말이다). 처음에는 조금 부끄러웠는데 생각해 보니 부끄러울 일은 아니고 나 스스로 대견하게 여겨보자, 40대 중년의 여성도 이런 핫한 분야의 자격증에 도전은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라 주는데, 마치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처럼 혼자 생각하며 키득키득 웃으며 귀가를 했다.
우리는 스트레스받는 걸 싫어하지만, 스트레스가 아예 없는 일상이 우리에게 반드시 유익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예전에 배운 기억이 있는데 스트레스에도 인간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쁜 스트레스인 디스트레스(Distress)가 있고, 동기부여와 도전정신을 가져다주어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괜찮은 스트레스 즉, 유스트레스(Eustress)가 있다고 한다.
나에게는 두 자격증 도전과정이 유스트레스로 작용한 것 같다.
중력에 몸을 맡겨 전신을 방바닥이나 침대에 붙이려는 여유부림은 조금 줄이고
적당한 긴장감으로 나를 자극하는 것이 나를 위해 좋은 것 같다.
오늘 우리 자신에게 임하는 유스트레스는 뭘까를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내가 지금 이 시간에 받고 있는 유스트레스는 이따 아이들 오후 간식거리와 저녁 찬거리 정하기, 그리고 글쓰기이다.
디스트레스만 있지 않고 유스트레스도 있어서 다행스럽고 감사한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