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산책이라는 호사스러운 일상

모든 생명은 여린 가지에서 시작하는 법

by 김태경

남편 출근하고 아이들 학교 가고 나면, 나도 집을 나선다.

챙 모자 쓰고, 운동화 신고, 휴대폰과 블루투스 이어폰을 챙겨서 집 앞 공원으로 간다.

나는 누구보다 나의 게으름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아이들 나갈 때 스스로를 몰아서 내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회사 다닐 때는 출근 준비하고 나가기 바빴는데 지금은 아침공기와 밝은 햇볕 한가득 들어오는 공원에서

내 몸이 제집인양 30년 넘게 거주 중인 무거운 지방들에게 제발 떠나가라 재촉하며 걷고 또 걷는다.

언제든 하긴 해야 할 복직이므로 지금 누리는 휴직의 시간을 감사함으로 소중히 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조직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가 없어진 탓인지, 내 나이 듦으로 인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공원의 들풀, 푸릇푸릇 나무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이름 모르는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입에 나뭇가지를 물고 날아오르다 공원 펜스에 잠시 멈춰 앉은 까치가 하도 신기하여 휴대폰으로 찍을라 치면 금세 제 갈길을 가 버린다.

아쉽다 생각하다가도 저 높은 나무에 도착해 제 집을 손수 짓고 있는 건설현장에 나뭇가지를 올려다 놓는 걸 보면 휴대폰에는 다 담기지 못할 그 새의 일상을 내 눈에 담는 걸로 충분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공원의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올 뿐만 아니라 경이롭게 여겨진다.


가장 경이로웠던 건 봄인 줄 알고, 차가운 땅을 밀어내고 기어이 올라온 새싹들.

넌 봄인 줄 어떻게 알았니?

누가 얘기해 주던?


예전에 길을 가다 앞서 걸으시던 한 할머니가 갑자기 멈추어 서시더니 휴대폰을 꺼내 아스팔트 바닥에 대고 사진을 찍으시는 걸 본 적이 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 싶어 할머니를 지나치며 살짝 봤는데

할머니는 아스팔트 사이에 피어난 노란 들꽃을 카메라에 담고 계셨다.

그때는 왜 그러시는지 정말로 이해를 못 했는데 40대 중반이 된 지금은 나도 그 꽃을 사진에 담고 있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진달래, 개나리도 아름답지만,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거라곤 변함없이 한결같은 햇볕과 적당한 때에 적셔주는 비 정도가 전부인 곳에,

차갑고 무거운 시멘트를 바른 후 정돈되어 보이라고 사람들이 만들어둔 그 틈새를 기똥차게 찾아내서

나 여기 있노라 고개를 빼꼼히 내민 그 여린 꽃이 대견해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넌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올라온 거니?

잘 올라왔다. 네 덕에 아름다운 길이 되었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만 보다가

사람들과 잠시 떨어져 사람 아닌 것들을 보니 경이롭게 보이는가 보다.

그래서 점점 나이 들수록 자연을 찾아다니고, 쉴 새 없이 꽃과 하늘을 찍어대고 그러는 건가 싶다.


봄이 되었다고 모든 나무와 꽃들이 짠하고 꽃으로 나오는 게 아니고

꼬맹이 새싹으로부터 시작하고, 코딱지만 한 봉우리로부터 시작한다.

그제서부터 새싹은 땅과 바람과 햇볕과 비 속에서 자라난다.


그러고 보니 사람도 다 자란 모습으로 짠하고 세상에 나오는 게 아니고

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는 것 밖에 없는 갓난아기로 나와서 시작하네.

엄마 뱃속에서 나오고 나서부터 부모와 형제와 친구와 사람들 속에서 자라나고.


모든 생명이 여린 가지, 응애응애 갓난아기로 일생을 시작한다 생각하니

이 세상의 조물주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꽃이 될지, 큰 나무가 될지, 그저 잡초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게 무엇이든 열심히 자기 자리에서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활짝 피워내는 것이 살아가는 과정인가 보다.


제 역할을 하루도 빼먹지 않는 태양과 필요한 때 알아서 내려주는 비처럼

내게 늘 있지만 잘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쳐다보며 잠시라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보는 시간적 여유를

누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


참으로 호사스러운 일상이다.

이 일상이 귀하고 값진 비료가 되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을 때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성숙해져 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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