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는 말라..는 말인거죠? <개여울>

김소월의 시 <개여울>을 읽고

by 김태경

신혼 초, 퇴근 후 나는 저녁을 준비해서 차리면 남편은 나와서 먹고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내가 설거지 하고 쓰레기 정리하고 내다 버리는 동안에도 남편은 텔레비전만 봤다.

그런 날들이 계속 이어지니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라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남편의 행태가 어떤 변명으로도 납득될 수 없겠지만,

그 이후로 남편에게는 말로 정확한 요구와 지시를 했고 남편은 순순히 응했다.


결혼 16년 차인 현재, 쓰레기를 정리해 두면 남편이 내다 버리고(물론 남편이 아들에게 시킬 때도 있지만 ^^)

알아서 청소기를 돌리고 청소기 청소도 한다.

16년의 부부생활은 서로의 신경과 화를 건드리지 않는 지혜를 자라게 했고

목소리 톤을 비롯한 일상 소음들 속 행동 반사신경은 갈등의 사전 예방과 문제 대처 능력을 향상해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 놓고 말해야 하는 일들은 있다.

"그것은 저쪽 서랍장 두 번째 칸에 넣어주세요"

"이거는 욕실에 가져다 놓고, 이거는 아이들 양말 서랍장에 넣어주세요. 양말 서랍장은 아이들 방에 있는 하얀색 서랍이에요"

나는 더 이상 아직도 집안 살림을 잘 모르는 남편을 탓하지 않는다. 말로 요구하면 그대도 실행하는 사람이니 정확하게 요구하면 될 일이다.


시댁을 방문한 어느 날, 시어머니에게 용돈을 얼마를 드릴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오빠, 어머니께 이만큼 드리려고 해"

"그렇게 많이 안 드려도 돼. 저만큼만 드리자"

"그래도 어머니가 애들 용돈도 주시고 이것도 해 주시고 지금 이런 상황이기도 하니 이만큼 드리자."

"그런가.. 그래. 알겠어. 고마워"


이런 류의 대화는 아직도 조심성을 기울여야 하는 듯하다.

그래도 서로의 부모님께 또 서로에게 이런 부분은 더 신경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 좀 더 헤아려주고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 들이 언제나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대화는 정확하게 딱 잘라 말하는 것보다 가급적 왜 그런지에 대한 맥락 설명이 필요한 셈이다.

건조가 끝난 빨래를 서랍장에 넣어 달라는 요구와는 차원이 다른 말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모두 이런 것 같다.

나는 괜찮아요라고 말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안 괜찮은 마음도 있고,

먼저 갈게요 했지만 살짝 잡아주었으면 하는 속내도 있고,

그냥 대충 먹자 했지만 알아서 비싸고 좋은 메뉴를 골라주었으면 하는..


오로지 나이나 성향 탓 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모든 순간 딱 이거다!라고 말할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게 있는데,

그것이 참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도 하고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가게 하기도 하고 때론 잘못된 선택을 하게 하는 경우가 있고 그래서 인생이 복잡하고 피곤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김소월 님의 시 <개여울>도 그렇다.

아름다은 곡조로 불리기도 하는 이 시는 한없이 애틋하고 절절한, 정말 시다운 시는 틀림없지만

사실 냉정하게 보자면 속병 유발 시이기도 하다.

(김소월 님의 시를 감히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40대 중반이 되어 다시 이 시를 읽으니 색다르게 다가와서 말해 보는 것뿐이다)



개여울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개여울에 주저앉아 몇 날 며칠 하염없이 떠난 이의 말을 곱씹고 곱씹었던 시인은

이렇게 결정한 것 듯하다. 잊지는 않기로..

그래서 마지막에 "굳이 기다리라는 부탁인지요"가 아니라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라고 한 것 아닐까..


방금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내가 너 비문학적이라는 느낌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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