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의 시 <위로의 방법>을 읽고
무슨 일이었는지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언젠가 나름 중대한 어떤 결정을 한 내게 누군가 이렇게 말해 주었다.
"고생했어. 나 같으면 그런 결정을 못 내렸을 거야. 수고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한 결정이 남들은 잘 하지 않는 잘못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당황스러웠다.
물론 상대는 내 마음고생에 대한 위로의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었다.
차라리
"고생했어. 나라도 너처럼 했을 거야. 수고했어"라고 말해 주었다면 내 마음이 좀 편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알았다.
당신이 특별한 상황에 있는 특별한 존재라는 걸 가정한 상태의 위로는 효과가 없으며,
내가 매몰되어 있는 문제가 어쩌면 나뿐 아니라 누군가도 겪고 있는 보편적인 것이라는 걸 알게 되면 새로운 관점에서 내 감정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위로받고 싶어 한다.
좋고 따뜻한 글귀들은 그저 한순간 '그렇구나' 생각하게 할 뿐 문제적 감정과 상황에서 확 끌어 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 '위로'라는 걸 받았나 잠시 생각해 봤다.
-회사일에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온 날, 해맑은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며 웃음소리를 들었을 때
-오래전 뱃속의 아이가 기형일 확률이 높으니 고난도 검사를 하자 했을 때 남편이 "만약에 기형이라면 의사 선생님이 우리한테 뭘 해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한 후 그냥 집에 돌아왔을 때
-엄청 어렵고 무거운 프로젝트를 끝낸 후, 함께 고생한 선배가 두 팔 벌려 안아주며 "고생했다. 어쩜 이렇게 잘해 내니.."라고 말해 주었을 때
-일과 사람들에 대한 회의감으로 무기력 한 상태였는데 계속해서 나를 찾는 둘째 아이에게 큰 아이가 '엄마 잠깐 쉬게 놔둬, 이리와 내가 놀아줄께'하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내 남편이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나를 일상적으로 대해주며 재미있게 해 주려고 노력해 주었을 때
칭찬과 위로가 약간 헷갈리기는 하지만, 이런 에피소드들이 나를 환기시켜 주고 안정되게 해 주었던 것 같다. 그럼 그게 위로지 뭐..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아픈 누군가, 힘들어하는 누군가가 매우 신경 쓰여 나름 기도도 하고 관찰도 해 보지만 위로의 말. 그 말 한마디 건네기가 쉽지 않다. 내가 하는 말이라곤, 지나가다 툭 치며 "괜찮아요?"라고 묻는 정도이고 같이 점심을 먹거나 통화를 할 때면 일종의 '욕치료'처럼 그를 힘들게 하는 상황 혹은 인물에 대해 찰진 비난을 퍼붓는 정도다. 참.. 내 모습을 잠시 상기시켜 보니 유치하기 짝이 없네..
누군가에게 힘내라, 기도하고 있다, 네가 너무 걱정된다, 얼마나 힘드냐.. 말 건네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행여나 잘못된 어휘로 실수하게 될까, 나름 깊은 내 속내가 경망스럽게 전달되어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잘 되지 않는다.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될까 싶어서 말이다.
이해인 수녀집의 시집 <이해인의 햇빛일기> 시집을 읽었다.
투병 중에 있는 이해인 수녀님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아픈 사람에게 어떻게 위로를 건네면 좋은지 당사자의 입장에서 쓰인 시가 내게는 도움이 되어 써 본다.
위로의 방법
-이해인
아픈 사람 앞에서
아픈 얘긴
너무 많이 하지 말아요.
기도도 큰 소리 내지 말고
그냥 속으로만
해주는 게 더 편할 적도 있답니다.
좋은 약 좋은 음식
죽음 준비에 대한 말도
너무 많이는 말고
그냥 정도껏만 해 주셔요.
환자들은 오히려
밝은 이야기가 듣고 싶답니다.
문병 와서
정 할 말 없으면
약간 어색해도
미소 지으려 애쓰며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위로의 좋은 방법인 것 같답니다.
위로한다고 하면서 상대가 아니라 내 입장에서, 내 마음 편한 위로를 건네지 말아야겠다.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으면 이해인 수녀의 시처럼 웃고, 재미있고 밝은 이야기들을 건네보자.
때론 귀를 통해 듣는 말보다 분위기와 태도가 더 큰 위로가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