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관계-가족
친정식구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회사 다닐 때는 여름휴가 1주일을 남편과 아이들과 보내고, 휴가 시즌이 아닌 주말을 이용해서 친정 식구들과 국내 여행 다녀오는 정도였는데. 휴직을 하니 시간 여유가 생겨 여행 가능 날 수가 많아져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동생은 홍콩, 사이판 등을 가고 싶어 했지만, 내가 휴직 중이라 수입도 줄어든 상황이었고 동생도 외벌이 가정이라 욕심내지 말자 설득해서 일본으로 가기로 했다.
일본 중에서도 경제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가장 부담이 적고 가까운 후쿠오카를 택했다.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위들은 동행하지 못했다. 작은 사위가 회사일로 못 가게 되었다길래 내 남편, 즉 큰 사위도 안 데리고 가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여행객은 친정부모님, 여동생과 조카, 나와 내 아이 2명 총 7명으로 꾸려졌다.
사실 친정식구들과 해외여행은 처음이다.
대학원 졸업하고 계속 일하다 결혼하고 출산하고 또 계속 일 하고, 아이들 갓난 시절과 아장아장 시절 지나고 보니 이제야 가게 된 것이었다. 엄마는 친구들과, 동생네는 자기 식구들과, 나 역시 내 남편과 아이들하고만 해외여행을 갔었더랬다.
이일 저 일로 해외여행 갈 만큼의 커다란 돈독함이 없기도 한 내 친정 문화(?)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여러모로 큰맘 먹은 해외여행이었다.
여행사 광고 중에 이런 CF를 본 적이 있다.
엄마, 아빠, 자식이 다 자기 일상 열심히 살다 집에서 만났을 때는 피곤하고 힘들어서 데면데면하다가 여행을 같이 가서 보니 미처 알지 못했던 색다른 서로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그런 경험을 이번에 한 것 같다. 부모 자식, 친자매로 엮여 있지만 성향과 취향이 사뭇 다른 사람들의 집합체이므로 갈등은 있기 마련이다. 다만 그 갈등이 내 부모니까 그러려니 하고, 내 자식이니까 내가 참자 하며 어느 정도 뭉개지고 그냥 넘어가는 그런 것일 뿐..
회사에서는 사람 간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고, 선을 넘었을 때 말다툼이든 감정다툼이든 뭐가 일어난다. 필요하면 잘잘못을 따져야 하고 사과를 하거나 받아야 하며, 바로 잡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족들 사이에는 다른 것 같다.
넘어야 할 선이 어딘지 잘 모르기도 하고, 넘으면 안 되는 선이 어딘지 알면서 일부러 넘기도 하고, 때론 나 스스로 내 선을 넘어 공격해 대기도 하니 말이다.
회사를 잠시 쉬고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갖는 동안 가족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는 중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들 간에 있는 애매한 선, 모호한 경계가 있는 것이 잘못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고 있다. 이 세상 이치가 인풋에 따른 즉각적인 아웃풋이 나오지 않을뿐더러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매번 계산해서 대응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단호박 잘라내듯 딱딱 잘라낼 수 없는 것이므로 예측 불가한 인생에서 내 감정, 반응을 내색하기도 해야 할 텐데, 그렇다면 그 기능을 하는 것이 가족이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가족은 가장 친밀하면서도 때론 가장 불편한 관계가 되는 건가 보다.
친구와의 이야기,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야기, 놀이공원 가는 이야기가 중요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머리 큰 어른이 되면 경제적 이야기와 미래 진로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가 된다.
부모는 예쁘고 귀엽기만 했던, 내 품에 안겨있던 작은 아가가 나와는 엄연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걸 받아들여가며 부모 노릇을 계속해야 하고, 아가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 여정을 겪으며 때로는 부모를 핑계로, 발판으로 삼아가며 성공을 향해 매진한다. 아무리 가족으로 엮여 있다고 한들, 사람 마음이 다 같지 않으므로 이해할 수 없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꾸역꾸역 서로를 신경 쓰고 챙기면서 말이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아빠 예전에 왜 그랬어요..'
'엄마는 그때 그러면 안 됐어요..'
'나는 너희들한테 그때 너무 서운했다..'는 말이 목에 걸려 입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가 있다는 것,
동화책에 나오는 따뜻하고 풍성한 식탁에 앉아 서로 손잡고 화목하게 웃게 하는 일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모든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연과 갈등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가족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이면서 가장 특별한 관계인 것이 틀림없다.
복잡한 후쿠오카 거리에서 금세 어디론가 사라지는 아빠,
뭘 먹고 싶은지, 어딜 가고 싶은지 결정장애가 있는 엄마,
자잘하게 쓰는 돈 아껴 비싸고 맛있는 거 먹자며 잔소리하는 동생,
구글 지도 보며 앞장서 길 찾으며 나름 인솔해 보려는 큰딸..
(이건 온전히 큰딸인 내 입장에서 쓰는 글임을 밝힌다)
만약 이 여행이 회사일이었다면 아마도 사람들 목에 이름표 걸고 이름표 안에 일정표 끼어 넣고
사람들 모아 차근차근 일정 브리핑하고 이것저것 준비해서 챙겨주고 눈치 보며 그 작은 어떤 것 하나라도 불편하지 않게 온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 여행은 내내 우왕좌왕 하긴 했지만 회사일 처럼 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했다.
아빠가 없어지면 걸음을 잠시 멈추고 찾으면 될 일이고, 엄마가 결정을 못하면 내 마음대로 결정하면 될 일이다. 항공권 영문명을 잘못 써서 수수료를 내야 하면 쏟아지는 핀잔은 듣는 척 마는 척하고 당당하게 돈 내면 그만이다. 여행가서 아침에 늦잠 자고 싶으면 늦잠 자고, 뭐가 없으면 없다고 하고 짜증 나면 짜증내기도 하는 그런 여행이었다.
많이 신경 쓰이면서도 가장 심적으로는 부담 없는 그런 여행이었다.
한없이 넘치는 사랑을 경험하는 곳이 가족관계여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내 혈육을 통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겪으며 받아들여져 보기도 하고 또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는 곳도 가족이어야 한다.
100% 이해만 하고 100% 사랑만 하는 것 아니라 가족이 아닌 타인을 이해하는 선제적 경험을 제공해 주는 사람들, 여러 문제와 갈등이 있더라도 수용해 주고 감싸 안아주는 경험을 제공해 주는 사람들, 이제까지 계속 싸워왔고 과거의 그 문제가 아직 내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았더라도 시간과 돈을 들여 신경 써 주고 돌보려고 하는 사람들..
인생이 동화가 아니듯, 나를 포함한 사람들도 동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아니다.
아름답고 예쁜 것보다 나쁘고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더 많이 목격하고 마주하는 게 인생 아닌가.
나이 들어 내 아이가 클수록 가족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해 보게 되는 것 같다.
나라고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없지 않겠는가
또 마찬가지로 내 자식이 내가 상상했던 그런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내가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부모이기도 하니, 내가 불편하게 하는 부모의 모습이 내게도 있을 것이고,
내 자식에게도 자식으로서 나의 못난 모습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인생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야겠다 싶다.
짧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다음엔 관광지 말고 휴양지로 가야겠다.
아니면 돈을 많이 투자해서 완전 100% 패키지여행으로 가든가..
가족관계는 100% 동화 같지 않더라도 비싼 여행 패키지는 100% 완벽하지 않을까..^^
티격태격 우왕좌왕했더라도 정서적, 시간적 여유 덕에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