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창문 어두운 커튼 사이 미세한 빛만이 땅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빛줄기 근처에는 작은 먼지가 허공을 떠돌아 어두운 다락방 속 동아줄 같이 보였고 책이 빼곡하게 있어 책 냄새가 물씬했다.
전체적으로 회색 톤의 침대는 한 소년이 곤히 자고 있었다. 색소가 옅은 갈색 머리색의 동양인으로 반듯한 이마와 정갈하고도 짙은 눈썹에 콧대가 높고 작았다. 속눈썹은 남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길고 입술은 생기가 돋게도 붉었다.
소년은 한참이나 잠을 자다가 알람소리가 시끄럽게도 울리자 부스스하게 일어났다. 마침 소년과 함께 잠을 자던 검은 고양이가 그르릉대며 소년의 볼을 핥았다.
"헤이. 마리~ 잘 잤어?"
소년은 인디언 보조개와 양쪽 보조개를 돋보이게도 웃으며 눈을 반달로 접혔다. 마리는 그런 소년의 웃음에 보답하듯 소년의 팔에 얼굴을 문질렀다.
소년 이름은 '하닐 세나' 이름에 대한 뜻은 없었지만 소년이 항상 차고 다니는 목걸이 글씨 '이하일'과 비슷하니 뭔 상관이냐 싶었다.
하닐은 기지개를 시원하게 한 뒤 마리를 안고 다락방을 내려왔다. 내려오자마자 하닐은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서, 습관적으로 하닐은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는 하닐의 양모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하닐은 그런 그녀를 멀겋게 바라보다가 그녀의 뒤편에 서서 안았다.
"잘 잤어요?"
듣기 좋은 목소리에 모친은 '물론. 잘 잤지. 동생 좀 깨워주겠니?' 라고 말하더니 마저 요리를 했다.
하닐은 '네.'라고 작게 속삭이듯 말하고선 제니의 방문을 두드렸다.
"헤이~ 제니? 아침이라 이제 일어나야 할 거 같은데?"
제니는 묵묵 대답이었다. 계속 자고는 있지만 방문을 함부로 열수는 없었다. 자신은 어차피 진짜 가족이 아니라 남이었으니까 말이다.
하닐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다시 방문을 두드렸다.
"제니~? 제니?"
몇 번이나 그렇게 한참이나 두드리자 방문이 열렸다.
"하닐. 왜 네가 항상 날 깨우는 거야?"
제니가 불만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하닐은 특유의 말갛게 웃음을 보였다.
"잘 잤어. 제니?"
제니는 그런 하닐의 태도가 못마땅한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옜다. 굿모닝이다. 비켜 씻을 거니까."
"아. 미안."
하닐이 재빠르게 비키자 제니는 휙 그를 지나쳐갔다.
하닐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더니 다시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하닐은 책가방에 교과서를 넣고 쉬는 시간에 읽을 책을 넣은 후 그것을 들고 다시 내려왔다. 그러는 동안 식탁의 음식은 다 만들어져 있기에 하닐은 자리에 앉았다.
식탁에는 부스스한 머리의 부친이 토스트를 먹고 있었다. 하닐은 가볍게 인사를 했다. 부친은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하닐은 그런 부친의 행동이 익숙하듯 포크를 들어 아침을 시작하려했다.
후다다닥 쾅!
뛰어가는 소리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만 들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제니~! 아침은 먹고 가야지!"
뒤늦게 모친이 큰소리로 말했지만 이미 제니는 나간 뒤였다. 모친은 사춘기라면서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하닐. 제니를 데려다 주겠니?"
하닐은 미소를 지었다.
저 아직........
아침 시작도 안했는데 말이죠.
"예. 물론이죠."
"다행이구나. 요새 제니가 중학생이 됐다고 너무 서두르는 게 불안해서 말이야."
그러시겠죠.
"네 걱정 마세요."
하닐은 자리에 일어났다. 그런 하닐을 부친이 빤히 바라보다가 하닐의 식사에 눈을 두었지만 모른 척 자신의 식사만을 몰두했다. 하닐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인사를 한 후 가방을 들고 밖을 나왔다. 오른쪽 고개를 돌리자 자신과 같은 학우 몇 명이 집을 나와 학교로 가고 있는 게 보였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제니와 같은 또래 애들이 걷고 있었다.
하닐은 한숨을 내쉬며 왼쪽으로 걸어갔다.
완전히 반대편이라 지각할게 분명했다.
"제니~! 제니."
한편 제니는 걷다가 오빠 목소리에 고갤 돌렸다. 서둘러 자신에게 오는데 모른 척 하고 싶었다.
"뭐야. 왜 따라와?"
"데려다 줄려고 그러지."
"미쳤어? 반대편이잖아."
하닐은 그저 어깨를 으쓱여 보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대화도 할......."
"하닐. 이런 말하기 미안한데. 난 네가 창피하거든?"
하닐은 도저히 대화를 끝마칠 수가 없었다.
제니의 충격적인 말 때문에 그러했다.
하닐이 놀란 눈으로 제니를 바라보자 제니는 그런 시선을 애써 돌리며 변명하듯 이어 말했다.
"아니 그렇잖아? 넌 동양인이야. 애초부터 나와는 인종부터가 달라. 그런데 너와 내가 남매사이라니. 사람들이 많이 의아해할 거 아냐."
놀란 눈이 어느새 스르륵 평소의 크기로 돌아왔다. 하닐은 평소의 짓는 투명해 보이는 표정과는 달리 그녀를 이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듯 보고 있었다.
"제니. 난 너의 가족이 맞는 거지?"
"......."
제니가 대답대신 시선을 피했다.
"헤이....... 제니. 날 봐. 내가 묻잖아."
제니가 마지못해 시선을 하닐에게 돌렸다.
하닐은 눈이 마주치자 입가를 비틀었다.
몰랐던 건 아니지만 직접 들으니 충격이었다.
".......제니. 우린 가족이잖아. 다른 사람이 동양인이라고 날 비하해도 너만은 그러지 말았어야지."
"......."
제니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하닐은 그런 제니가 더 이상 자신의 동생으로 여겨지지가 않았다. 하닐은 몸을 돌렸다.
"이젠 더 이상 너와 대화하고 싶지않아. 내 기분이 그래."
하닐 목소리가 이렇게도 낮고 서늘한지 제니는 자신 귀를 의심했다. 항상 따뜻하고 자상한 음성으로 화를 전혀 안낼 거 같은 하닐이었기 때문이다.
하닐이 자신의 학교로 걸어가자 제니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히 대화하고 싶지 않았고 동양인이라는 사실이 싫었지만 막상 그 차가운 태도를 보니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기 때문이다.
"안녕 제니~"
그런데 그때 제니 어깨를 감싸 안는 감촉이 느껴졌다. 간질간질한 목소리가 대충 누군지 파악이 된 제니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걸레로 소문난 올리비아 레이나였다.
"뭐야. 갑자기 친한 척이야?"
제니가 불쾌하다는 듯 올리비아의 손을 털었다.
올리비아는 그런 제니의 태도에도 변함없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까 그 동양인 남자 누구~? 남자친구야?"
"그럴 리가 없잖아."
제니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하자 제니가 환하게 웃었다.
"그래~? 그럼 나 소개시켜 줄 수 있어?"
"뭐?"
"내가 요새 옐로우 피퍼라서 말이야. 꽤 멀끔하게 생긴 동양인을 보면 너무 끌린단 말이지?"
".......그런 변태적 성향을 자랑스레 커밍하지 말아줄래? 나에게 하지 말고 네 남친에게나 하지 그래?"
"무슨 소리야. 헤어진지 무려 이틀이나 지난 걸."
".......그래 너 참 잘났네."
제니는 고개를 설레설레 졌더니 무시하며 지나쳤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계속 그녀에게 달라붙으며 하닐의 대해서 캐물었다.
"동양인이 그렇게 잘생긴 건 처음 본다니까? 키도 얼마나 큰데. 게다가 그 눈동자 색. 동양인이 하고 있으니까 신비로워 보이는 게 참 좋아. 걔는 어느 학교 다니니? 너랑은 어떻게 하다가 알게 된 거야?"
"제발 좀 닥쳐 레이나. 난 지금 네 변태적 성향을 들어줄 만큼 마음의 여유 따위 없으니까."
제니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그녀에게 말했지만 올리비아는 들을 생각이 없는지 한참이나 떠들어대며 제니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제니는 학교에 도착해서야 올리비아의 수다에 벗어났지만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아 미간을 꾹꾹 누르며 그녀의 역겨움에 대한 한숨을 토했다.
시간은 빠르게도 흘러가 어느새 하교시간이 다가왔다. 제니는 시끄러운 복도를 지나쳐 자신의 남자친구와 진한 키스를 나누고 나서야 집에 도착했다.
집안에는 익숙한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운동화를 보니 마음 한편이 안 좋아 빠른 걸음으로 거실을 지나쳤다.
자신 방에 도착하자마자 제니는 한숨을 푹 쉬며 침대에 털썩 누웠다.
".......씻는 건 나중에 하자."
눈이 스르륵 감겨왔다.
씻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피곤함이 먼저였다.
어느새 쉽게 잠이 들다 깨난 제니는 날이 상당히 어두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스스하게 일어나 머리를 긁적이고 방을 나오자 썰렁한 거실이 보였다.
제니는 익숙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냉장고를 살펴 본 후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틀었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반짝이는 불빛을 몇 번이나 돌리고 나서야 새로 나온 시트콤이 이제 막 시작하다는 것을 알았다. 제목은 '위치 하이스쿨'이라고 마녀인 여주인공과 그녀의 친구들이 벌이는 시트콤이다.
방영 전부터 '스텔라 루나'와 '데릴 스미스'가 출연한다 하여 시청자들의 기대를 안고 있었다. 제니는 데릴 스미스의 팬이라서 꼭 봐야지라고 다짐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방영시간을 까먹었다. 그게 오늘이었나 싶어 제니는 설레는 마음으로 리모컨을 꼭 쥐어 잡았다.
드라마는 제니의 취향에 딱 맞았다.
'안젤리나 브라운'의 역 '스텔라 루나'는 마계에서 수업을 받다가 성인이 되기 전에 인간의 마음을 빼앗아야 진정한 마녀가 되기 때문에 인간계로 가서 남자들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드라마의 재미있는 부분은 스텔라 루나의 엽기적인 연기와 그녀를 이상한 여자 보듯 행동하는 데릴 스미스의 역 '타일러 윌슨'도 웃겼다.
피식 피식이며 한참이나 집중 있게 보던 제니는 두상과 목선 그리고 어깨 길이까지 낯이 익은 뒷모습이 한 구석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낯익은 뒤통수는 시끌벅적한 드라마 속 교실안과는 달리 꼿꼿이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제니는 설마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그 뒤통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머리스타일과 동양인치곤 연한 갈색이라거나 동양인은 확실한데 하얀 피부가 하닐과 무척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뒷모습 주인공은 드라마가 끝이 날 동안 한 번도 얼굴을 보이는 법이 없었다.
제니는 허무하게 드라마가 끝이 나자 리모컨을 던졌다.
그놈에 뒤통수가 뭔데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한단 말인가? 제니는 뒤통수에 신경 썼다가 드라마를 집중 있게 보지 못한 것에 후회하며 씻기 위해 티비를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