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질 권리

by 강다희

이아념은 멍한 눈으로 줄을 섰다. 여기가 어딘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앞에 사람이 한걸음 움직이면 그도 움직였다. 줄은 끝이 보이지가 않게도 길었지만 그가 느끼기에는 불과 몇 초로 느껴졌다. 멍한 눈으로 그저 걷기만 하던 그는 거대한 왕좌와 같이 거대한 남자 앞에 당도했어도 그대로였다.


"흐음? 이 영혼은 뭔데 아직도 정신이 딴 데로 있는 게지?"


남자가 갸웃거리며 영혼을 훑어보았다.

영혼은 혼탁한 회색빛으로 금방 사라질 거 같아 연기와도 같은 모양새였다. 그 모양새가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지, 남자. 염라대왕은 혀를 찼다.


"쯧쯧. 영혼주제에 자살한 낌새구만."


염라대왕은 가벼운 손동작으로 허공에 있던 거대한 책을 넘겼다.


"음? 남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것치곤 행복 그래프가 한 없이 밑바닥이잖아?"


염라대왕은 이상하다 여겼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책을 빠르게 훑었다.


"호오....... 증오와 사랑이 섞이고 그것이 과한 부모 밑에서 자랐으니. 행복할리가 없지."


염라대왕은 아념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정도면 영혼이 소멸할 지경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 염라대왕은 그를 가리키며 '소멸'이라 명하려했다.

하늘에서 빛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허억! 미카엘님!?"


염라대왕은 자리에 벌떡 일어나 벌벌 떨었다.

한편 미카엘은 눈을 지그시 감아있던 눈을 떠 아념을 바라볼 뿐이다.

"꼴이 말이 아니군요. 루시퍼님."


아주 만신창이야.

미카엘은 괴기한 웃음으로 손을 뻗어 아념의 볼을 만졌다. 아념의 흐릿한 초점이 서서히 또렷해지는 것은 그때였다.


"아. 또 내가 자살을 했나?"


변하는 순간 그 간격은 아까 멍한 영혼이라 생각 할 수 없을 조차였지만 미끄럽게도 자연스러웠다.


"네. 이번으로 171째에요. 어쩜 이리도 끈기란 게 없을까. 그 정도 불행 정도 참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건 루시퍼님 아니었나요?"


"너의 지극 정성한 애정공세를 받을 바에야 인간들의 불행이 낫다고 말했을 뿐 그 정도라고 호언장담한 적은 없는데 말이야."


아념이 흐릿하게도 웃었다.


미카엘은 그런 아념을 아름답다는 듯이 바라보며 이마를 슬슬 만졌다.


"이걸로 몇 번째인가요. 포기하세요."


"글쎄. 이번 생에는 자살 안할 수도 있을 거 같아서 포기하고 싶지 않은데."

"타락한 천사주제에 매번 날 애먹이네요."


미카엘이 이빨을 들이 우며 아념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그러자 아념 발목에 탁기가 가득한 족쇄가 서서히 선명해졌다.


아념은 영혼 전체가 타들어 가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무표정으로 공허하게 미카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카엘은 아념을 잡아먹을 듯이 위협하다가 그 표정에 혀를 찼다.

정말 깨지기 쉬어보이는 유리인데.

깨지지가 않아서 미카엘의 가슴을 애태우는 표정은 여전했다.

미카엘은 숨을 한 번 내쉬고 비릿하게 웃었다.


"좋아요. 이번에도 과연 그럴까 내기하죠. 전 당신이 환생할 때 겪었던 전생을 서서히 기억하게 할 거에요. 그럴 때 당신이 버틸 수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네요. 만약 당신이 자살을 하지 않는다면 전 당신을 포기하고 당신이 원하는 마계에 보내드릴게요. 천사의 맹약이에요. 단 , 이번에도 또 당신이 자살을 한다면 당신은 내게 되는 거 에요. 의의 있나요?"


천사의 맹약은 지키지 못할시 타락하고 말기에 함부로 해선 안 된다. 하지만 미카엘은 번복할 생각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흰자위를 한 번 번득 움직이고 있었다.

아념은 그런 미카엘을 변함없이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은 그런 아념을 기특하다는 듯이 쓰다듬더니 자상하게도 말했다.


"과연 당신이 버틸 수 있을까?"


미카엘은 천사 미소가 어떤 건지 보여주듯이 환하게도 웃었다. 그러자, 아념에게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내렸다. 아념은 기운을 잃은 듯이 비척이더니 몸을 뒤로 젖혔다. 그리고 그 바닥에 어두운 구멍이 그를 집어삼켰다.

염라대왕이 뒤늦게 뭐하는 짓이냐며 따졌지만 미카엘은 이 일은 영원히 함구하라며 명령을 내린 뒤 하늘로 올라갔다.


끝내 염라대왕은 허무한 눈동자로 하늘과 바닥을 번갈아서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카엘은 기억을 돌려준 것에 언젠가는 후회할 것이다.

계기가 있다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익숙해지면 무감각해지기도 하고 단단해진다.

아념은 계속 복용한 약처럼 면역력이 낮아질 것이다.

그것이 안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독극물을 먹으면 죽는 거처럼 결국 죽지 않는 사람은 독에 면역이 되어 이겨낸다. 만약 그가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전생은 전생일 뿐이라고 자신을 컨트롤 하는 법과 과거를 직시하는 법을 깨닫게 된다면 적응을 할 것이다. 더불어 깨지기 쉬운 영혼이 아닌 루시퍼의 영혼이라 실로 더욱 단단할 것이라는 것을.

이것은 모순과 엉터리이기에 미카엘이 비록 생각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진실만을 말했다.

-

희고 작은 무언가가 뚝. 하고 말랑한 볼 위에 녹아들었다. 하늘에선 차가운 눈송이가 천천히 내려와 또렷한 아기의 눈동자를 깜빡 깜빡 감겨주었다. 아기는 차가운 눈을 맞는 와중에도 조심스레 자신을 안고 있는 그녈 보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아기는 자조적인 미소를 머금은 듯했다.

아직 추운 겨울날.

차가운 입김이 그녀의 입에서 조심스레 내뱉어졌다.

그녀는 아직 청소년으로 보였다.

분홍빛으로 상기된 볼과 아직 젖살이 덜 빠져있는 게 그 증거였다.


"아가야. 아가야. 미안해."


그녀는 죄책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아기를 내려다봤다. 아기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웃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그런 아기 표정은 익숙했다. 다른 애들과는 달리 보채지도 않고 잘 울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 혼자서 이 아이를 기르기에는 세상이 너무 만만치가 않았다. 이 아이는 너무 사랑스럽고 나중에는 엄청 후회할 것이 훤하지만 그녀로썬 지금 당장이 너무 힘들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아기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지만 가고 있는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부유해 보이는 집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불도 꺼진 상태라 그녀는 한참이나 망설였지만 끝내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띵동.

띵동.


사람들이 어서 빨리 초인종 소리에 일어나서 이 아이를 따뜻한 곳으로 데려가기를 빌며 여러 번 눌렀다. 그러자, 불이 환하게 켜지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조심스레 아기를 내려놓고 빠른 걸음으로 도망갔다. 아기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을 뿐 울지는 않았다.


어두운 밤이었다.

밖은 가로등만이 작게 빚 추고 집안 곳곳만이 불빛으로 가득한 거리였다. 세나 부인은 띵동 띵동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에 문을 열었다.

세나 부인은 훅 오는 바람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도 없었다.

태풍이 올 것 같이 바람이 세차게 불뿐 이었다.

세나 부인은 이런 장난은 날씨가 멀쩡해도 짜증날 판이라며 투덜거리며 문을 닫으려했다.

그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꺄르르~"


아기의 밝은 웃음소리가 발밑에서 느껴졌다.

갈색머리와 호박색 눈동자 색을 지닌 동양인 아기가 그녀에게 손을 뻗으며 말갛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경악을 하는 한 편 아이가 추울 거라는 생각에 어서 빨리 아이를 안고 들어왔다. 다행히도 아이는 무척이나 따뜻했다.

동양 것으로 보이는 비단으로 예쁘게 감싸 안아져 있는 아이는 지금 상황이 어떠한지 모르겠다는 듯이 싱글벙글했다.


모르는 사람 얼굴일 터인데 낯가림이 없는지 웃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


"아가야 엄마는 어디가고 여기 있는 거니?"


그녀는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 거리며 아이를 소파에 내려놓았다. 은색 목걸이에 글씨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 Korea 이하일 2000. 12. 23.'


"코리아? 이하일? 안녕 아가야. 아가 이름은 이하일이구나."


그녀는 살포시 웃으며 아이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녀는 예쁜 호박색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다 결심한 듯 조용히 핸드폰을 들었다.


그녀 핸드폰 화면에는 [남편]이라는 글씨가 밝게 빛났다.

남편은 서둘러 왔다. 여미지 못한 코트와 매지 못한 목도리가 그 증거였다.

"맙소사. 안젤리나!"


남편 목소리에 세나 부인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남편은 복잡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 후 아기를 바라봤다. 아기는 그 작은 손을 꼬물꼬물 거리며 세나 부인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었다.


"에릭! 이것봐봐 낯도 안 가려! 정말 귀엽지 않아?"


5년간 노력을 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어서 힘든 거 충분히 안다.

하지만 갑작스레 입양이라니?


그것도 동양인 아이를 말이다.


"안젤리나 아무리그래도 이건 너무 성급한 판단이야."


에릭이 그녀를 다독이듯이 말했지만 안젤리나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안젤리나. 이 아이가 느낄 감정을 생각해봐. 외견이 너무 다르잖아. 게다가 주변 시선은 어쩔 거야?"


에릭이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안젤리나는 이미 마음을 먹은 듯이 아기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에릭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계속 빙글빙글 돌았던 탓이다.

애초에 안젤리나가 아이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단지 둘의 사랑 결실을 결혼 초기 때부터 갖고 싶어 할 뿐. 그런데 갑작스레 동양인 아이라니.

골이 저절로 아팠다.

문득 시선을 돌려 안젤리나를 바라보았다.

안젤리나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언제 안젤리나 저렇게 행복하게 웃은 적이 있던가?

에릭은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가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국적이게 생겨서 정은 안 갔지만 그것은 자기가 열심히 노력하면 될 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우선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녀의 병 완화가 시급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의 입양 결정은 무책임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세월이 흘러 호박색 눈동자의 아이는 세나 부인이 요새 달라졌음을 알았다. 평소에는 자신만 보면 방긋방긋 웃던 그녀는 배가 점점 불러 올수록 자신에게 웃는 빈도가 많이 낮아졌다. 아이는 그녀에게 관심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로 다쳐보기도 하고 울어보기도 하였지만 배속 안에 있던 아기가 태어난 순간에는 그것이 어느새 관심보단 귀찮음과 짜증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박색 아이는 눈치가 빨랐다. 아이는 언제 말썽이었냐는 듯 본능적으로 방긋 방긋 웃었다. 그러자 세나 부인의 짜증 어린 얼굴도 많이 괜찮아진 것으로 보였다.


아이는 점점 가면을 만드는 법을 알아갔고, 세나 부인에게 미움을 받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이에게는 2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었다. 여동생은 아이와는 달리 예쁨을 많이 받아 칭얼거림도 꽤 있었고 애교도 많았다. 여동생은 아이를 무척이나 많이 따랐는데 아이가 어딜 가든 여동생은 뒤 따라오기 일 수였다. 아이는 그런 여동생이 미운 한편 자신을 좋아해주는 게 너무 예뻐 같이 놀아주었다.

여동생이 다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새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여전히 2살 아래의 여동생과는 자주 놀아주었다. 부모님들도 그런 모습은 오래 전 부터 봤기에 안심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여동생 손을 꼭 잡고 모래성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모래 요리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여동생은 '아~' 하며 모래를 한 움큼 쥐더니 입안에 털어 넣었다. 깜짝 놀란 아이가 "제니!? 퉤퉤! 그거 먹는 거 아냐!"라며 말렸지만 여동생은 모래 말고도 다름 무언가를 뒤섞여 삼킨 참이었다. 여동생은 퀙! 퀙! 하며 눈을 뒤로 까집더니 부들 부들 허리를 숙였다.

"제니~! 제니~! 아빠! 엄마! 제니가!"


부모님은 아이 비명에 서둘러 다가왔다가 제니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맙소사! 제니!"


세나 부인은 입을 틀어막아 제니를 바라보기만 했다.

다행히도 부친은 서둘러 움직여 제니 허리를 두드려 무언가를 빼냈다. 컥! 하고 나온 것은 아이의 작은 모형 장난감이었다.

아이는 침묵했다.

그리고 불안감에 시선을 올려 부친을 바라봤다. 부친은 냉담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더니 제니를 안아 차고로 향했다. 잠시 후 부르릉 이라는 소리가 들리더니 차가 매끄럽게 집 마당을 빠져나갔다.

아이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다시 시선을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아이를 표독스럽게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직감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은, 미움을, 더, 받게 될 것이라는 걸.

짝! 하고 고개가 돌려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아이는 저절로 멍해지는 시선을 붙잡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냉정하고도 분노어린 시선이 아이를 옭아매었다.

아이는 말해야 할 거 같았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한지는 잘 파악이 안 된 상태였지만 말해야 할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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