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왜 안하던 짓을 하나싶었는데 또, 또, 다른 영혼이었잖아?”
천진난만한 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서히 눈을 떠 주위를 훑었다.
지옥인가 싶었지만 아까 그 장소였다.
의아함을 느껴 상첼 일으켰다.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넌 누구야?”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시선이 옮겨졌다.
턱을 괸 채 빤히 바라보고 있다.
아이는 정말 묘하게 생겼다.
아니, 묘하게 생겼다고 말 할 수밖에 없이 온통 검은 색 작은 아이.
눈과 입만 사람형태 그림자라고 보아도 마땅했다.
“카야산 돌. 그게 내 이름이다. 넌 누구지?”
“에엑? 그 흑기사라고 불리는 재수 없는 놈이 너야?”
기겁하던 그림자를 무시하며 몸을 일으켰다.
말이 많은 모양인지 나불나불.
“뭐 생각보단 재수 없고 짜증나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죄를 꽤나 많이 지었나보지? 오오 이거 엄청난데, 나조차 기분이 좋을 정도로 재수 없는 기운이 없어. 인간에게 이런 영혼 기운 자첼 느낀 건 처음이군. 너 맘에 드는데?”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몸을 살펴보았다.
왜 상처가 없는 거지?
“왜 상처가 없는 건지 궁금해? 그럼 맞춰봐. 그럼 네가 지금 처한 사정을 내가 얘기해줄 수도 있어.”
장난 끼 어린 말을 내뱉는 그림자를 빤히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저 그림자는.......
“악마군.”
“딩동댕~.”
“게다가 네가 치료해줬군. 왜지?”
그림자 발이 부유하더니 주위를 빙빙 돌면서 말 꺼내기 시작했다.
“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아! 그래. 난 우선 너랑 계약한 악마야.”
인상 와락 찌푸렸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난 그런 기억이 전혀 없다만?”
하다하다 이젠 강간에서 악마계약이라니.
계속 기억에도 없는 죄를 지었다고 하니,
기분이 더러웠으며,
자기 자신 혐오가 찾아왔다.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뇌가 잘못되기라도 한 건가?
“정확히는 그 몸체 계약을 한 거지. 팔목을 봐봐. 팔목밴드가 보이지? 그 팔목 밴드를 빼보면 너와 내가 계약을 했다는 ‘악마문장’이 보일거야.”
양쪽 발목엔 무난한 검은색 밴드가 보였다.
그것을 무시하고 팔목 밴드를 벗었다.
확실히 요상한 팔목밴드를 빼니 악마 문장으로 추정되는 괴기하기 짝이 없는 해골과 뱀 문장이 보였다.
“......몸체 계약을 했다는 건 무슨 말이지?”
“뭔가 의문스러움을 못 느꼈어? 예를 들어 자고 일어났는데 배경이 바뀌었다던가.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다던가?”
그의 얼굴이 미묘해졌다.
그러고 보니 대충 넘겼는데 목소리가 평소 저음이 아니다.
그는 ‘아아.’ 소리를 내뱉어 다시 한 번 확인하고서야 이 상황이 무슨 뭣 같은 상황인지 파악이 되었다.
“......다른 사람 몸이라는 건가.”
“맞았어. 원래 그 몸 주인이 ‘나쁜 짓 77 번하기’ 계약을 하는 도중이었는데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네가 또 이상해지잖아? 자살을 하지 않나....... 나를 부르면 될 것을 그냥 맞고만 있지 않나! 왠지 몰라도 영혼이 바뀐 거더라.”
한숨을 푸욱 내쉬며 거추장스러운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나 참. 세상 살다 별 짓거리가 다 일어나는군.’
복잡한 심정을 전혀 신경 쓰지 않던 그림자가 ‘아!’하면 탄성을 지르더니 머릴 더 복잡하게 만들 말 내뱉었다.
“너 혹시 죽었었니?”
“뭐?”
“그렇지 않고서야 전혀 설명이 안 되는걸? 뭐 네가 죽었다고 한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지만. 눈앞에 증거가 딱 있으니까! 그래도 네가 죽었다면 확률이 어느 정도 되잖아? 게다가 죽어서 다른 사람 몸으로 빙의한 영혼을 너 말고 보기도 했으니까.”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빙의되기 전을 떠올렸다.
임무를 마치고 고단함에 잠이 들었었다.
그때였나?
그때, 누군가가 자신을 죽였던 거라면 대충 설명이 되었다.
짐작하는 바가 있어 침묵을 지켜내고 있자 그림자가 휘파람 불었다.
“휘릭~. 누군지는 몰라도 그 흑기사를 죽이다니 대단한데?”
무엇보다 더 대단한건 쥐도 새도 모르게 자신을 고통 없이 죽였다는 점이였다.
자신보다 몇 배나 뛰어난 실력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내가 죽어서 이 몸체에 들어왔다면 이 몸 주인은 어디 있는 거지?”
“글쎄~? 금기사항을 저질렀다던가?”
“금기사항?”
“계약과 반대되는 짓을 저지르면 그 영혼은 악마의 소유물이 된다. 마신의 평등 계약 제 182조 악마의 권리. 즉, 이 말에 따르면 내 컬렉션 중 섞여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네 영혼은 아주 우연의 일치로 그 몸속에 들어가게 된 것이고!”
헛웃음을 지었다.
무엇이 평등인가? 아무리 봐도 악마에게 유리한 쪽으로 되어있기만 했다.
“그나저나 흑기사 이걸 어째~?”
약 올리는 그림자 말에 고갤 갸웃거렸다.
자신이 죽어서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갔다는 것을 놀리는 것인가?
그리고 그 생각을 마치려하는데, 악마 입에서 경악할만한 소리가 나왔다.
“네가 대신 계약을 완성해야하거든~.”
“뭐?”
“왜냐하면 그 계약은 ‘영혼계약’이 아니라 ‘몸체계약’이거든!”
그 인상이 와락 찌푸려졌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려 식칼을 주었다.
“그렇군. 네 말은 내가 죽으면 그 계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기도 하겠지?”
“이런 멍청하네? 난 영혼이 빠져나가기 전에 널 다시 살리면 그만이야.”
“아무리 악마라도 여러 번 죽으면 여러 번 살리지는 못하겠지.”
“어디서 그렇게 장담하는데? 난 고위악마야. 여기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죽여서라도 난 널 계속 살릴 수도 있어.”
“헛소리. 악마가 ‘계약’말고 이 세계 관섭 한다는 소리는 난생 처음이군.”
“맞는 말이야. 하지만 그 대신 계약 관해서는 악마는 무서울 정도로 어느 무엇보다 자유롭기도 하지. 게다가 마신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자비로워서 억지력도 통하는 법이지.”
“그럼 난 사형을 당하는 일이 있어도 신전으로 가도록하지.”
그 말에 그림자가 못 당하겠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아. 구지 신전으로 간다는 것을 얘기한다는 것은 내가 어떠한 조건만 들어주면 안 그러겠다는 협박이겠지? 그래. 내가졌어. 말해봐.”
계속 신전으로 가려고 발버둥치려는 꼴사나운 짓을 볼 바에야 그냥 그 조건을 들어주고 말자라고 생각한 그림자 말에 그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