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악. 고개가 휙 돌아졌다.
입안이 터진 건지 짠 맛이 났다.
시선을 옮겨 씩씩거리는 공작 얼굴을 바라봤다.
옆에는 창백하게 질린 부인이 보였으며,
무표정한 이복동생 마타리가 보였다.
“너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사람을 죽여!? 그것도 우리집안에 몇 년을 일한 집사를!!??”
큰 목소리 덕분에 귀가 먹먹하다.
그리고 옆에서 쫑알쫑알, 그림자는 성가셨다.
“영리한 에티븐은 공작과 부인 앞에서는 착한 짓을 다 하거든. 저 이복동생을 때릴 때도 보이지 않는 곳만 때렸었지. 그나저나, 저 이복동생은 끝까지 무표정이잖아? 얼마나 독한거야? 그때, 맞을 때도 울지를 않더라. 얼마나 독하던지~ 아니. 아예 감정 없는 게 아닐까? 넌 어떻게 생각해? 흑기사?”
“에티븐! 착하던 네가 어떻게 그리 변할 수가 있느냐!!??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여!!??”
“그런데 저 공작은 왜 저래? 하찮은 목숨 하나 없앤 거 갖고 말이야. 집사든 뭐든 다시 고용하면 될 문제아냐? 분명 고용당하고 싶어서 안달 날 인간이 한둘이 아닌데.”
“말해보아라! 왜 그랬던 거냐! 왜 집사를 죽였어!”
둘이서 쫑알쫑알.
한꺼번에 그러니 정신이 없다.
게다가 공작 소리침은 그렇다 치지만 저 그림자 소리는 영 거슬렸다.
애써 무시해 입을 열었다.
“죄를 지었다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어떤 벌이라도 받겠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말하지 않겠다는 거냐?”
“어떤 이유든 그 죄가 무겁다면 소용없는 것이죠.”
공작이 ‘허.’ 기가 찬 소릴 내뱉었다.
속 알 수 없는 무표정은 도저히 죄를 지은 사람 얼굴 같지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자기 자식에게 소름끼쳤다.
공작은 카야산에게 일주일 동안 금식을 명하고 창고에 가둬두라고 명했다.
그런데 옆에서 부인이 그러면 죽는다고 말리자 공작은 물만 제공하도록 바꿔 카야산을 가뒀다.
사람을 죽인 거 치곤 후환 벌에 쓴 미소를 지으며 볏짚 주위에 앉았다.
옆에서 그림자가 짜증난다는 듯이 말했다.
“그깟 하인을 죽였다고 자기 자식을 가두다니 미친 거 아냐? 그 공작 때문에 결국 죄를 일주일 동안 못 짓게 생겼잖아!”
오히려 공작 반응이 정상이 아닌가 싶었기에,
헛소리를 나불나불 거리는 그림자를 무시했다.
항상 무시를 당하고 있던 그림자는,
“이젠 익숙하다. 익숙해. 없는 악마취급 하는 것도.”
계속 투덜거리더니 어느새 사라졌다.
그림자가 사라지자 마음이 편해져 손으로 자신 얼굴을 덮었다.
‘이 짓을 계속해야한다니 돌겠군.’
하지만 다른 쪽으로도 불편한 건 여전했다.
투둑.
투두둑.
창 밖 바닥이 조금씩 젖어간다.
마른 흙바닥에 동그란 원이 두세 개 생기더니 점차 여기저기 젖은 흙의 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창고 안에 조금씩 빗물이 새어 들어와 이마 위에 뚝 떨어져 콧등 위를 훑어 턱 선을 지나쳐 창고 바닥을 조금씩 젖혔다.
곧 조금씩 틈새가 보이는 천장에서 길쭉한 물방울들이 고이더니 떨어져 창고 바닥이 축축해졌다.
솨아아아-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창밖으로 멍하니 바라보다보니 입술사이로 비집고 메마른 웃음이 나와 턱 괴었다.
이 몸체 나이가 15세라 했으니 그때와 같은 나이.
그때 자신은 전쟁에서 수많은 이들을 죽이고도 하고 잃기도 했었으며 구하기도 하였다.
지금의 저는 가족 보호아래에 있었다.
그런데 이 몸체 주인은 뭐가 아쉽다고 악마를 소환했었을까?
사정 따위 모르겠지만 지금 이 몸체 주인은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쓸 때 없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못 본 사이 수척해진 저를 붙잡아 엉엉 울고 있는 부인을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어냈다.
“에티븐 다시는 그러지 말거라. 왜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함부로 사람 목숨을 해쳐서는 안 된다 알겠니?”
물론 맞는 말이었다.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미 사람을 많이 해쳐왔기에 가슴 깊이는 들어오지는 않는 말이었다.
자신이 멋대로 죽을 인간을 구분을 하는 것은 안 되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죄책감은 가슴 깊이 누를 것이다.
죽을 인간은 죽을 인간이었고, 살 인간은 살 인간이었다.
그에게 서늘한 눈빛이 감돌았지만 순식간에 사라진 채 평소와 같이 무뚝뚝한 눈빛으로 돌아왔다.
“예. 알겠습니다.”
다독이는 목소리로 부인 어깨를 두드렸다.
어느새, 벌을 받은 카야산이 부인을 어르고 달래는 모습이 되어버렸지만 아무도 그것에 트집을 잡지는 않았다.
부인 울음이 그쳐서야 공작이 엄한 말로 ‘다시는 그러지 말거라.’라며 부인을 데리고 가버렸다.
사람을 죽인 거 치곤 너무 가벼웠다.
하지만 이 봉건제도 세상에서는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평민 하나 죽였다고 창고에 가두는 자체가 이 집안이 엄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카야산은 그것이 왜 그래야 하는 건지 의문이었지만 의문으로 접었다.
단지 자신이 죽어도 싼 자를 구분 하는 것처럼 이들도 목숨의 무게를 구분하는가 보다.
그리 느낄 뿐이었다.
_
똑똑.
“아가씨. 저 유나에요.”
책을 읽고 있던 마타리가 책을 덮었다.
“들어오렴.”
시녀 유나가 마타리의 방안을 들어섰다.
고개를 숙여 보인 유나가 입을 열었다.
“아가씨의 말대로 여전히 검을 휘두르고 계십니다.”
“왜 그러는 건지는 알고 있는 게냐?”
“그 이유는 잘.......”
유나의 말에 마타리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의 친우 '케나 프샤'가 오라버니에게 관심을 가진 거 같더구나.”
“오 맙소사.”
유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었단다. 그 오라버니의 썩은 정체에 대해서 말이지. 가문의 명예를 생각하니 말할 수가 없더구나. 이런 이기적인 게 친구라니 우습지 않느냐?”
“아닙니다. 그런 말 하지마세요. 아가씨는 폭력을 당했음에도 가문을 위해 입을 다문 분이세요. 그런 분이 이기적이라니요. 단지 말하지 않아도 도련님과 케나님이 이어질 수 없게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겠어요?”
유나의 말에도 마타리의 얼굴은 조금도 나아지지가 않았다.
그런 마타리를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유나 눈에서 눈물이 고였다.
“불쌍한 우리 아가씨....... 그냥. 말하면 안 되나요? 도련님의 정체를요. 이번에는 살인까지 저질렀으니 믿어줄 거 에요.”
마타리는 고개를 저었다.
“두 분의 눈은 항상 나를 향해 있지 않고. 귀 또한 나를 향해 열려있지 않는단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항상 느껴온 바란다.”
“아가씨.......”
“유나야. 이제 오라버니를 지켜보는 것은 그만두도록 하자. 또 다시 직감이 말하고 있더구나. 더 이상 오라버니를 신경 쓰면 큰 화를 입을 것이라고 말이야.”
유나가 고개를 숙인 채 나가자 다시 책을 열어 읽어나갔다.
하지만 더 이상 집중이 되지 않는다는 걸 느껴 한숨을 내뱉고 서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느낌이 이상했다.
그에게서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항상 내 곁에서 속삭이던 직감이 그 때문에 불행한 [운명]이 곧 내게 찾아 올 거라고 얘기하고 있다.
복잡한 머리를 위해 산책이라도 하려는 심산으로 겉옷을 입고 밖을 나오자 고개가 저절로 위로 향해졌다.
수만은 별들이 반짝거리는 거리고 있었다.
답답한 심장이 조금은 나아지는 듯했다.
“마타리.”
그런데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절로 몸이 굳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고개가 뒤로 향했다.
“.......오라버니.”
“산책을 하고 있는 게냐?”
“예.”
짧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어서 빨리 몸을 돌려 이 공간을 벗어나려 했다.
그런데 다급함에서 일어났던 것일까 다리가 꼬이고 말았다.
당황스러움에 짧은 비명을 지르자 누군가가 자신 허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설마? 라는 생각으로 고갤 돌리자,
오라버니인 에티븐이 마타리를 안고 있었다.
짧은 침묵과 함께 눈이 마주친 것은 그때였다.
어찌 저리 알 수 없는 옳고 그른 눈인 건지.
옳은 듯하며
그른 눈, 허나 그것은 약자에겐 향한 방향,
목숨 무게를 제멋대로 파악하는 눈.
어쩌면 교활하고 잔인하다.
사람이란 신기하다.
맞지않는 부분이 마치 억지로 끼워 곧 조화롭게 된다.
약자에 속한 저를 보는 눈은 자상하다.
마타리가 항상 보던 짙은 어둠이 아니었다.
[집착] [광기] [공허] 그것이 안 보였다.
어째서 눈을 보고 어떻게 그리 확실히 판단할 수 있냐 물은 다면,
마타리는 그럴 수가 있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보면 사람의 됨됨이를.
그리고 성격을 알 수가 있었다.
어쩔 땐 [직감]이 세상 얘기를 해주기도 한다.
“조심하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와는 달리 따뜻한 어조가 들려왔다.
그런 에티븐과 살짝 거리를 두어 드레스자락을 살짝 잡아 힘을 주었다.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
살짝 웃으며 그녀 따라 정중한 어투로 말하는 그로인해 마타리의 손아귀 힘이 더 강해졌다.
이내 그가 스쳐 지나갔다.
[집착] [광기] 알 수 없는 무언가로 ,
껄끄러운 분위기로 그녀를 옭아매는 그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그녀를 감싸 안고 있었다.
점점 사라져가는 에티븐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작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군가요?”
의문이 강하게 담긴, 그 말을 내뱉고만 마타리는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그가 아닐 리가 없다. 아무리 봐도 얼굴은 그였으니.
[직감]의 속삭임은 그러지 않았으나 애써 무시했다.
직감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
직감은 그녀 편이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