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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으로 향하는 길

by 강다희

“에이. 일주일 전부터 뭐하는 거야~? 웬 수련??”

“시끄럽다. 지금 집중중인 거 모르는가?”

“언제 나와의 계약을 진행시킬 건데? 심심해 죽겠잖아!”

시끄러운 그림자를 무시했다.

하지만 그 징징거림은 멈출 줄 몰랐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검을 내려트렸다.

“그래. 내가 무엇을 하면 되는 거지?”

“살인!”

“.......”

“왜? 설마 하기 싫어? 하지만, 넌 흑기사일 때도 살인은 많이 해보았잖아? 게다가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하면 나는 주변에 있는 이들의 목숨을 취하겠어.”

그 협박에 표정이 싸늘해졌다.

평소에도 무표정이었지만 더한 그 표정에 그림자는 그저 좋다고 히죽 웃기만 했다.

“나는 이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흑기사 카야산은 전쟁에서 죽인 시체들을 끌고 가서 그 시체들을 먹는 식인이라는 소문. ‘식인’도 인간들의 머리로는 ‘죄’에 속하니 인간을 먹는 것도 어때? 평소에 네가 했을법한 것들만 해도 내 계약은 완성될 거 같은데?”

카야산은 귀찮다는 얼굴로 그림자에게 검을 휘둘렀지만 그 검은 그림자를 통과하여 허공에서 휘둘러질 뿐 이었다.

기분이 잡칠 때로 잡쳐 저택 밖으로 나가기 위해 걸음을 뗐다.

드디어 걸음을 떼자 그림자가 ‘이야~ 이제 시작하는 거야?’라며,

기분을 더더욱 잡치게 했다.

허나 이상하게 그림자가 밉지는 않다.

왜지?

“뭐....... 뭐하는 거 에요?”

“헤르. 왜 튕기고 그래? 이 저택에서 나가고 싶어?”

“.......이건 성추행이에요 이 손 놔요.”

그런데 그때

에티븐 디릭스 전속 하녀 목소리와 집사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택 대문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그쪽으로 옮겨 둘 모습을 바라봤다.

손목이 잡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인 모습과,

그 여인을 어떻게 하려는 노인이 보였다.

노인은 그 여인을 창고로 질질 끌고 갔다.

“제발. 이러지 말아요.”

“헤르. 네 아픈 어머니와 굶고 있는 동생을 생각해야지? 날 따라오면 이 저택에서 계속 일할 수 있어.”

“싫어요. 제발.”

싸늘해진 것과 더불어 짜증으로 범벅인 검정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나고 있는 검을 바라봤다.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이런 종류는 어디나 있다.

검을 자세히 들려다 보다가 두세 번 휘둘러 무심히 그들에게 걸어갔다.

그런 그를 목격한 시녀 헤르가 입을 벌리려 했지만,

손가락으로 쉿. 하며 그녀 입을 막았다.

그녀가 입을 다물자 다리를 들어 노인의 허리를 찼다.

“커억!!??”

갑작스런 충격에 노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노인폭력.”

노인을 무심하게도 쳐놓고 서는 중얼거리며 뱉는 말.

“에?”

그림자 황당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는 채 헤르에게 다가갔다.

헤르가 당황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런 헤르에게 ‘실례’라는 말과 함께 ‘가슴’을 만졌다.

석상처럼 굳은 헤르 반응에도 불구하고,

카야산 다음 움직임은,

그녀의 두 손으로, 그녀 눈을 막았다.


무서워하며 헤르가 손을 내리려 했지만,

“떼지 마.”

차가운 목소리에 다시 굳어, 내리지 못하고야 말았다.

그런 헤르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또 다시 중얼거리며 말을 뱉었다.

“성추행.”

방향을 틀어 검을 들어 집사에게 다가가 등을 그었다.

푸슉. 튀어나오는 핏줄기를 맞으며,

고통으로 눈이 튀어나온 집사의 몸을 돌려 눈을 팠다.

“고문.”

그리고.

“살인.”

꺼억하고 신음을 흘린 집사를 무심히 훑어 손가락을 자르고 발가락을 잘랐다.

끝내 쇼크사로 죽은 노인 얼굴을 발을 들어 무참히 짓밟았다.

“시체해손.”

피투성이 시체와는 달리 무척이나 담담한 어조가 괴이했다.

"꺄....... 꺄아아아악!!“

갑작스런 비명에 고갤 돌렸다.

떼지 말라고 했더니 손을 내려 비명을 지르고 있는,

시녀 헤르가 보였다.

그런 비명이 시끄러운 관계로,

귀를 막아 그림자를 바라봤다.

“난 지금 몇 가지의 죄를 지었지?”

멍하니 있었던 그림자가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히죽 웃었다.

“5가지.”

-

16년 전, ‘바하루샥’(왕의이름) 12력. 전쟁이 시작되었다.

수만은 이들이 죽었고,

많은 이들이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다.

그런 전쟁 가운데서 우리 기사단 ‘케르베로스’도 포함되어있었다.


“단장!!! 또 시체 묻었어요!?”

푸른 머리 금안인 여성.

‘사야 에반드’가 짐짓 허리에다가 손 얹어놓고선 엄한 표정 짓고 있다.

“어떻게 알았어?”

“기사들과 병사들 사이에서 단장이 또 시체를 끌고 갔다는 소문이 완성하니까 알고 있죠! 이제 그만 무덤 만들라니까요? 이상한 소문 돌잖아요! 단장이 시체를 먹는 식인이라는 둥! 시체로 악마를 소환하려고 하고 있다는 둥!”

“재밌네. 그런 상상력은 어디서 발휘하는 거래?”

사야 에반드가 후. 어이없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모습이 웃겨 키득키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한숨을 내쉰 사야가 건방지게도 내 머리를 눌렀다.

“단장 같은 꼬마한테 그런 괴상한 소문이 있다는 게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나 알긴해요?”

“버릇없네. 사야. 손목 꺾어 버리기 전에 놔라?”

당시 15세였던 나는 또래 비해 보다도 키가 아직 덜 자랐기에 무척이나 작았었다.

그런 나를 보며 사야는 꼬마라며 자주 놀리고는 했었다.

그게 못내 못마땅한 나였지만,

사야는 그런 나와 상관없이 여전히 날 놀리기를 취미로 둔 아이였다.

“아아. 그 귀엽고 ‘누나~’하며 따르던 카야산은 어디가고 이런 애늙이가 되어버렸을까?”

귀찮아 사야 손을 툭 쳤지만 사야는 무슨 장난을 생각해내었는지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단장. 물 마실래요?”

“아니.”

“왜? 마셔.”

이래 봐도 단장인데 너무 막대하지 않나 싶어 뭐라 한마디 하려고 했으나 싱글벙글한 사야 얼굴을 보자니 한숨밖에 나오지가 않았다.

다른 이들은 괴물이라며 수군수군되기 바쁜데 이 아이와 내 친우만이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게 비록 어렸을 때 나를 알고 있기에 그런 것일지도 몰라도 그것이 얼마나 내게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결국 사야 웃음에 약해져 물을 받아드리자 빤히 보는 사야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애써 무시하며 물을 마시려는 그때

“큽?”

사야가 내 목을 쳤다.

목이 탁 막혀 눈에 살짝 눈물이 고인 채 켈록켈록 거리고 서는 사야를 바라봤다.

그런데 이놈의 사야는 여전히 싱글벙글거리고 있었다.

“역시. 단장 목젖 생겼어!”

남자니까 목젖이 생기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그게 뭐라고 사람 목을 친단 말인가 황당함에 입을 꾸욱 다물고 있자,

사야가 특유 시원한 웃음으로 ‘우하하하’ 웃음을 퍼트리더니 턱을 괴었다.

“이제 남자네~.”

“........”

얘는 날 너무 어린애로 본다.

그걸 알고 있지만 사야의 항상 훅 들어오는 말에 무척이나 쑥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침묵을 지키며 정면만을 바라보자 나를 빤히 보던 사야가 입을 다시 열었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불안해진 내가 힐끔 사야를 바라봤다.

“단장. 속눈썹에 땀방울 맺었어.”

나는 손을 들어 땀방울을 닦으려고 했다.

그런데 사야가 그것을 저지하며 또 다시 훅 들어오는 말을 내뱉었다.

“응. 섹시하네. 그대로가 좋은 거 같아.”

“.......”

이 녀석 못하는 말이 없다.

제발 좀 그만해줬으면 좋겠어서 두 손으로 피곤한 얼굴을 가리고 있자,

사야가 아하하하 웃으며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다.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좋았을 텐데.”

어느새 낮아진 사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사야를 바라보자,

사야는 쓴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우릴 항상 지켜주는 단장인데. 너무하다 그치?”

자상한 사야 그 딱 한마디가,

다른 사람들 몇 배 불쾌한 소리를 정화시키는 듯했다.

그런 사야가 좋았다.

어느 누구보다 나를 이해주고 날 생각해주는 그런 사야가 좋았다.

그리고 지금 여왕이 된 그녀를 무엇보다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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