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몸에 좋지 않아.”
‘카야산 돌’ 이제는 ‘에티븐 디릭스’가 된 회색머리 소년이 담배를 피우며 인상 찌푸렸다.
말과는 다른 행동에 주윌 빙글빙글 돌고 있던 그림자가 깔깔 웃었다.
“에티븐은 엄청난 흡연자거든. 그 몸은 중독 될 대로 중독되었기 때문에 끊기 어려울 거야.”
“그런 거 같군.”
손이 부들부들 떠는 현상에 당황하고 있었는데 그게 중독 현상이었다니.
기사로서 담배를 꺼리는 자신에게 있어서는 처음 보던 증상이었다.
그때 친구 녀석을 놀리던 게 후회가 될 정도였다.
“에티븐은 죄를 6개를 지었어. 자살을 했으니 현재 네가 해야 할 죄는 총70개야.”
“그렇군. 그나저나, 여기가 이 몸체의 저택인가?”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저택에 카야산은 고개를 들었다.
그 저택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수상히 여기지 않고 고개를 한번 꾸벅 숙여 보인다.
다행히 옷은 그림자가 어떻게든 해주어서 담요차림은 아니었다.
평소 에티븐이 자주 입고 다닌다는 프릴이 달린 옷이었다.
이 빌어먹을 긴 머리카락만큼 거추장스러움 극치에 일렀다.
저택 안은 겉에 보이는 밖과 마찬가지로 성으로 보일 만큼 거대했다.
연못에 놓여있는 다리를 지나 향기를 자극하는 꽃밭을 지나자 몇몇의 소녀들이 고급스러운 하얀색 테이블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저 검은머리의 여자 보이지? 저 여자가 에티븐 이복동생. ‘마타리 디릭스’야.”
“그와 그녀가 친한가?”
“아니. 에티븐은 6개의 죄 중 하나를 저 재수 없게 생긴 동생에게 지었어.”
“무엇을?”
“폭력을.”
맙소사.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동생을 때렸다니. 카야산은 기가 막혔다.
“심하게 때렸나?”
“물론. 에티븐은 하면 하는 화끈한 성격이야.”
그림자가 칭찬 아닌 칭찬 같지도 않는 헛소리를 내뱉는다.
그는 무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그런 카야산을 발견한 에티븐 동생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랜만이에요. 오라버니.”
“음. 그래.”
카야산이 어색해남아 고갤 끄덕이자,
에티븐 동생 마타리가 친구들을 소개해나갔다.
소개와 함께 그녀들 인사가 차례차례 이어이지고,
그런 그녀들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며 예법을 표해냈다.
“그럼. 잘들 놀다 가시죠.”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어서 빨리, 그리고 티 나지 않게,
벗어나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어냈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짓임도 불구하고 죄책감으로 인해 그 자리가 무척이나 불편했다.
“에이. 거기서 그렇게 도망가는 게 어디 있어? 무서우면서 안 무서운 척 하는 그 당돌한 여자를 놀려주지도 않고!”
“놀리는 게 그 죄에 해당되는 건가?”
“주신이 인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죄는 인간 생각에서 나타나는 거기 때문에 그 여자가 죄라고 생각한다면 죄이기도 하지. 그나저나 그런 걸 죄라고 생각하는 발상이나 하고 있다니! 그런 시시한 죄는 에티븐은 하지 않았어!”
“......말을 말지.”
카야산이 한숨을 내쉬며 ‘에티븐’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무척이나 호화로웠다.
무척이나 불편함을 느낀 채 근처 소파에 앉았다.
여기에 있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영지를 위해 쓰기만 해도 몇몇의 가정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뒤로 젖히자 피곤함이 몰려왔다.
서서히 감기는 눈을 깜빡이자,
옆에 있던 그림자가 ‘쉬어.’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카야산이 눈을 떴을 시점에서는 보름달이 환하게 떠 있었다.
불편하게 자 아픈 목을 주무르고 있는데 시선이 가냘픈 팔목으로 갔다.
운동을 하는 건지 모를 팔목에 혀를 차고선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아 다시 자려던 때, 그림자가 하던 말을 문득 떠올렸다.
‘에티븐은 실패했으니 못 들어주고 너의 소원을 들어줄게.’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 ‘그녀’를 지켜주고 싶다는 소원은 아무리 그 악마라도 할 수 없는 것일까?
그래. 이미 영혼이 떠나고 썩은 몸을 살리기는 어려울 테지.......
믿음직스러운 많은 기사들이 그녀를 지키겠지만 욕심 같아선 자신이 그녀를 지키고 싶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는 깊이 생각해서 해답을 찾아서야 잠이 들었다.
-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이 저택의 도련님이신 ‘에티븐 디릭스’를 깨우러 나선 시녀 헤르는 한숨을 내쉬며 방문을 두드렸다.
한동안은 깨어나지 않을게 분명하기에 몇 번 동안 방문을 두드려야 할지 의문이었다.
‘똑똑’
사실상 점심이 되어서야 일어나는 도련님 방문을 두드리는 것을 절차상 그럴 뿐.
방문을 두드리는 거 자체 의미는 없다.
왜냐하면 일어나지를 않으니까.
그 땜에 공작과 부인에게 욕먹은 적이 많았지만,
현재 지금, 공작과 부인도 포기한 상태로 보였다.
역시나 도련님은 일어나지 않았는지 아무 소리도 없다.
다시 노크를 하기 위해 주먹을 들었다.
‘덜칵.’
그런데 웬일인지 안에서 열리는 법이 없는 문이 열렸다.
얼떨결에 손을 내려 멍한 눈으로 에티븐 디릭스를 바라봤다.
축축하게 젖어 있는 머리카락이,
저 에티븐 디릭스가 씻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놀라움 그 자체에 입을 헤. 하고 벌리고 있자,
에티븐 사나운 인상이 더욱 사나워졌다.
“사람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건 뭔 무례이지?”
“죄.......죄송합니다.”
시녀 헤르가 급히 고개를 숙이자,
에티븐 디릭스가 무시하며 지나쳤다.
뒤를 졸졸 따라가던 헤르가 자기 머리를 살짝 때렸다.
사람이 항상 똑같을 수는 없다고 저 막장 에티븐도 일찍 일어나는 날이 언젠가는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그걸 멍청하게도 멍하니 있다니 전문 시녀로서 실격이다.
자절 모드와 자책 모드에 나서는 헤르 그녀만의 사정을 모른 채 에티븐이 작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리 말할 거 같은데. 맞는가?”
옆에 있던 그림자가 고갤 저었다.
“에이~. 에티븐은 그렇게 안 말한다고?”
“그럼 어떻게 말한다는 거지?”
“음. 예를 들어. 계집. 그 하찮은 눈깔을 파야 눈을 돌릴 건가? 라던가? 이왕 손찌검까지 하면 더더욱 에티븐답지!”
말투까지 흉내 내며 하는 말에 입 꼬리가 씰룩였다.
뭐 저런 상스러운 말을 함부로 하는 자라니.......,
태도 그리고 말과 생각이 불량 그 자체이니 귀족으로써 실격이다.
시녀 길안내가 아닌 그림자 안내 따라 식당으로 들어서자 근엄한 표정을 짓는 공작과 그 부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에티븐? 웬일이냐? 네가 이리도 일찍 일어나다니.”
공작 말에 멈칫했다.
게으름까지 있는 자라니.......쯧쯧.
“앞으로도 일찍 일어나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그래. 오늘은, 일찍 일어나는 너를 보아서 그런지. 기분이 좋구나.”
“에티븐 눈이 오늘따라 총명해보이지 않나요. 여보?”
부인 말에 공작이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
부인 말대로 오늘따라 에티븐 눈에선 힘이 깃들어 있어 보였다.
항상 공허하던 그 눈이 아니었다.
에티븐이 자리에 앉자,
에티븐 이복동생이 들어왔다.
공작과 부인에게 고개를 숙인 이복동생인 마타리는 오늘따라 일찍 온 에티븐을 슬쩍 보고서는 고개를 다시 한 번 숙여보였다.
“아버지. 어머니. 요즘 따라 더 일찍 오시네요. 혹시 잠이 안 오시는 지요?”
“늙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인 거 같구나.”
공작 말에 마타리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뇨.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도 젊으세요.”
“허허 말이라도 고맙구나.”
상당히 동안인 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니 어색했다.
짧은 담소와 함께 식사가 시작되었다.
공작이 주로 대화를 주도 했고, 그 부인이 맞장구를 치는 식으로 다시 식사와 함께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 시간 반 정도의 긴 식사 시간이 끝나고 다시 방으로 올라온 카야산이 경직된 목을 풀었다.
“불편하군.”
“뭐가 말이야?”
그림자가 갑작스레 나타나 물었다.
놀람 없이 덤덤하게 말 이어갔다.
“아들이 사실은 다른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부모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겁기만 하군.”
“에이~. 하지만, 저들도 너를 더 좋아하는 거 같은데?”
“부모에게는 천재 같은 가짜 아들보다-. 바보 같은 진짜 아들만이 신경 쓰이고 걱정하는
법. 이 몸체 속이 다른 이라면 얼마나 속이 무너져 내릴지 걱정이야“
“흐음 그래?”
난 그런 건 모르겠다, 시큰둥한 그림자 반응에도 수심이 깔려있는 카야산이었다.
다음날 아침.
5시에 일어나 어제와 마찬가지로 가벼운 운동을 끝낸 후 샤워를 하고 그 부모와 아침 식사를 한 후에서야 검을 들어 정원에서 휘두르고 있었다.
허약한 팔 다리.
이 걸로 그가 원하는 곳엔 가지 못한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육체를 단련해야했다.
그런 그를 창문을 통한 위에 지켜보고 있던 마타라가 심리를 알 수 없는 무표정을 하며 커튼을 쳤다.
‘검이란 고사하고 운동자체 안한 몸이군.’
원래 몸 실력으로 다시 돌아갈지는 수련으로 나타난다. 원래 실력으로 돌아갈지는 미지수지만 그 끝자락을 조금이라도 잡아야한다. 그래야, 자신이 원하던 목표가 이루어질 테니까.
그런데 그때,
지잉.
머리가 울렸다.
이런 종류 고통은 처음 느껴보았다.
극악무도한 고통이 머릴 파괴하려 발버둥치고 있다.
[도망가라고 했잖아.]
잿빛 머리 소년이 공허한 얼굴로 말한다.
[그가 도망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냐.]
회색머리카락과 연한 보라색눈동자를 지닌,
[코로나일 전투민족]으로 파악되는 자가 고갤 저었다.
허나- 겉모습을 숨기고 있는 자였다.
[왜 도망치지 못 한 거야?]
잿빛소년이 탓 한다.
허나 코로나일 일족이 그저 웃었다.
[그녀가 성공했나보군.]
잿빛머리 소년이 어이없이 웃는다.
[남 속이는 걸 취미삼아 하더니]
[그녀가 널 속이 걸 재밌어하긴 하지.]
소년이 토라진 얼굴로 코로나일 일족을 노려봤다.
코로나일 일족과 소년은 닮았다.
그리고 이 몸체와 닮았다.
코로나일 일족이 나를 바라봤다.
[이번엔 네가 원하던 세상이 과연 될까?]
그리고 그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이 될까.
그들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뿌옇던 시야가 뚜렷해졌다.
숨을 헐떡인 채 눈을 깜빡여 떨어진 목검을 바라봤다.
뭐지.
그건?
겨우 진정된 두통에 인상을 쓰며 검을 다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