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피곤해
타인이 좋다. 그러면서 피곤하고 싫다. 유년기 때문일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 끼적이고 있었다. 문득 끼적이고 있었다. 장난감은 없었고, 엄마가 우릴 위해서 부친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많은 책 사주었다. 책과 공책 연필은 내 장난감이었고, 내가 언제부터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를 시기부터 공책엔 내 글들이 있다. 지금은 집이 불이 나서 사라졌지만, 난 나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 좋아했다. 그러니 유년기 친구들도 없었다. 동창들은 말한다. 넌 항상 뭔가 끼적이고 있었다. 뭔갈 쓰고 있었다고, 맞다. 난 수업 시간에도 국어, 사회, 역사 시간(내겐 흥미로운 주제라서 좋아했다.) 빼곤 자거나 끼적였다. 나만의 세계가 너무 뚜렷해서 사차원이라는 소릴 종종 듣는다. 중학교 넘어와서 친구들이 생겼다. 단지 예쁘장한 외모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소통할 줄 몰랐다. 그러니 점점 멀어지다가 중학교 때 소통을 배우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친구와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지금은 심리학이나 책을 너무 많이 읽은 탓에, 주변에 사람이 많다. 나는 그 사람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공허하다. 다들 하하 웃지만 속은 허하다. 그 마음을 달랠 구간은 집에 틀어박혀 글 쓰는 거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글로 푼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하다. 내게 세로토닌 친구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한 번 나갔다가 오면 이주 정돈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카톡 알람을 끄거나 폰 전원을 끈다. 전원을 꺼 나만의 공간에 있는 것이다. 나의 세계에서 나는 고독을 좋아한다. 친구들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너무, 고마운 친구들이다. 새로운 친구들도 처음엔 연락이 되다 말다 하는 날 이상하게 바라보다가 지금은 이해해준다. 난 사람을 만날 땐 그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핸드폰을 잘 안 본다. 내겐 상대가 날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바라봐야 한다는 철학이 있다. 그들을 깊이 공감하고 들으며 이해한다. 핸드폰을 자주 보는 친구면 그에 맡게 행동한다. 나는 변온동물이다. 모든 사람 성격에 맞춰 행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