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문을 열지 마.
마음에 문은 누구나 있다. 내 심연은 페르소나로 버티다 버티다 지쳐 사람들과 한동안 연락이 끊길 때다. 나는 보육교사를 몇 년 했었다. 그런데 보육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우울증이 심하게 왔다. 완벽주의자 성격인 탓에 애들과 눈이 마주치면 웃고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동료들과 상사에게도 웃어야 했으며, 학부모도 마찬가지였고 서류와 알림장은 많았다. 웃으며 애들을 상대하고 애들 행동 특성을 매일 분석해야 했다. 집에 오면 아무도 집 안 정리를 안 하고 언니와 엄마와 싸우기 일상이었다. 난 점점 나를 잃어갔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하이텐션 친구는 그 친구와 맞게 놀고 조용한 친구는 그와 맞게 놀았다. 지인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항상 웃고 있었다. 나는 내가 누군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분명 내 속은 말이 아닌데 왜 웃고만 있을까. 내가 슬퍼하고 있다는 걸 아무도 알지 않았으면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지금도 그렇다. 난 내가 우는 모습과 슬퍼하는 모습 기력이 없는 모습 지친 모습 다 보이기 싫다. 내 감정을 타인에게 옮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아무렇지 않게 우울증이라고 하면 놀란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당연하지. 몇 년간 내가 얻은 페르소나인데. 우울증인 사람들은 의외로 티가 안 난다. 가끔 어떻게 티가 날 땐 연락이 안 될 때 빼곤 없다. 건들지만 않으면 의외로 멀쩡한 티를 제법 낸다. 교사로서의 역할과 개인 생활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일상적인 책임과 갈등과 함께 특정 인물을 유지하고 끊임없이 미소를 지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지칠 수 있으며 정신 건강에 큰 타격을 주었다. 항상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행복하고 강인한 페르소나를 얻었더라도 때때로 압도되고 슬프고 지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진정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고갈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내가 겪고 있는 일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보여주고 싶지않다. 감정은 이동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내 깊은 내면과 슬픔을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