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잘래.
우울증이 참 웃긴 게 어쩔 땐 잠만 자게 되고 잠만 자고 싶은데 잠이 아예 안 올 때도 있다. 현실도피가 시작되어 수면이라는 포근한 자살 하고 싶었다. 약을 오남용하며 잠만 잤다. 모든 것이 무기력해져선, 아무것도 없이 동굴에 숨어 있었다. 잠만 자고 싶은데 불면증이 있어 자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무기력하다. 모아둔 약은 내 미래 같았다. 그리고 내 희망 같았다. 저 약을 다 먹고 몽롱한 상태에서 옥상에서 떨어질까? 목매달 아서 자살할까? 차라리 어린이나 노약자가 위험에 처하면 이 한 몸 바칠 수 있는데 그러면 죄책감도 안 든다. 부정은 부정을 낳았고, 침식하였다. 내게 오는 잠만 잘래는 편하게 죽음을 선택하고 싶다는 거다. 잠만 자며 영원히 깨어나지 않길 바란다. 누구는 나를 게으라다고 판단 할 수도 있다. 우울증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우울증은 게으른 것과는 다르다. 죄책감을 갖지 말라는 얘기다. 아무래도 우울증은 나 자신의 부정과 죄책감에 휩싸인다. 아프니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타인은 그것을 모른다. 나는 잘 때마다 불안에 휩싸인다. 내 어렸을 적 버릇은 자기전에 계속적으로 기도한다는 거다. 처음에는 제가 아파도 상관없으니까 우리 엄마 행복하게 해주세요,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아프지 않게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강박이 심해져 계속 기도를 한다. 며칠 전에 깨달았다. 내가 아프면 우리 엄마가 행복할 수가 없다는 것을 우울증으로 무기력할 때 단 2년간 빡세게 2억을 모아 집을 사거나 전세집이라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기도는 이제 바뀌었다. 희생양이 내가 아닌, 우리 엄마 행복하게 해주세요.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아프지 않게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기도를 하며 희생양은 이제 내가 아닌, 가정폭력 했던 부친으로 삼았다. 이건 이주 전에 바뀌었다. 조금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느덧 뼈저리게 느꼈다. 내 생각은 계속 끝임없이 반복적이었고, 약은 어느덧 내성이 생겨 아무리 먹어도 졸리지가 않는다. 내 불면증은 계속되고 있었다. 잠만 자고 싶은데 말이다. 영원히 잘 수 있으면 더더욱 좋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