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친절히 얘기 해줘야 해?

by 강다희

얼마나 친절히 얘기 해줘야 해?

자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그런데도 변화가 없는 보호자 당신이라면 내가 얼마나 더 친절히 얘기해줘야 하는지 눈앞이 깜깜하다. 이렇게나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줬는데 얼마나 친절히 더 얘기해줘야 하는가. 어디가서도 이렇게 친절하고 자세히 얘기하진 않을 거다. 공감능력(EQ)이 없으면 요즘은 멍청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발끈 했는가? 발끈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면 다행이다. 당신이 그 사람을 위해 이론만 잘 이해했다면 다행이다. 타인과의 대립이 있을 때 난 정말 친절히 얘기했다. 우울증은 이렇다 저렇다. 얘기까지 했으며 타인은 내 자살과 자해 장면을 보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려는 시도가 없었다. 난 포기하여 방문 앞에 메모를 남겼다. 대충, [입맛도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말 걸지 말아주세요] 그러나 소용없었다. 내가 우울증인 거 알면서, 문 앞에 메모까지 해놓고 심지어 내가 설명까지 했는데 내가 진짜 얼마나 단전까지 끌어올리며 친절히 얘기해야 하나 싶어 따져 물었다. 우울증 개념 자체를 다르게 이해하고 있고 우울증이 단순히 우울함으로만 생각하던 타인과의 대립은 내 기력을 빼놓았고 죽고 싶게 만들었다. 제일 이해해줬으면 하는 타인, 엄마와의 대립. 다른 사람이라면 연을 끊겠지만 엄마라 그럴 수 없었다. 우울증 초반에는 말이 통하지 않아 약 몇 년간은 얘기하지도 않고 살았다. 엄마가 퇴근하고 와도 인사조차 안 했다. 엄만 애교부리며 제주 사투리로 “마미 완~?(마미 왔어?)” 하던 작은 딸이 어느 날 반응조차 안 하자 넌 엄마가 왔는데 인사도 안 하냐고 뭐라고 했다. 난 그때 엄마가 싫다는 감정을 처음 느껴 당혹스러웠었다. 그래서 엄마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렸을 때 이유 없이 때리는 가정폭력 부친에게 자라나면서 하느님에게 매일 기도하며 오늘은 제발 안 맞게 해주세요. 빌었다. 하느님은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 신은 없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신을 부정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허나 지금은 부정한다. 신은 없다. 그때의 당혹스러움과 같았다. 그리고 현재 인정한다. 아무리 엄마라도 쌓인 감정은 ‘싫다’ 라는 감정을 크게 만든다는 것을. 부정하다가 결국 인정하자 속이 시원해졌다. 엄마가 싫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느 무엇보다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내게 신은 엄마였지만 부정과 인정 단계를 거치니 신이 아닌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난 어렸을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엄마를 신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멋대로 실망한 것이다.

우울증은 많은 사람이 겪고 있다. 그만큼 전 세계적으로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널리 퍼진 정신 건강 장애인 우울증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한 연구는 지금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우울증의 원인, 증상 및 치료 양식 심층 탐구를 통해 우울증과 개인, 가족, 및 사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했다. 연구는 이 복잡한 상태에 대한 전체론적 조사를 제시하기 위해 기존 문헌, 경험적 연구 및 전문가 통찰력을 검토하였다. 연구 결과는 우울증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조기 식별, 개입 및 다차원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중,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 관심과 이해심을 가지고 접근하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증인 사람에게 잔소리는 독이다. 특히나 쏘아붙이는 잔소리는 더더욱 독이다. 처음에는 설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설명이 통하지 않으면 쌓이고 쌓인다. 타인과의 대립은 안 만나면 된다. 그런데 직장이나 가족 같은 경우는 계속 봐야 한다. 잔소리를 듣고 고쳤거나, 천천히 고치고 있는 경우에도 몸이 무기력한 사람에겐 알아주지 않고 쏘아붙이면 극도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아지고 있는 사람에게 우울증을 살과 피를 내주는 거 같다.

우울증환자가 약을 쎄게 받는 경우 대부분 수면으로 그 충동을 억제한다. 약이 너무 쎄서 무기력한 상태에서 더더욱 무기력해져 수면으로 자살충동을 억제하는 것이다. 우울하고 슬프고 울적한 기분이 들고 매사에 시쿤등하고 식욕 변화 어쩔 때 폭식 어쩔 때 아예 입맛이 없거나 둘중 지속 되는 증상과 수면장애나 행동이나 생각이 느려지고 자책이 많아지고 기억력이 떨어지고 자살충동에 시달리린다. 그리고 윗글이 부합하고 일정기간동안 오래 지속되는지 감정변화가 격하면 조울증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자책감과 사회 구성원으로서 내가 필요성이 없다 느끼는 우울증 환자에게 잔소리나 활동하라 재촉하는 것은 죽으라고 소리치는 거와 다름없다. 이런 비루한 상태에서 노력했음에도 날 죽이려 드는 보호자. 그 보호자와 충분히 해결하려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죽이려 든다면 내 선택은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이유를 말했음에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보호자가 아니다. 오히려 어렸을 때 트라우마와 함께 현재 가해자가 된다. 내가 이만큼 키웠는데 얼마나 열심히 키웠는데 왜 그건 생각하지 않냐고 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안 좋은 거만 생각해서 그런 거냐, 다 내 탓이냐 묻는다. 난 엄마가 나에게 헌신한 거 아니깐 그만큼 고마운 거다. 엄마는 솔직히 생각해야 한다. 그만큼 헌신했지만,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라는 존재로서 같이 헌신했다. 의존했다. 회피의 장치로 두었다. 딸 상실을 두려워했다. 감정적 요구도 많았다. 엄마 스스로 독립되는 것이 무서웠을 것이다. 헌신의 대가를 자녀가 치러야 했다. 어느 날 엄만 가해자가 되었다. 스스로 생존을 위해 행동을 하기도 했다. 중학교 때 중학생이라는 이유로 시급을 덜 받으며 엄마한테 월급을 다 줬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학교 다니며 직장생활을 함께 하며 월급을 다 줬고, 대학교 끝나자마자 어린이집 직장을 다니며 월급을 엄마에게 다 줬다. 그만큼 고맙고 사랑하니까 그리고 미안하니깐. 내가 있어서 고생시키는 거 같아 힘들었다. 내 존재 자체가 싫었다. 그런데 뼈 빠지게 일해놓아 엄마한테 돈을 맡기면 내가 내야할 것들을 안 낼 때가 많아 신용이 떨어 졌다. 신용 떨어지니까 내달라고 독촉을 계속해야 해서 월급날이 싫었다. 집안일도 내가 독차지였다. 나는 그때 억압되어 있고 가장이라는 몸무게에서 그 흔한 쇼핑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가장 자리에 내려오자 막힌 게 풀린 거다. 우울증에서 단순한 쾌감, 쇼핑이라는 것을 한 거다. 엄마는 줄이라 해서 줄였다. 심지어 필요한 거, 부를 게 있으면 엄마한테 미리 말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엄마가 싫어하니깐. 그런데 엄마는 쏘아붙였다. 나는 참다가 터져 나왔다. 자해, 자살 시도 다 해봤다. 엄마가 하지 말라는 건 조금씩 고치거나 아예 안 했다. 좋은 엄마는 무엇일까? 우리 엄마도 좋은 엄마다. 하지만 좋은 보호자는 아니다. 좋은 보호자는 얘가 어떤 심리에서 이런 행동들을 할까 생각하는 거다. 우울증 환자는 아무래도 자책이 심하고 모든 행동에는 다 의미가 있다. 통제는 날 죽이는 거와 같았다. 독립된 개체로 생각하지 않고 엄만 날 투영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난 독립된 개체다. 본인 통제도 어려운데 남 통제가 과연될까? 생각과 의견 느낌을 존중해줬다면 내면의 힘을 키워줬다면 이런 상황이 왔을까? 내가 엄청, 잘해도 개입이 오고 통제가 왔다. 내가 엄청, 못해도 개입이 오고 통제가 왔다. 언제든 존재로서 수용 받지 못했다. 심지어 나한테는 글도 쓰지 말라고 했다. 나와 맡지 않는 미용 공부를 하게 했다. 가족끼리 일이 일어나면 얘만 바뀌면 돼 그러면 다 편안해진다 이런 시선이 거북하다. 가족은 서로에게 영향을 많이 줬기 때문에 모두 각 책임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우울증 환자가 이렇게 된 건 각 개인의 탓이 있다는 거다. 혼자 아파서 발버둥 치고, 심리학을 공부하면, 뭐해? 내가 알아야 할 정보는 나만 알려고 노력하고 다들 노력하지 않으니 난 멈춰있을 수밖에.

엄마에게 항상 최선을 다하던 딸이기에 그 격차가 심해진 내가 이해가 안가는 건 이해한다. 그런데 내가 우울증이라고 왜 엄마한테 이런식으로 나오냐 반응은 옳지 못한다. 내가 얼마나 너희에게 헌신했는데 왜 그건 생각을 안 하냐며 나에게 따지는 건 옳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난 엄마에게 헌신을 했던 사람이기에 내가 우울증이면 그냥 나두는 방법도 알아야 하지 않은가 나에게 엄마가 신이었기에 너무 사랑했기에 이제 엄마한테 화해시도 안 하고 무표정으로 있기, 자취하면 날 위해서 최대 5년 연끊기, 대신 평소와 같이 잘 때는 엄마 기도 매일 해주기만 할 거다 나는 죽고 싶으면서도 살고 싶다.

솔직히 연을 끊는 건 어렵다. 서로에게 상처다. 우울증 환자가 살아남기 위해 이 책을 줬다면 난 살고 싶고 당신과 연을 끊고 싶지 않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날 알아줬으면 했을 것이다.

엄마는 말한다. 너 힘든 것만 생각하고 너희들 키우느라 고생한 건 생각안하냐고, 난 어렸을 때 부터 엄마에게 제일 반응하는 아이였다. 엄마가 힘들 때 제일 반응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부터 일했고 내 세상은 내 행복 보다 엄마 행복이 우선이였다. 학폭을 당해도 성추행을 당해도 말하지 않았다 다 내겐 엄마였고, 사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참았다. 그런데 내가 힘들다고 호소하면 엄만 다시 되돌이표가 되었다. 잘 생각해보라고, 묻고 싶다. 엄마가 맞을 때 엄마 그만 때리라고 내가 대신 맞았고 동생 기저귀도 내가 갈았고 집안 청소도 내 몫이었고 집안 가장이 되어버린 것도 나였다. 남동생이 말했다. 누난 내어렸을 때 내 아빠였다고, 엄마 힘들때 돈이 문제였으면 어렸을 때 부터 벌어서 줬다. 엄마가 아프면 뭐가 문제길래 아플까 잠을 설치며 공부했고 할머니가 돌아가실때 내가 울면 안되니까 울음을 꾹 참고 공부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에게 도움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잤다. 그러면서도 우리엄마는 묻는다. 내가 힘들었던 건 생각안하고 다 우울증 탓이라고 말하면 다냐고, 엄만데 이런 말 하면 안 되냐, 엄만데, 엄만데, 뭐든지 말하면 엄만데, 항상 되돌이표가 되어 대화가 통화지 않았다. 몇년동안 시도했지만 엄만 내 우울증을 몰랐다. 내가 무감응증에 몇년동아 56kg에서 40kg빠져도 몰랐다. 그저 몸무게가 고무줄이냐고 물었을뿐 어디 아프냐 괜찮냐 밥은 먹고 다니냐 묻지 않았다. 난 그 무심함이 사무치게도 아팠다. 내가 겨우 어쩌다 싸우다가 무감응증이라 빠졌다고 얘기해서야 알았다. 엄마는 어렸을때 내 이십대 중후반을 너무 비교하며 날 본다. 결국 무너지게 기반을 만든 건 엄마였음을 모른다. 모든 돈을 다 줬다. 내 세상은 온통 엄마였기에, 그런데 어느날 엄마가 내 핸드폰비도 안 내고 보험비도 안 냈다. 내 신용이 떨어지니 내달라고 했으나 안 냈다. 난 내 월급날이 싫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리도 좋아했지만 난 엄마에게 내라고 독촉을 해도 안 내니 그게 너무 힘들었다 월급날마다 독촉이 힘들었다. 그러면서 언니는 그래도 어쩌다 한달에 한 번 알바하면 다 준다고 왜 너는 늦게주냐고 물어봤을 때 내 세상은 무너졌다.언니가 이십대 초중반 때 택배를 많이 부를 때였을 적은 그리도 무심하면서 지금 내가 택배를 부르면 뭐라고 한다. 그냥 엄마를 너무 사랑한 탓이었을까? 어렸을 때 부터 엄마 감정을 너무 많이 이입한 탓일까? 내 십대 이십대를 남동생과 언니처럼 엄마에게 다 주지 않았다면 내 우울증이 이렇게 오게 되었을까. 난 그저 엄마가 먼저 미안해 난 그저 엄마가 널 이해하도록 노력할게 그 한 마디가 듣고싶다. 내 삶이 너무 고되서 그저 날 위해 엄마가 이렇게 이렇게 널 키웠는데 보다 다희가 날 위해 노력한 걸 하등시 보지않고 대화가 되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엄마를 너무 사랑한 탓에 버릇이 있다. 자기 전 엄말 위해 기도한다는 거다. 지금도 그 버릇이 있어 빠지지 않고 엄마 건강하게 행복하게 오래살게 해주세요. 엄만 말한다. 내가 우울증 걸리니 내 팔자야. 애들 다 키워놨더니 내가 우울즐에 걸리니 힘들고 얘기한다. 그 길까지 내가 옆에 같이 동반자였음을 모른다. 난 딱히 남한테 상처받지 않는다. 그런데 내 모든 걸 준 가족에겐 너무 상처를 많이 받는다. 그저 언니와 남동생처럼 살았으면 내가 이렇게 상처를 받을까 생각한다.

어렸을 때 엄마 아픔에 항상 외면하지 않았었다. 폭력에 노출되면 나를 때려라 돈이 문제였으면 돈을 벌었다. 엄마가 말했다. 우린 가족이니깐 으싸으싸 하자고 그 말에 제일 반응한 건 나였다. 내가 언니 남동생 처럼 무심했다면 이렇게 상실감이 크게 왔을까? 근데 엄만 막상 으싸으싸 하자 해놓곤 막상 내 아픔은 무시했다. .상처를 툭툭 쳐서 내 벽이 무너져갔다. 가족구성원 중에 쟤만 괜찮으면 될 텐데 바라보는 시선과 내 팔자야라고 말하고 이제 다 키웠더니 너가 아프냐고는게 내게 독이되었다.

엄마 부모님 보다 엄마 자신보다 언니보다 남동생 보다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있게 엄말 너무 사랑했는데 그 벽이 하나하나 무너질 때 난 상실감이 심했다. 엄마랑 다퉜다 결국 엄마가 나를 껴안으며 앞으로는 날 더 이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얘기했다. 나는 물었다 이제 엄마 계속 사랑해도 되는 거야? 나한테 벽이 점점 무너지게 하지 않을꺼야? 엄마가 노력하겠다고 했다. 내 커다란 상실감이 더 한 번 미친듯이 사랑하자고 속삭였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미친듯이 간지러워서 긁던 행위도 간지럽지가 않았다. 다시 돌아왔다. 엄마에게 어렸을 때 결국 내 전부였던 내 사랑이 계속 사랑해도 되냐 물었다. 엄마는 노력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다시 한 번 상실감이 돌아왔다. 어느새 돌아왔다. 나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세상에서 엄말 너무 사랑한다. 내 목표 성취감도 다시 돌아왔다. 어느날 상실감 때문에 글도 쓰기 싫던 내가 다시 책을 쓰는게 이제 즐거워질 거 같다. 무기력함에 글도 쓰기 싫어 있던 그나마 욕구중 성취감이 이제 다시 돌아왔다. 꼭 열심히 성공해서 엄마 효도시키는 목적이 달성되는 계획이 세워지자 행복해졌다. 엄마 금방 쓴 거야 엄말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졌어. 엄마 세상에서 어느 무엇보다 사랑해. 어렸을 때 부터 내 꿈은 엄마행복인데 내가 엄마를 상처 줄 때마다 죄책감에 휩싸였어. 먼저 다가와줘서 너무 고마워. 자살에서 상실감이 없어지고 엄말 다시 사랑하겠다는 꿈이 생기니 갑자기 난 행복해졌어. 방 정리가 너무 안 되서 자취를 하겠지만, 엄마 사랑해 그리고 우리 엄마 행복해지게 만든는 꿈이 다시 생기게 해줘서 고마워 사랑해. 일 잘 다녀와 잠 못잘 텐데 오늘 내 얘기 많이 들어줘서 고마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가 아니면 남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딱히 상처를 받지않는다 열받게 하면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떡히 그들이 니 알바였다.

무기력한 상태에서 책 열심히 쓰고 있나. 일 열심히 다니고 있구나 장하다 생각하면 안 돼? 그저 압박과 잔소리를 해야돼 우울증인 사람한테 뭐 하라고 말하는 건 죄책감이 있는 사람한테 죽으라고 외치는 부채질 밖에 안 돼. 희망이 모아둔 약이 된 다는 게 얼마나

난 엄마의 모든걸 흡수한 사람이었다. 언니와 남동생은 엄마가 어렸을 때 그렇게나 책을 읽어줬는데 남동생은 웹툰 볼 때도 글을 잘 안읽는다고 하고 언니는 책 보단 게임을 좋아한다. 어릴 때 부터 엄마가 힘들 때 제일 발 벗고 움직인 건 나였다.


가족은 공동체다. 다 같이 으싸으싸하자고 할 땐 언제고 내가 으싸으싸 할 땐 갑자기 내가 아프니, 무심하고 비수를 꽂는다.

답은 두 개다. 대화를 시도했음도 이 책을 줬음에도 내가 죽고싶게 만들 다면 내가 살기 위해 연을 끊던지, 아니면 물어보자. 내가 계속 사랑해도 되냐고? 내 벽을 자꾸 무너지지 않게 할거냐고? 노력하겠다고 나아졌다면 끊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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