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쿠스쿠스, 나눔의 질서

요리의 도

by 나일주

쿠스쿠스, 나눔의 질서


사막의 바람이 잦아든 오후, 모로코의 부엌에서는 가벼운 소리가 난다.

“사사삭, 사사삭—.” 그건 칼이 아니라, 손끝에서 흘러내리는 곡물의 마찰음이다. 여인들은 커다란 대접 안에서 세몰리나(semolina)를 굴린다. 알갱이 하나하나가 햇빛을 머금으며 살아난다.

이 단순한 동작이 바로 쿠스쿠스(Couscous)의 시작이다.




곡물의 탄생, 모래 위의 생명

쿠스쿠스는 모로코를 비롯한 마그레브(북아프리카) 전역의 상징이다. 그 기원은 9세기 이전, 베르베르족의 곡물 문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이 귀한 땅에서 그들은 “밀을 물처럼 쓰는 법”을 배웠다. 밀을 삶는 대신, 증기로 찌어 알갱이로 만든 것 — 그것이 쿠스쿠스의 출발이다.


이 작은 알갱이는 사막의 생명이다. 불과 모래, 바람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기술이자 철학이었다. 곡물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햇빛과 증기로 익히는 조리법은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최소한만 개입하는 지혜였다.


쿠스쿠스는 그래서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자 순환의 은유였다. 물, 불, 곡물 — 세 가지가 완벽히 순환할 때 비로소 삶의 온기가 피어났다.


쿠스쿠스 만들기 — 손끝의 명상

쿠스쿠스는 기계로 만들 수 있지만, 진짜 쿠스쿠스는 손으로만 가능하다.


먼저 세몰리나에 물을 한 방울 떨어뜨린다. 그러면 여인의 손이 작은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곡물이 서로 부딪히며 둥글어지고, 덩어리가 흩어진다. 이 과정을 “구름처럼 가볍게” 만든다고 해서 모로코에서는 쿠스쿠스를 “하늘의 음식”이라 부른다.


그 다음은 쿠스쿠스시에(couscoussier)라 불리는 2단 찜솥의 차례다. 아래층에는 고기와 채소를 넣은 국물을 끓이고, 위층에서는 증기가 곡물을 천천히 익힌다. 이중 구조 덕분에 국물의 향이 곡물로 올라가지만, 직접 섞이지는 않는다.


즉, 쿠스쿠스는 향의 교류를 허락하되, 침범은 허락하지 않는 요리다. 그 거리감 속에서 균형이 만들어진다. 그리하여 완성된 쿠스쿠스는 하나의 알갱이 안에 온 세상의 냄새를 품는다.

ChatGPT Image 2025년 11월 4일 오전 11_59_17.png


시간의 음식 — 기다림의 구조

쿠스쿠스를 먹기 위해선 서두르면 안 된다. 곡물을 찌는 데만 세 번의 증기가 필요하다. 한 번 찌고, 식히고, 다시 찌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고, 차를 끓인다. 이 시간 동안 곡물도 사람도 함께 익는다.


모로코에서는 금요일마다 가족이 모여 쿠스쿠스를 먹는다. 그날의 점심은 길다. 여러 세대가 한 식탁에 앉고, 큰 접시 하나를 가운데 두고 모두가 함께 손을 뻗는다.


누구나 자기 앞의 부분을 먹는다.


이 간단한 규칙이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시킨다.쿠스쿠스의 식탁은 그래서 민주적이다. 가장 부유한 사람도, 가장 가난한 사람도 같은 그릇에서 같은 곡물을 먹는다. 곡물의 크기는 작지만, 그 안의 평등은 크다.


향과 색, 그리고 관계의 철학

쿠스쿠스의 색은 빛깔의 교향곡이다. 사프란의 노란색, 당근의 주황, 병아리콩의 크림빛, 올리브의 녹색이 한 접시에 어우러진다. 이 색들은 단지 시각의 향연이 아니라, 관계의 은유다.


모로코의 철학자들은 종종 말한다.


“쿠스쿠스는 세상이다. 모든 알갱이는 다르지만, 함께 있을 때만 완전하다.”


이 문장은 곧 공존의 선언문이다. 서로 다른 재료가 뒤섞이되, 각자의 결을 잃지 않는 것 — 그게 쿠스쿠스의 정신이자, ‘요리의 도’가 추구하는 균형의 미학이다.


여행자가 만나는 쿠스쿠스

여행자가 처음 쿠스쿠스를 만나는 곳은 대개 시장 골목이다. 양탄자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향신료 냄새, 구리 그릇 위로 오르는 김, 그리고 기다란 나무 숟가락을 들고 있는 여인.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쿠스쿠스? 천천히 드세요.”


큰 접시에 수북이 담긴 쿠스쿠스는 보기에는 산 같지만, 입 안에서는 구름처럼 가볍다. 국물은 향긋하고, 곡물은 따뜻하며, 그 향은 어딘가 모르게 집 같은 느낌을 준다. 여행자는 그 순간 깨닫는다. 이 음식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시간을 먹는 행위라는 것을.식당 밖으로 나와 골목을 걸을 때, 그의 옷에는 여전히 사프란의 향이 남아 있다. 그건 단순한 향기가 아니라, 이 땅의 시간과 사람들의 숨결이 스민 흔적이다.


곡물의 도(道)

쿠스쿠스는 불의 철학이 아니라, 증기의 철학이다. 불처럼 격렬하지 않고, 물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그 사이의 보이지 않는 온기로 세상을 익힌다.


곡물은 증기를 통해 서서히 변한다. 끓는 소리도 없고, 폭발도 없다. 그저 조금씩, 부드럽게, 그리고 확실하게 익는다. 이 느린 변화 속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삶이란 증기의 시간과 같다는 것을.


서두르지 않아도, 멈추지 않아도 결국 자신에게 필요한 온도에 다다른다. 그 온기가 바로 ‘도’의 경지다.




함께 익는 삶

쿠스쿠스는 결국 함께 익는 음식이다. 혼자 먹으면 밍밍하지만, 함께 나누면 풍성하다. 사람과 곡물, 불과 시간, 냄비와 향신료가 모두 같은 리듬으로 숨 쉬는 그 순간, 비로소 음식은 요리가 되고, 요리는 철학이 된다.


“서로 다른 알갱이가 함께 익을 때, 세상은 조화의 맛을 낸다.”


모로코의 부엌에서 피어오르는 증기는 오늘도 그 진리를 조용히 말해준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온기, 그것이 바로 요리의 도, 그리고 쿠스쿠스의 철학이다.

ChatGPT Image 2025년 11월 4일 오전 11_05_27.png


keyword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