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혜, 보림
제가 부모님의 둘째 딸로 살던 우리 집 옆에는 작은 암자가 있었습니다. 조그만 암자와 함께 늙어가시던 스님 한 분과 스님을 모시는 노보살님이 한 분 살고 계셨지요. 한국불교는 인도에서 중국을 통해 들어오고 나서 다양한 민간신앙과 결합되었습니다. 인도에서도 불교가 힌두교와 결합된 것처럼 나라마다 불교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었지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귀족신앙이었던 불교가 대중화 되면서 백성들의 다양한 민간신앙과 어우러져 새로운 형태의 불교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절은 개인의 수행이나 불도를 닦는 것보다 자신의 소원을 기도하고 바라는 민간신앙의 성격이 더 강해져 버렸어요. 그래서 우리 아들 수능 시험 잘 보게 해 달라거나 좋은 배필을 점지해 달라거나 내 소원을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복신앙이 더 강해졌습니다.
저희 친정집 옆 암자에 노보살님도 기복신앙을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셨지요. 본인이 따로 배운 육임과 가끔은 눈빛이 달라진다는 어떤 초자연적인 힘으로 사람들의 미래를 점치고 운을 읽어주는 일을 하셨습니다. 산신당을 차려 불전을 놓고 그들이 바라는 미래 모습을 살펴주었습니다. 작은 시골마을에 끊임없이 차들이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지요. 노보살님이 계실 때 부처님 오신 날은 작은 암자가 터질 만큼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바로 옆집에 사는 저희 어머니도 단골 고객이셨지요. 노보살님의 기도가 얼마나 효엄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보살님 덕을 본 것이 딱 두 가지 있습니다.
흔히들 결혼할 때 궁합이라는 것을 봅니다. 저는 그다지 궁합을 믿지 않았지만 옛날 사람이신 친정어머니께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다 늙은 딸 시집도 못 갈까 봐 걱정하셨는데 이제라도 시집간다 하니 누구라도 데려가면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데려온 남자와 미래가 궁금하셨나 봅니다. 다른 건 다 기억나지 않는데 이것 하나만은 딱 맞았던 것 같습니다.
당신 딸보다 더 착한 사람이다.
이 한 마디에 부모님은 결혼 걱정을 안 하신 것 같습니다. 저도 한 착함하는 효심 깊은 딸이었는데 그런 저보다 더 착하다니 그 어떤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렇게 아무 걱정 없이 저를 남편에게 보내주신 것 같습니다. 살아보니 보살님이 보신 궁합이 딱 맞더라고요. 남편은 정말 저보다 저 마음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십오 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저에게 상처 주는 말 한마디 한 적이 없거든요.
두 번째 제가 본 덕은 바로 우리 세 아이들 이름입니다.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고 보니 제일 처음 고민하게 되는 것이 이름이었습니다. 평생 불러줄 아이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부르기도 좋고 듣기도 좋고 뜻도 좋은 그런 이름을 정해주고 싶었습니다. 노보살님 생각이 났습니다. 태어난 날과 시를 들고 가서 좋은 이름을 정해주십사 했지요. 정성껏 만들어주신 이름 3개 중 하나를 골라 출생신고를 했습니다. 친정에 갈 때마다 잊지 않고 우리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실 때마다 그게 참 좋았습니다. 무언가 신비스러운 힘이 전해지는 느낌이었어요. 항상 그 절에 드나드는 사람들처럼 말이죠. 내 자식에게 좋다 하니 부모도 그저 혹 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리 이성적이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도 자식 앞에서는 무너지는 게 부모인가 봅니다. 이제 그 암자엔 노보살님도 없고 스님도 없습니다. 초라하게 늙어가는 암자가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래도 법당 안에 불상은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오다가다 향을 피워놓기도 하지요.
내소사라는 절에 가면 저 그림책 속에 나오는 단청이 있다고 합니다. 절대 단청을 다 칠할 때까지 문을 열지 말라는 금기를 깨어버린 스님은 이제 없겠지만 말이지요. 은혜를 갚으러 온 가릉빈가의 노력이 인간의 호기심과 욕구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남은 단청은 아름답습니다. 신의 높은 경지를 어찌 한갓 인간이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마는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우리 삶이 더 다채롭지 않을까요. 인연과보. 내가 지은 만큼 과보가 따르는 것이니까요. 삶이 어떻게 운명 지어졌든 그저 열심히 살아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