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소년

야시마 타로, 비룡소

by 반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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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이 시끌벅적합니다. 전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긴 하지만 초등교사 집단에서는 시끄러움을 넘어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끝까지 피어나지 못하고 겨우 2년도 안 되는 교직생활을 마감한 어린 선생님의 죽음에 모두들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한 개인을, 같은 직업을 가진 초등교사라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던 말, 차라리 죽어버릴까 그 마음을 직접 실행에 옮겼을 땐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겪어보았던 일이기에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악성 민원과 극성 학부모는 어느 시대나 있었습니다. 교직생활 22년 차에 들어서는 저도 그런 경험이 없지 않습니다. 여학생들 파벌 싸움에 왜 선생님은 상대 아이 편만 드느냐는 민원은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쉬는 시간에 자기가 놀다가 넘어져서 다쳤으면서 어떤 오빠가 돌을 던져서 맞았다고 거짓말을 해 부모님이 학교로 쳐들어와 저를 비난했습니다. 많이 다쳤을까 안전공제회 지원되니까 걱정 마시고 모든 치료, 검사 다 받아보시라고 말한 게 선생님이 돈 이야기 먼저 하더라고 바뀌었습니다. 학교에서 누구를 감싸는 거냐며 추궁을 하더군요. 찾지도 못한 가해자를 말입니다. 나중에 그 아이가 넘어지는 것을 본 목격자가 나왔고 그 장소에서 핏방울이 떨어져 있는 증거도 나오자 부모의 태도는 달라졌습니다. 수박과 간식을 들고 학교에 찾아왔더랬습니다. 저는 출장 가고 없는 날이었어요. 진짜 피해자였던 저는 끝까지 그 부모에게 사과받지 못했습니다. 새파란 2년 차에게 사과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나 봅니다. 아이 얼굴에 흉 남는다며 매일 모자를 씌워 등교시켰고 햇빛이 비치지 않는 그늘자리에 앉혀 달라고 했습니다. 사과는 없고 요구사항은 끝이 없었습니다. 더 속상한 것은 그 아이의 아버지는 인근 사립고등학교에 새로 부임한 국어교사였고 어머니는 모 단체 학부모연합 소속이라 하셨습니다.


또 어떤 해는 아이들과 김밥 만들기를 했습니다. 얼른 먹고 싶다는 아이들 성화에 사진을 얼른 찍어줬는데 두 아이가 눈을 감았습니다. 사진을 같이 올리면 아이들이 눈감았다고 또 놀릴까 봐 사진을 올리며 눈감은 사진이 있어 빼고 올렸다고 적어두었습니다. 늦은 밤 술 취한 아이의 큰아버지가 왜 자기 조카 사진은 없냐며 온갖 욕을 했습니다. 한 순간 저는 ㅁㅊㄴ이 되었고 ㅅㅂㄴ이 되었습니다. 차라리 사진을 찍지 말 것을 그랬다 사진 공개 안 해줘도 되는데 왜 했을까 별 생각이 다 지나갔습니다. 이게 해 주고도 욕먹는 거구나 싶어서 아이들을 위한 모든 교육적 활동을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해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며칠을 혈압이 150을 넘어가고 밤만 되면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와 이 이야기만 하려고 하면 눈물부터 떨어졌으니까요. 며칠을 앓았지만 역시나 이 학부모에게도 사과받지 못했습니다. 우습게도 이 아이의 어머니 또한 인근 어린이집 원장이었습니다. 술 먹고 담임에게 욕하는 큰아버지랑 같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큰아버지가 그 욕을 퍼붓는데도 옆에서 기분 좋게 듣고 있었나 봅니다.


비단 몇 가지 예만 들었지만 지금 우리 교실 현실은 이렇습니다. 과거 선생들이 때리고 지 기분대로 행동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이미 퇴직하고 없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까지 선생님들께 엉덩이 야구 방망이로 맞고 단체 기합 받으며 자랐습니다. 시험 성적이 떨어져서 공부시간에 딴짓한다고 모두들 그렇게 맞고 자랐지만 지금의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학교에는 더 이상 더 글로리에 나오는 악질 교사가 이제 없습니다.


지금 우리 교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다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신과 진료를 받고 약을 먹고 감정 조절을 못하는 아이들에게 맞아가면서도 참고 견디고 있습니다. 교사이기 때문에 요구받는 사회적 시선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여기는 직업인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좋아서 선택한 일이고 몇 년, 몇 십 년 전부터 장래희망에 초등교사라는 네 글자를 써오며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일, 잘 키우는 일, 가정에서 소외받는 아이들을 감싸고 돌봐주는 일까지 어느 하나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해 오는 사람들입니다. 부디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한 그 교실에서 생을 마감한 어린 교사의 죽음이 이대로 묻히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 선생님도 그 마음 하나로 살아오신 분일 겁니다.


까마귀 소년이 이름 없이 아이들 속에 묻혀 살고 있을 때, 이 아이의 이름을 불러준 사람이 이소배 선생님입니다. 이미 대한민국의 초등학교에는 수많은 이소배 선생님이 있습니다. 존재감 없이 교실 한 구석을 채우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주는 수많은 이소배 선생님들을 위해 이번만은 많은 분들의 관심이 서이초 선생님 죽음에 기울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내 이웃 같아서, 옆집 동생 같아서, 옆반 신규샘 같아서, 내 가족 같아서 꺼져간 생명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텅 빈 그 교실에 앉아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아내었을지, 이겨낼 수 없었던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멀리서 제가 해 줄 수 있는 건 기도뿐이지만 부디 그곳에서 영면하시기를. 착한 교사, 참 교사는 단명한다는 말이 진리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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