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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윤희 Nov 22. 2023

돌봄 교실

2018. 10. 05.

어젯밤 잠이 안 와서 고구마 줄기 껍질을 까는데 안 자고 도와주겠다며 열심히 까고 있는 민서 씨. 옛날에 엄마 옆에서 같이 고구마 까고 김치다듬고 옆에서 도와주던 내 모습이 떠올라 네가 벌써 이만큼 자랐구나 싶어서 가슴 뭉클한 날. 세탁기가 다 돌아가니 엄마는 가서 빨래 널라고 자기가 다 까겠다고 하더니 깨끗이 고구마 줄기 다 까고 잠든 우리 딸.


어제오늘 돌봄샘 연가 쓰셔서 우리 교실이니 그냥 내가 쭉 보는 게 편치 않겠다며 하시길래 쉽게 콜 했더니.

세상에 세상에 8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아이들을 계속 케어하는 것은 피곤을 모르는 나에게도 벼락같은 피곤함 쏟아지더라는. 너무 피곤해 잠을 못 잘 정도로. 오늘 아침 눈뜨는 게 엄청 힘들더라. 오늘은 완전히 지쳐서
잠시 유치원에 물어볼 것이 있어 갔는데 아이들 간식 남은 치킨을 한 입 주시는데 덥석 받아 물고 당분이 당겨 콜라 한 잔 얻어 마시고 나니 눈이 번쩍 뜨이네.

퇴근시간 되니 아이고~~ 피곤해가 절로 나와 운전하는 십오 분이 어찌나 졸리던지. 라디오 크게 틀고 노래노래 부르며 왔다.  집에 와 떡국 육수올리고 찬이 아빠 올 동안 잠시 졸았다가 밥 먹고 치우고 씻고 나와도 다리가 천근만근. 오늘따라 돌봄 간식이 딸기잼 바른 식빵이라 손이 손이 많이 가고 그릇도 씻어야 하고.
놀이활동이 실내체육이라 뭘 할까 하다가 휴지 불고 달리기 해봤다 그래서(샘이 하라고 주신 미션)
풍선 꺼내 풍선 오종놀이(손수건 옮기기, 다리머리로 옮기기, 좌우로 옮기기, 옆으로 건네주기, 다리사이 끼우고 가 터뜨리기) 하고 나니 녹다운.

이 녀석들 앉혀서 비즈 시켜놓고 청소하고 네시에 다 보내고 나니 퇴근시간 코 앞이라.


이틀 풀 노동을 하고 나니 몸으로 일하는 직업을 가지신 분들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낀다. 요즘 스트레스가 쌓이는지 계속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리에 가득 차서 내 몸과 맘을 정화하고 싶었는데. 태풍이 온다 하니 아무것도 못 하고 집에 눌러앉아야 하나 싶다. 그래도 재량휴업이니 해가 나면 나들이 좀 나가봐야지. 


맑고 고운 자연이 그리운 요즘.


가을을 보고 싶다.






내가 다시 엄마가 된다면


나는 밥 하고 반찬 하는 것을 늘 엄마 어깨너머로 배웠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엄마가 하는 일들을 보고 배우다 보니 나도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때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묵묵히 내 일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우리 딸은 옆에 와서 엄마를 지켜보거나 거들어준다. 


내가 이래서 살을 뺄 수가 없어. 엄마가 매일 맛있는 걸 해 주니까! 


엄마기분 좋은 말들도 곁들여 가면서 말이다. (이런 립서비스는 모두 아빠한테 배운 거 같음.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아도 말은 잘하는 아빠를 보고 배운 듯.) 먼 나중에 내 딸이 엄마가 되면 지금의 나처럼 행복한 엄마가 되어 있기를. 주방에 있는 시간이 힘들고 지치는 시간이 아닌 행복과 감사로 가득 찬 시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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