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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윤희 Nov 22. 2023

좋아서 하는 일

2018. 11. 28.

열 시가 넘었는데 자자고 자자고 말을 해도 안 자고 그림 그리겠다고 저 노트를 다 채우겠단다. 늦게까지 놀고 있는 민찬. 아니지 노는 게 아니라 그림 그리는 거지. 해라해라 하는 일은 느릿느릿 게으름 피워가며 엄마 숨이 목까지 차 오르면 터지기 직전에 하는 소띠 영감.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민찬이는 하라고 하면 잘했는데 말이야. 커 갈수록 왜 이리 말을 안 들을꼬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 녀석이 자아를 찾았을 때부터. 알면서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우리 아들 민찬이는 내 아들 민찬이는 이러지 않았는데 하고 말이야.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기라는 걸 알면서도 옛날에 편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박혜란 선생님 책을 예전에 한 번 빌려놓고 다 읽지 못했다. 그때는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다. 책 읽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에 좀 더 쉬자, 자자, 에너지를 충전하자 등등. 요즘 내 시간이 생기면서 조금씩 쪼개어 읽는 책들이 참 소소하니 눈에 들어온다. 성장하는 과정임을 알면서도 왜 그토록 민찬이에게 '착한 아들'이 되기만을 바랬던 것일까.


완벽하고 좋은 엄마가 될 생각은 이제 접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미안하진 않은 엄마가 되고 싶다. 자기 전에 후회하고, 자는 모습 보면 미안한 그런 엄마 말고 조금은 나를 더 접고 짜증이라도 내지 않도록. 아이들이 미취학 시절에는 짜증 낼 일도 없었는데 일하고 나서 너무 많이 내는 거 같아서. 일도 가족도 더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내가 다시 엄마가 된다면 


내 아들은 이래야 한다는 틀을 정해놓지 않기. 되돌아보면 내가 만든 틀 때문에 육아가 힘들고 스트레스가 되었다. 백일이 지나면 통잠을 잔다는데 왜 안 자지? 돌이 되면 걸어야 된다는데 왜 안 걷지? 이제 슬슬 말을 할 때가 되었는데 우리 아이는 왜 말이 없지? 


내가 정한 틀의 제일 첫 번째는 민찬이의 모유수유였다. 민찬이가 유두혼동이 와서 젖병만 물고 젖을 먹지 않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모유가 좋다니까 젖을 물리려는데 끝내 녀석은 내 가슴 한 번을 물지 않았다. 울기만 하는 아기가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갓난쟁이를 안고 나도 엉엉 울었다. 왜 모유만 먹어야 하겠는가? 분유를 먹어도 되고 모유를 짜서 먹여도 되지. 결국엔 내가 만든 틀에 얽매여서 울고 불고 했던 건 나였다. 아이 앞에서는 유연한 사고가 잘 되지 않는다. 정형화된 육아서만이 바이블이 되다 보니 거기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내 아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나는 철부지 엄마였다. 그걸 그때는 몰랐다. 


 건강하게 잘 자라서 병도 잘 안 걸리고 키도 잘 크고 있는 아들. 내가 극한의 고통을 참고 유축기로 짜 낸 모유 덕분이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유를 먹든 분유를 먹든 잘만 크기 때문이다. 아이가 다 자라고 나니 깨닫게 되는 삶의 이치를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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