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하기
12월 8일, 12월 15일 우리는 서울의 섬에 모여 우리의 뜻을 이루었다. 탄핵은 분명 시민이 만들어낸 위대한 결과다.
나는 사실 탄핵에 그리 동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2017년 탄핵 이후 지도자가 자신에게 조금의 피해만 입혀도 탄핵을 외치는 사람들이 생겼다. 탄핵이 쉬운 말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탄핵이 어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12월 3일 10시 30분 계엄이 선포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저녁 8시에 잠자리에 드시기 때문에 계엄 상황을 모른 채 주무셨다. 다음날 계엄이 선포되었다는 카톡을 보고 또 누군가의 가짜뉴스라고 생각하셨다. 모든 기사의 헤드라인이 계엄령으로 도배되자 그제야 믿으셨다고 한다. 그만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계엄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다시 한번 계엄이 실시되었다는 것은 김동춘이 그의 저서 전쟁과 사회(2000), 전쟁 정치(2013)에서 밝힌 것처럼 대한민국이 여전히 군사 국가임을 보여준다. 반대로 그 계엄이 국회를 장악하지 못하고 3시간 천하로 끝난 것은, 군인들은 과거의 군인이 아닌, 자기의 이유를 가진 군인들이었기 때문이고, 늦은 시각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간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보여준다. 그렇다, 우리는 군사 국가와 민주주의국가가 어지럽게 뒤얽힌 국가에서 살고 있다. (여전히 군인은 공무원보다 급수가 높다.)
군사 국가로 민주주의가 30년은 퇴보할 상황에서 시민의 의무를 저버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의도에 나오지 않더라도 이불을 덮고 만세를 부르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의식이 퇴보하지 않게 나름의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무언가를 해야했다. 계엄과 함께, 내란과 함께 윤석열을 탄핵해야 했다.
12월 8일 3시 나는 여의도 거리로 나갔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 혼잡 했으나, 2017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중간중간 안내를 통해 폭행, 성추행 등을 하지 말아달라는 공지가 되었다. 이런 당연한 것들이 공지가 되어야할 만큼 우리의 시민성은 비대칭적 시민성이었다. 여전히 여성들에게, 소수자에게 집회는 ‘안전하지 않은’ 장소였다. 한 퀴어 페미니스트분이 오픈마이크를 잡았다. 정말 위트 있었고, 핵심을 전달하는 좋은 자유 발언이었다. 그분의 말씀이 계속 생각난다. 자신이 오픈마이크를 위해 대기 장소에 있을 때 집회 진행요원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야 남자가 너무 많다. 퀴어 한 명 데리고 와.” 이미 계급적 구도가 확연하게 보이는 발언이다. 이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앞으로 100년간 대한민국에 남성 대통령은 없다!’ 라고 하진 않겠지만, 집회의 장소가 여전히 여성, 장애인, 퀴어, 소수자에겐 폭력적인 공간이다. 김건희를 술집여자라고 비방할 때 김건희는 듣지 않지만, 옆에 있는 여성동료들은 듣고 상처 입는다.” 집회는 소수자를 타자화했다. 실제로 이분이 발언할 때 주변에서 “이런 곳에서 까지 페미니즘이야?” 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앞에서 집회를 이끄시던 분이 ‘기자’들을 단상 위로 올렸다. 사진을 찍으라는 이유였다. 시민들은 ‘증거품’이 되었다. 갑자기 파도타기를 하자며 시민들을 ‘지휘’했다. 이것이 탄핵을 위해 필요한 행위였는가?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그 뒤에 발언이 더 심각했다. 파도타기가 잘 되지 않자 이런 말을 던진다. “제가 이런 것까지..” 발언은 여기서 멈추긴 했으나, 그 뉘앙스로 보았을 때 뒷말은 “가르쳐드려야 하나요?” 였다. 시민들을 증거품으로 만들기 위해 기자를 단상에 올리고 시민들을 파도타기를 시키고 그것이 잘 되지 않자 시민을 탓하는 모습은, 시민을 자기의 이유를 가진 자유인으로써 동등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닌,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타자화 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대학생들은 본 집회가 아닌, 대학생 집회를 만들어서 따로 진행해야 했다. 15일에는 대학생 집회 후 본집회까지의 거리가 혼잡했기에 대학생들은 뒤에 남을 수 밖에 없었다. 586세대가 그러했듯 이번 집회는 분명 청년들이 나서야했다. 청년들이 ‘참여’할 수 밖에 없게끔 586 혹은 그 바로 아래의 세대는 운동권에서 기득권이 되었다. 이들은 청년들이 자신의 운동에 ‘봉사’할 수 있게 했지만 전면으로 나설 수는 없게 만들었다. 이것은 기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위에 나오는 청년들에게 ‘우리가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중장년들, 미안하다면 운동의 바통을 20대에게 물려주면 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폴 윌리스의 책 계급 재생산에서, 타자화하는 저항은 실패로 귀결된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나의 시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지만, 거리에서도 계급이 나뉘어졌다. 참 아이러니하다. 운동권 세대는 여전히 그대로다. 조금 과격하게 이야기 하자면 늙었다. 이들은 운동의 새로운 담론을 담아내지 못한다. 이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비해 시민의식이 발달하면서, 과거 청년들에 비해 현재의 청년들은 더 많은 분야에서 예민하게 반응한다. 공정성, 젠더와 섹스는 과거엔 예민하지 않은 분야였지만, 지금은 모든 담론에서 공정성과 젠더, 섹스가 담겨야 한다. 이것에 대해 586세대는 전혀 민감하지 않다.
윗 세대를 탓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20대가 주도적으로 나가야한다. 이것은 20대에게 자기의 이유를 만들고 관철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자유’를 가지고 집회에 참여해야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공부해야 하고 알아야한다. 이것은 진지해지고 딱딱해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000연합이라고 만들어진 재치 있는 깃발을 좋아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20대가 가진 에너지, 흥은 가져가되 그 속의 알맹이가 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시적인 분노는 일상의 행복에서 지워진다. 지속적으로 분노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기의 이유’ 즉 ‘자유’를 지니고 거리로 나와야 한다. 왜 분노하는가? 계엄은 어떤 의미인가? 각자의 마음속에 나름의 정의가 필요하다. 이제 운동이 다시 젊어질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