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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Jun 13. 2022

더우면 벗으면 되지

추우면 입으면 되지

우리 학교에 나와 비슷한 연배의 A선생님과 B선생님이 있다. 두 분 다 남편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처음 중국에 오신 터라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으시다. 무엇보다 중국어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니 집 계약부터, 전기세와 수도세 납부, 타오바오 물건 구매, 병원 진료 등 남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지원하는 교사 중국어 연수에 참여하신다. 일주일에 2회, 퇴근 후 1시간씩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초급반 수업을 들으신다. A선생님은 입국 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늘 빠지지 않고 초급수업을 들으셨고, 예복습, 과제까지 성실히 하신 결과 올해부터는 중급반으로 승급하셨다. 이제 유창하지는 않아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하셔서 타오바오 물건 구매, 반품, 환불, 메이퇀 배달 주문 정도는 혼자 능숙하게 해내신다.


반면, B선생님은, 오늘은 피곤해서, 아이가 아파서, 집에 온수기가 고장 나서 등등의 이유로 중국어 수업을 자주 빠지셨다. 매 해 중국어 교사 연수가 새로 개설될 때면 늘 초급반 등록은 하시지만 실제 수업에는 잘 참석하지 않으다. 그래서인지 중국어 실력은 늘 제자리, 시장에서 과일과 야채를 사고 식당에서 사진메뉴를 손가락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정도다. 판매자 과오로 택배비를 물지 않고 타오바오 물건을 반품해야 하거나 아파트 단체방에 중요 공지가 뜨거나 호텔이나 기차를 예매해야 할 때면 늘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신다. 미안하니까 밥을 사거나 새로 만든 반찬을 가져다주기도 하신다. 그 모습을 보며 처음엔 어려움이 많으시겠거니 했는데, 그런 일이 일종의 패턴으로 반복되는 것을 보니 점점 불편해졌다.


B선생님으로부터 주말에 중학생 아이아이폰을 사러 가는데 속을까 봐 걱정되니 같이  달라부탁을 받았다. 그렇게까지 해서 휴대폰을 사야 하는 건가, 부드러운 부탁 속에 타인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의 사소한 목적을 위해 쉽게 이용하려 자기중심적인 칼날이 느껴다. 사실, B선생님이 부탁하는 일들 어렵거나 부담스러운 건 아니었다. 한족 집주인에게 전기 배선에 문제가 있으니 오늘 저녁에 와서 고쳐달라고 전화하는 일, 퇴근길에 통신사 매장에 잠깐 들러 선생님 가족의 핸드폰 요금제를 바꿔주는 일, 주말에 안경을 새로 맞추는데 같이 따라가 주는 일 등 누구라도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쉬운 일, 그래서 남에게 부탁하기보다 서툴러도 스스로 해내기가 더 간단하고 수월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중국 현지에서 생활하신 지 벌써 3년, 조금씩이라도 중국어를 배웠다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인데  자꾸 남들에게 부탁만 하실까 의문이 들었다. 평소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해내는 조용하고 예의 바른 분이, 이렇게 작은 일도 기분 좋게 못 도와드리는 내가 문제인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반등 독서의 <논어> 강의를 다가 B선생님이 떠올랐다. 논어의 핵심 개념인  (仁)을 부조(不找)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었다. 부조(不找), 외부에서 찾지 않는 . 남의 손을 빌려 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것. 마음이 지금 현재에 머물며 그저 내가 해야 할 일 충뿐, 그 외의 것은 구하지 않는 것. 


세상의 명성도,

人不知而不愠,不亦君子乎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나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랴

부유함도,

贫而乐富而好礼
가난하지만 즐겁고 부유하지만 예를 좋아한다.

남이 나를 알아주면 나가서 관직을 하거나 스타가 되면 된다. 알아주지 않으면 공자처럼 고향으로 돌아가 후학을 양성하거나 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계속해나가면 된다.



울분을 터트리며 괴로워하거나 이리저리 청탁하러 돌다니며 내 힘으로 안 되는 일에 굳이 힘 뺄 필요가 없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거친 밥을 먹고 맹물을 마시며 팔베개를 베고 즐겁게' 생활하면 된다. 부유하면 부유한 대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편하고 풍요롭게 살면 된다. 가난하다고 남의 것을 훔치거열등감에 빠져 전전긍긍해할 필요 없다. 부유하다고 우월감에 취해 함부로 남을 짓밟거나 재산을 과시할 필요도 없다. 나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지 않는다. 나의 행복을 타인이나 외부 환경에 기대지 않는다.  분수에 맞게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 하고 그 너머의 것은 욕심을 줄이거나 안 하면 된다. 애써 자신을 낮추고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남의 손을 빌려서까지 해결해야 할 중대하고 긴급한 일이 그리 을까.

 


중국어를 못하면 조금씩이라도 스스로 배우면 된다. 파파고도 있고 손짓 발짓도 다 통한다. 그렇게 실수하고 바가지도 좀 쓰다 보면 결국하게 돼있다. 지금 당장 중국어를 못하는데 가게에서 바가지 쓰기는 싫다면 그 물건을 안 사면된다. 좀 기다렸다가 말이 잘 통하는 한국에서 안심하고 사면 된다. 내가 못생기고 뚱뚱하면 못생기고 뚱뚱한 남친 여친을 만나면 된다. 돈이 없으면 소고기를 안 사 먹 해외여행을 안 는 등 돈을 안 쓰면 된다. 사고 싶은 게 많으면 돈을 많이 벌면 된다. 휴일도 퇴근도 없이 일하고 밤에 대리운전, 배달 알바도 해서 뼈 빠지게 돈을 벌면 된다.


그렇게 스스로 해결하고 충족하는 생활을 하다 보면 외부의 어떤 조건과도 상관없이  평안하고() 즐거운(乐) 인(仁)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주 토요일, 오죽했으면  중국어가 어설픈 내게까지 부탁하셨을까 싶어 결국, 선생님 백화점 아이폰 매장에 들러 아이폰 사는 것을 도와드렸다. 중국어 앱으로 주문을 받는 루이싱 커피 주문도 어려우셔서 그냥 커피도 내가 샀다. 중국어를 더 잘하고 싶으면 중국어 못하는 사람많이 도와주면 된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 이것저것 재지 말고 그냥 좋은 일을 하면 된다.

 

救仁而得仁又何怨
인을 구하여 인을 얻었으니 또 무슨 원망이 있겠는가


 

*참고자료

-이미지 출처, 요시타케 신스케, 《더우면 벗으면 되지》, 주니어 김영사, 2021

-樊登读书, <梁漱溟先生讲孔孟>

-배병삼, 논어, 사람의 길을 다》, 사계절,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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