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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Jul 03. 2022

연근미인

남이 안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름다운 여인

 타는 남녀가 있다. 정확히는 남자 B가 여자 A를 좋아한다. 여자 A는 남자 B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녀에게 B는, 그녀막내 이모뻘쯤 되는  혹은, 사무실 책상 같은 존재다. 그저 아무 관심이 없다. 곧 사위 볼 나이의 아줌마인 내가 보기에도 B에 여자를 훅 가게 하는 결정적인 매력이 없다. 찢어진 눈, 작고 낮은 코, 여드름에 얽어 울긋불긋한 두 뺨, 넙적한 보통 한국인의 얼굴, 174cm 키에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근육근육하지도 않은 체형, 늘어 하얀 티셔츠 낡은 청바지 차림. 그는 평소 재치 있는 농담이나 서글서글한 친절을 베풀지 못하는 시종일관 진지 내향 남자다. 하지만 나는 그가 책임감 강하고 성실하며 돈과 시간 관리에 아주 꼼꼼하고 철저 사람이라는 것을 다. 남편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겠지만 구애남으로서는 오히려 약점이다. 쪼잔해 보이기도 하고 또 너무 현실적이라 열정과 콩깍지가 끼어들 틈이 없다. 


반면, A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사랑과 은혜를 듬뿍 받고 자란 차분하고 야무진, 구라도 첫눈에 반할만한 아름다운 여인이다. 거기다 미술을 전공한 덕분인지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여성스러운 옷차림이 아주 근사하다. 가지 색 통바지에는 작고 앙증맞은 초록색 가방을, 긴 검정 스커트에는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올림머리와 달랑거리는 진주 귀걸이를 매치할 줄 안다.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그녀를 장래 며느릿감으로 점찍어두고 자신의 아들과 맺어달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을 것인지!


평소 별로 대화할 일 없던 B가 몇 주 전부터 A와 나에게 식사자리를 제안했다. 명분상으로는 '혼자 사는 사람들끼리 혼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을 같이 먹으러 가자'였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두 결혼 적령기 미혼 남녀 사이의 깍두기라는 것을. 소심한 B의 그동안의 노력과 고심을 가상히 여겨, 관계 손절녀인 내가 기꺼이 주기로 다. 


가게 앞에 나와서 이를 쑤시고 계시는 저 분이 절대비법 소유자, 사장님

우리가 간 곳은 혼자서는 먹을 수 없는, 새우 훠궈 집. 새우튀김과 콩나물을 매콤하고 구수한 훠궈 국물에 적셔먹는 연길 현지인 집이다. 그 외 팽이버섯과 모둠 야채, 냉동 두부, 두부피를 추가로 시킨다. 그때, 늘 신중하게 말을 아끼던  A가,


 "연근도요. 전 연근이 너무 좋아요."


한다. 내 귀를 의심한다. '이 세상에 연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 나무토막 같은 연근을? 오 마이 갓!' 어릴 때 코피가 자주 나서 억지로 먹어야 했던 그 나무토막 맛이 떠오른다. 20년넘게 주부로 살아왔지만 연근을 식재료로 사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내 인생에서 연근을 화제로 대화할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연근을 좋아한다고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 만나봐요."

A가 귀엽게 웃으며, "흐흐, 제가 젤 처음 만들어본 밥반찬도 연근조림이에요. 혼자 자취하다 보니 너무 먹고 싶더라고요."

그녀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지며 두 볼에 보조개까지  들어간다. 그 모습을, 마주 앉은 B가 조심스럽게, 약간은 그윽하고 애틋하게 바라본다. B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살짝 달싹거리다 그만둔다. 그리고는 마침 끓기 시작한 훠궈 속에 제일 먼저 연근을, 아낌 없이 모두 집어넣는다.



보글보글... 한동안 국물 끓는 소리만, 왠지 멋쩍어 내가 먼저 입을 연다.

"남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니, 정말 훌륭한 사람이요. 남이랑 다툴 필요도 없고 남도 기분 좋게 인심 쓸 수 있고. 연근 많이 드세요. 몽땅 다 양보할게요."

"아 행복해, 고맙습니다."

"근데, 연근이 왜 맛있어요? 고구마처럼 달콤하지도 않고 감자처럼 부드럽지도 않고 당근처럼 예쁜 것도 아닌데..." 

A가 연근 하나를 건져 정말로 맛있게 베어 먹는다.

"이렇게 아삭아삭한 맛에 먹는 거죠."

"어, 연근이 아직 덜 익은 줄 알았는데 지금 건져 먹어도 되나 봐요?"

"네 약간 덜 익었다 싶은, 이 딱이에요!"

A는 새보다 연근을 부지런히 건져 먹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좋아하는 연근이라니! 내 맘속 연근의 지위 급상승한다.


말없이 듣고만 있던 B가 A에게만 "새우 까 줄까요? 새우를  2개만 먹고 더 이상 안 먹는 것 같아서." 한다. 나도 까달라고 할까봐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A가 예절 바르게 거절한다.


문득, 세상 사람들이 안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A와는 달리,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는 B는 앞으로 가슴 많이 아프겠구나 싶다.


우리는 새우와 연샅샅이 다 건져 먹고 수타면 2인분을 시켜 호로록 삼킨 후, 새우 훠궈 국물에 밥 1인분까지 볶아 먹 가게를 나왔다. 7월에도 전혀 끈적이지 않는 연길의 여름밤이 참,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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