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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Oct 25. 2022

돌아온 매화

중간계가 뒤집힌다든가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가 탈주한다든가 하는 사건을 통해 겨울에도 정원은 가끔 생존 신고를 했다. 하지만 온갖 방문객으로 복닥거리던 봄과 여름과 가을을 떠올리면 겨울은 조금 허전하다.


눈이 많이 내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한 번씩 옥상을 구경하러 올라갔다. 두텁게 눈이 내려앉으면 마른 가지와 썰렁한 바닥도 조금은 포근해 보인다. 그 풍경이 좋아서 일부러 정원 한가운데로는 발자국을 내지 않았다. 꼭 필요할 때만 가장자리로 빙 돌아갔다. 낙엽이 수북이 쌓였을 때처럼 일부러 쓸어주지도 않았다. 겨울에도 옥상에 햇볕이 넓게 내려앉는 건 똑같아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녹아 없어지려니 한다.


이러니 겨울은 귀차니스트에게는 최고의 계절이다. 새벽같이 올라가 진딧물을 잡을 일도 없고, 물을 떠줘야 할 벌도 없고, 바닥에 날린 모래나 새 깃털도 없다. 나무에 물도 자주 주면 안 되고, 아주 가끔씩만 따뜻한 날을 골라서 줘야한다. 그런데 이 귀차니스트는 심심하단다. 일이 있을 때는 그렇게 귀찮아하더니. 청개구리 심보지.


언제 봄이 오나 기다리기 지루해지는 날이면 가만히 겨울나무를 들여다봤다. 이래 보여도 살아있다는 것을 안다. 이 추운 겨울에도 나뭇가지는 죽은 회색빛이 아니고, 솜털이 보송하고 통통한 잎눈까지 많이 달고 있지 않나. 그런데도 초보 가드너는 여유가 없기 마련이어서 괜히 이 정원이 다 죽은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살아는 있는 건가?’와 ‘에이, 한두 해도 아니고 왜 이래? 살아 있다니까!’ 사이를 갈팡질팡하다가 지칠 무렵이면 슬슬 옥상으로 향하는 발길이 뜸해지는데, 그 무렵이 딱 정원이 사람을 놀라게 하는 때이다. 심드렁하게 옥상 문을 열었는데 작년 봄에 심어서 잎밖에 못 봤던 매화나무가 짠하고 꽃망울을 보여줬다.


매화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봄 버전 같다. 매화나무의 꽃봉오리는 희거나 옅은 분홍색이라는 것만 빼면 크리스마스트리의 꼬마전구처럼 생겼다. 콘센트에 꽂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빛이 난다. 꽃봉오리를 받친 연두색의 꽃받침조차도 “기다렸지? 나 봄이야!” 하는 것처럼 생명력을 뿜어댄다.


나중에 매실이 달리기야 하겠지만, 내가 매화나무를 들인 건 열매를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꽃을 보고 싶어서였다. 누구는 매화가 봄의 전령사라던데, 봄에는 전령사가 하도 많아서 매화 하나를 콕 집기는 그렇다. 산수유는 정말로 봄이 시작되는 느낌이고, 개나리는 봄이 시작된다기보다는 학기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매화는 “겨울 끝!”과 “봄 시작!” 사이에 다리를 하나씩 걸친 느낌이다.


내가 매화를 처음 본 것은 동네 공원에서였다. 옥상 정원이 쉬는 동안은 동네 공원으로 놀러 가곤 했는데, 이곳에서는 옥상에서 보던 것보다 다양한 새들을 볼 수 있었다. 박새, 쇠박새, 딱새, 오목눈이, 동고비, 쇠딱따구리, 쑥새... 사람들도 북적여서 공원은 겨울이어도 우리 옥상 정원만큼 고요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라 냄새부터가 달랐다. 그런데 어느 날 겨울바람 냄새에 다른 냄새가 실려 오는 것이었다. 취하는 향의 주인은 홍매화였다.


그때부터였다. 매화가 곧 봄이 된 건. 패딩 지퍼를 내리면 ‘아, 이제 봄이 오려나 보네.’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지만, 매화 향이 나면 “아! 봄이네! 온다! 봄! 봄! 온다!” 하고 들떠서 뛰쳐나가게 된다. 매화에 들뜨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사진을 찍느니 냄새를 한번 더 맡고 싶어서 코 평수를 한껏 확장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어휴, 나는 저거 사진 왜 찍는지 모르겠더라. 매해 피는 꽃 무어 그렇게 이쁘다고.” 친구분과 길을 가시던 할머니 한 분이 큰 소리로 얘기했다. 그리고 일부러 다른 사람들 들으라는 듯이 한 번 더 크게 말했다. “그렇잖아. 맨날 보는 꽃 뭐 그렇게 신기하다고 찍어.” 할머니랑 잠깐 눈이 마주친 것 같았는데, 친구분이 빨리 가자며 끌고 가버리셨다.


할머니는 그저 평소 다니던 길을 막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때문에 불편하셨을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꽃이 매해 피기 때문에 신기하지도 예쁘지도 않다는 말은 좀 아팠다.


아름다움은 질리지 않는다. 매일 봐도 매일 예쁘고, 매일 알아가도 매일 신기하다. 어설프게나마 옥상 정원을 꾸려보니 그랬다. 만약 아름다움이 질릴 수 있는 것이라면 끈기 없는 귀차니스트인 나는 진작 정원을 때려치웠을 것이다.


나는 정원을 때려치우는 대신 씨앗이 떡잎을 보여주기를 기다렸고, 나무가 꽃을 보여주기를 기다렸고, 거미줄에 새벽빛이 내려앉기를 기다렸고, 무당벌레알이 깨어나기를 기다렸고, 벌이 돌아와 집을 짓기를 기다렸고, 새들이 물을 마시러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모든 기다림은 가치 있었다.


매화가 돌아온다는 건 내가 사랑하고 기다렸던 모든 이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신호탄이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이 아름다움이 지루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내가 사랑했던 아름다움을 같이 봐주었으면 좋겠다. 감탄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이다. 게다가 이 아름다움은 다시 돌아오기까지 한다. 삶에서 헤어진 소중한 것들은 대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말이다. 정말 드문 행운이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 옥상의 매화는 꽃봉오리에서 만개한 꽃이 되었다. 꽃이 피니까 동네 꿀벌이란 꿀벌은 다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다. 벌 한 마리당 꽃가지 하나씩 부여잡고 붕붕 댄다. 공원에서 사람들이 홍매화 향에 홀려 발걸음을 멈춘 것처럼 벌들에게도 매화는 유혹적이었던 모양이다. 신호탄. 이제 신호탄이 터졌으니 다음에는 누가 올까? 나는 기다려진다.


매화를 찾아온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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