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죽음의 계절이긴 하지만, 죽음만의 계절인 것은 아니다. 겨울 안에는 가장 강인한 생명력이 존재한다. 옥상 정원의 나무들처럼. 낙엽을 쓸고 가지치기도 끝나면 겨울나기 준비 끝이라고 한 것은 말 그대로다. 털목도리나 따뜻한 온실 따위는 없다. 현실적인 이유는 저 많은 나무들에게 털목도리를 떠줄 실이 없고, 애들 키도 너무 커서 집안에 들여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령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다고 해도 이 나무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이 나무들은 겨울을 춥게 나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깨어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애지중지하는 마음을 백 퍼센트 발휘해 따뜻하게 품고 지낸다면, 정작 나무는 언제가 봄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겨울 추위를 피하게 해주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잠을 피하게 해주는 것과 비슷하다. ‘밤이구나.’ 하고 푹 자고 일어나야 팔팔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데, 언제가 낮이고 밤인지 모르는 생활을 계속하게 하다 보면 신체 리듬이 엉망이 되고 만다.
우리 집에 있는 나무 중에는 사과, 블루베리, 체리, 모과, 앵두, 라일락, 사철나무가 밖에서 겨울을 난다. 모든 나무가 다 춥게 겨울을 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금귤, 레몬, 오렌지, 아보카도, 동백, 치자, 고무나무처럼 따뜻한 기후에서 쭉 사는 식물들은 제외다. 크리스마스 식물인 포인세티아도 의외로 따뜻한 데서 산다. 어차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 위해 실내로 가져올 테니 얘를 옥상에 빠트리고 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일 년 내내 따뜻한 곳에 사는 식물들을 강하게 키운다고 그냥 밖에 내놨다가는 몽땅 얼어 죽을 것이다. 이 친구들은 중간계로 들여다 놓는다. 우리가 중간계라고 부르는 곳은 옥상으로 나가기 직전의 작은 공간인데, 집 안처럼 아주 따뜻하지는 않아도 문이 한 겹 막아주고 있어 바깥보다는 한결 낫다. 다행히 우리 집 온대 식물들은 대개 내가 씨앗부터 심어 기른 애들이어서 아직도 몸집이 작다. 치자나무나 고무나무도 바깥의 나무들처럼 키가 크거나 무겁지 않아서 좁은 중간계에 전부 수용 가능했다.
초보 가드너에게 겨울은 정말 어려운 계절이다. 차라리 여름에는 더위에 지쳐 죽지 말라고 옥상에 물을 뿌려 온도를 낮춰줄 수라도 있었다. 장마철이 너무 길어지면 가끔 버섯이 자라는 것 말고는 야외라서 통풍이 잘되니 물을 조금 자주 주더라도 과습이 올 리도 없었다. 해 맞고 키 크는 건 다 저들이 알아서 하는 일이었다. 해충은 다른 정원 방문객들이 알아서 잡아줬다.
겨울은 물주기부터가 애매하다. 밖에 있는 나무들도 쉬는 거지 죽은 건 아니라 아주 말라버린 땅에서 살 수는 없다. 중간계의 나무들은 날이 더울 때보다 조금 느려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평상시처럼 신체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을 테니 더 물이 필요했다. 하지만 겨울의 딜레마는 이것이다. 화분에 물이 촉촉한 상태에서 추운 공기에 노출되면 땅이 얼어버린다. 위의 가지가 추운 것보다 땅에 가까운 둥치나 뿌리에 한기가 드는 것이 나무의 생명에 훨씬 치명적이다. 여름처럼 땅이 빨리 마르지도 않기 때문에 물주는 횟수를 줄여야 한다.
식물을 못 키우는 사람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면 하나는 물을 너무 안 줘서 말려 죽이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물을 너무 자주 줘서 뿌리를 썩혀 죽이는 사람이다. 나는 귀차니스트인 것치고는 특이하게 후자다. 그래서 이렇게 되뇐다. 내가 주고 싶은 걸 세 번 네 번 참아야 겨울에 적당하게 물을 줄 수 있어.
그래서 겨울에는 되도록 식물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활동에 집중하고 대부분의 시간에는 식물을 잊고 지낸다. 그래야 물을 너무 자주 줘서 썩히지 않을 수 있고, 동사시키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참을 인 세 번 전략을 너무 잘 지킨 모양이다. 겨울을 나라고 중간계에 들여놓은 식물들이 난리가 났다. 물 부족으로 잎이 말리거나 아주 바싹 말라비틀어지질 않나, 추위에 잎이 노랗게 질리다 못해 아예 검게 변해버리질 않나. 올해 추위가 매섭기는 매서웠나 보다.
화들짝 놀라 전부 아래층 화장실로 들고 와 약간 미지근한 물을 흠뻑 뿌렸다. 줄기와 뿌리까지 다 죽은 건 아니지만 잎은 확실히 죽은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봄이 오면 얘들이 새잎을 돋아내 주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얘네 살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짠하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흙이나 낙엽과 비슷한 색이어서 처음에는 몰랐다. 물에 휩쓸려 버둥대는 것을 보고서야 “너는 살아있구나.” 했다.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이름처럼 허리가 잘록한 이 곤충은 옥상에서 종종 봤다. 늦가을에서 초겨울 무렵 떨어진 낙엽을 쓸고 있으면 잎 뒤에서 깜짝 등장하곤 하는 곤충들 중 하나다. 버둥거리는 애를 나뭇잎으로 살짝 떠서 동백나무 화분에다가 올려놨다.
들여온 첫 해 꽃을 조금 보여주고 내내 비실비실하더니 올해는 냉동인간, 아니 냉동나무가 된 동백이는 거실에 들여놨다. 솔직히 아까 올려둔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는 잊고 있었다. 회복 불능으로 상한 동백 잎들을 떼어주는 데만 몰두한 탓이다. 이 잎들은 멀쩡한 상태로 돌아오지 못하는 잎이다. 나무가 건강하지 못할 때 이런 나뭇잎까지 먹여 살리기는 힘에 부칠 터였다.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는 내가 잎을 손질하는 게 성가셨던 모양이다. 슬금슬금 위층 잎으로 옮겨 다니더니 갑자기 붕-하고 날아가 버렸다. 아무리 찾아도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더라. 동생은 해충 아니냐고 했고, 엄마는 해충이 아니니 놔두어도 된다고 했다.
검색해 보니 농촌진흥청에서는 해충으로 분류했다. 콩과식물과 벼과식물의 즙을 빨아 먹는단다. 엥? 우리 집은 대부분 과일나무, 꽃나무인데 뭘 먹으러 왔지? 아, 야생초밭에 콩과식물과 벼과식물이 있는 것 같기는 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걸 먹으러 왔었다고? 더 찾다 보니 감과 사과도 먹는 모양이다. 안 돼, 내 사과…
그렇게 한참을 찾아도 안 보이던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는 일주일 뒤에 부엌 창문에서 발견됐다. 그런데 정작 찾으니까 잡을 마음이 안 들었다.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얘가 해충인 게 밝혀지면서 충격받긴 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무턱대고 얘를 건져서 동백이에 턱 올려놨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중간계 식물이 다들 죽어가는 마당에 곤충 하나 살아있는 게 되게 반가웠던 모양이다. “너 하나 정도라면 콩 몇 쪽 사과 몇 알 먹는다고 뭐라고 안 할 테니까 원래 있던 자리로 가.”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 집에는 공용어 도입이 정말 시급하다.
왠지 쟤가 살면 중간계 식물들도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질긴 생명력의 마스코트랄까. 중간계 식물들도 물을 흠뻑 주고 따뜻한데 두고 보니 몇몇은 다행히 멀쩡해 보였다. 나머지도 뿌리와 줄기까지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