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들이 모래목욕한다고 신나게 헤집고 다니던 화분의 체리나무에 일이 났다. 얘가 갑자기 구토를 한다. 찐득한 갈색 액체가 터져나왔다. 수지병에 걸린 것 같았다. 유리나방 애벌레 피해를 입으면 나타나는 증상과 비슷해서 그쪽도 의심했었다. 하지만 물엿처럼 되직한 호박색 수지만 흘러내리지 톱밥 같은 애벌레 배설물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수지병이 맞다. 제일 굵은 몸통 줄기 군데군데 터진 자국이 보였다. 흐른 수지가 굳으면서 배출구를 막은 탓인지 나무껍질 아래 고름이 차듯 땡땡하게 부풀었다.
수지병에 걸린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물이 적어도, 배수가 잘 안되어도, 땅의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해도, 혹은 거꾸로 질소 비료를 너무 많이 줘서 영양 과잉이 되어도, 가지치기 중 상처를 입어도, 그 자리에 동해를 입어도, 햇빛에 화상을 입어도 수지병에 걸릴 수 있단다. 이건 그냥 나무에게 생길 수 있는 나쁜 일 총집합 리스트 아닌가?
아픈 체리나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가을이 찾아왔다. 가을은 사과나무의 머리칼을 건드렸다. 밤만주 같은 참새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던 사과나무가 제일 먼저 겨울을 향해 달려간다. 두 그루 중 하나는 하루아침에 잎의 절반 이상이 노랗게 세어버렸다. 나머지 한 그루도 조금 덜할 뿐 상태는 나빴다. 나는 깜짝 놀라 나무들에게 “이러면 넌 마리, 넌 앙투아네트로 이름 바꿔버린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사람 머리가 하루 만에 하얗게 셀 수도 있다더니, 나무도 하루 만에 이렇게 될 수가 있구나.
체리나무 보고 놀란 가슴 사과나무 보고도 놀란다고 얘네들도 무슨 병에 걸린 줄 알았다. 다행히 구급실에 실려 갈 일은 아니었다. 얘들이 사과 키우느라 힘들어서 몸이 쇠약해진 거란다. 몸이 약해지면 낙엽 질 때도 안 됐는데 이른 시기에 잎이 노랗게 변하기도 한다고. 꽃피고 열매 맺는 게 내 눈에는 마냥 신기하고 예쁘게만 보였는데, 나무 입장에서는 죽을힘을 다해서 만들어내는 것이었구나. 앞으로는 가볍게 감상이나 내뱉을 게 아니라 아주 깊이깊이 감탄해야겠다.
마리와 앙투아네트가 열매 맺느라 고생하긴 했다. 이번에는 유독 꽃도 많이 피었다. 원래 크고 맛있는 열매를 키우려면 가지 하나에 열매 하나씩만 남겨두고 키워야 하는데, 나는 과일이 맺히는 대로 다 놔뒀다. 저렇게 키웠으니 열매는 잘겠구나 하고 큰 기대도 안 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전해보다 더 크고 단 사과가 주렁주렁 달렸다. 열혈 도시 농부인 맞은편 집 아저씨가 사과 농사 잘됐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그렇게 애를 쓰느라 힘이 빠져 노랗게 바랜 잎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 만에 급격히 노랑이 되더니 며칠 뒤에는 잎이 지기 시작했다. 하나가 그렇게 잎을 떨구기 시작하니 나머지 하나도 후두둑 잎을 떨어트렸다. 온 바닥에 낙엽이 수북했다.
나는 비질을 좋아한다. 무념무상으로 몸을 움직이고 나면 개운한 느낌이 든다. 깨끗해진 바닥을 보고 있으면 뿌듯하기도 하다. 그런데 아무리 비질을 좋아해도 그렇지. 사과나무 잎은 너무 일찍 떨어지기 시작했고, 다른 나무들 잎 지는 때는 왜 이렇게 제각각인지 몇 주 내리 비질만 했다.
노상 입던 패딩 지퍼를 내리는 순간이 ‘아, 이제 봄이구나.’를 느끼는 순간이라면, 낙엽을 쓸어 모아 쓰레기봉투에 눌러 담고 꽉 묶는 순간이 ‘아, 이제 겨울이구나.’를 느끼는 순간이다. 그런데 지난겨울은 이런 식으로 왔다. ‘아아아아아아아 이이이이이 제에에에에 겨어어어 우우우우울’ 차마 ‘이구나.’를 끝맺지 못한 건 블루베리가 평소보다 단풍도 늦게 들고 낙엽도 잘 지지 않아 겨울이 되고 나서도 며칠은 비질을 해야 해서였다.
낙엽 쓸기 말고 겨울을 나기 전에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가지치기. 겨울은 나무가 쉬는 기간이라 그동안 모아둔 영양분으로 먹고살아야 한다. 긴축재정 기간에 먹여 살려야 할 가지가 많은 건 힘든 일이다. 가지치기를 해주면 나무의 부담을 조금 덜어줄 수 있다. 나무는 남은 가지에 성장 에너지를 집중시켜 이듬해 더 강하게 자랄 것이다.
맞은편 집 아저씨는 과감하게 가지를 친다. 정말 휑할 정도로 가지를 조금만 남겨둔다. 나무를 잘 키우려면 저렇게 강전정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한 해 동안 그렇게 기특하게 자라는 걸 봐놓고 나뭇가지를 싹둑 자르는 게 못내 아깝다. 그래서 늘 마지못해 아주 조금만 자른다. 미용실에 가서 “끝에만 조금 다듬어주세요.” 하는 버릇 어디 안 간다.
그래도 나름의 가지치기 규칙은 지킨다. 첫째, 나뭇잎이 다 떨어진 후 가지를 친다. 둘째, 관리하기 수월한 높이로 키운다. 내 눈높이 위로 올라가면 진딧물을 잡아주기 힘드니까. 셋째, 가지가 너무 빽빽해서 바람이 잘 안 통할 것 같은 부분은 자른다. 바람이 통하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고 아프기 쉽다. 넷째, 죽은 가지는 잘라준다. 어떤 가지가 죽은 가지인지는 색깔이나 쪼글쪼글함, 그리고 가지에 붙어있는 눈의 상태가 오동통한지 말라비틀어져 보이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다섯째, 선택과 집중이 관건이다. 잎눈이 많고 생생해 보이는 가지를 남긴다.
가지치기를 약하게 하는 편이라서 평소에 쓰는 전지가위 하나면 전체를 다 다듬어줄 수 있다. 그런데 가끔 전지가위를 들이대면 흠집만 나고 잘 안 잘리는 두꺼운 가지를 만나게 된다. 그럴 때는 하는 수 없이 톱질을 한다.
내가 가진 톱은 시끄럽고 시원시원한 전기톱도 아니고, 목공이나 전지에 특화된 톱도 아니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얘기했으면 금도끼 은도끼 정원 신령이 나타나 “세 개 다 가지거라.” 할 법도 한데, 내 손에 들려 있는 건 공구 세트에서 건져온 연약한 실톱 하나뿐이다. 톱질을 하다 보면 나무도 진동모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양 부들부들 떨리고, 나도 흔들려서 멀미가 난다. 다음날 근육통을 얻는 건 덤이다.
근육통과 함께 잘린 가지도 덤으로 얻는다. 발아병 환자에게는 물꽃이나 삽목 역시 혹하는 아이템이다. 생각해보면 이쪽이 씨앗에서 새싹이 나오는 것보다 훨씬 신기하다. 내 손가락을 잘라서 물이나 흙에 꽂아 뒀더니 내가 하나 더 생긴다? 와, 소름 돋네.
다듬고 남은 가지를 집에 들고 내려와 물꽂이를 해봤다. 삽목은 봄에 얻은 가지에서면 몰라도 겨울에는 안 한다. 밖은 추워서 뿌리를 내릴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따뜻한 안에 들이자니 건조한 공기까지 일일이 관리해주지는 못할 것 같아서다. 물꽂이는 삽목보다는 만만하다. 고무나무 세 그루를 열 그루로 만든 화려한 이력도 있다. 그런데 옥상에서 데려온 가지들은 고무나무처럼 쉽게 뿌리가 나지 않았다. 가지에 남아있는 영양분으로 잎눈이나 꽃눈을 펼치는 것은 볼 수 있지만 거기까지였다.
딱 한 번 내 물꽂이 커리어가 굉장한 도약을 이루려나 보다고 착각한 적은 있었다. 물에 꽂아둔 블루베리 가지에 하얀 솜이 보였을 때다. 나는 그게 성장기의 튼살 같은 건 줄 알았다. 청소년기에 빨리 길어지고 넓어지고 하면서 생기는 튼살. “오, 나무도 이제 몸집이 커지려고 안에서 솜이 막 터져 나오는 거야?” 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솜이 움직였다. “뭐야? 솜이 걸어 다녀?” 내가 얼굴을 너무 들이대고 봐서 콧김에 솜이 흔들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숨을 참고 봐도 솜이 걸어 다녔다.
혼란스러웠다. 이게 뭐지? 내가 아무리 정원의 정령이니 텃밭의 요정이니 했어도 진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솜 요정의 정체는 미국선녀벌레라는 해충이었다. 나무 수액을 빨아먹고 단물을 뱉어 놓는 애였다. 진딧물처럼. 번식력은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진딧물처럼. 진딧물에 관해서라면 나는 말도 못 하게 지쳤으므로 시즌2를 또 겪을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블루베리 가지들은 그대로 샤워기 앞으로 끌려갔다. 낙엽을 쓸 때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