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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Oct 25. 2022

새를 보고 싶다면

어떤 장면은 끝내 미스터리로 남을 만큼 골치가 아프다. 하지만 어떤 장면은 명료하고 사랑스럽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밤만주 같은 가을 참새들이다. 가을이면 미니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에 참새떼가 꼬인다. 다른 나무도 많은데 꼭 사과나무에 가서 조르륵 줄지어 앉는다. 슬슬 겨울을 대비하는지 여름보다 털도 풍실하고 동글동글하다. 사과가 동글동글 열린 가지에 참새도 동글동글 앉아 있으면 꼭 밤만주가 열린 것처럼 보인다.


우리 집 옥상 정원을 방문하는 새들은 하나같이 제가 안 보이는 줄 아는 것 같다. 내가 여기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도 활개 치고 다니는 게 너무 귀엽다. 새들의 착각과 달리 눈으로 그들을 보고 있지 않을 때조차도 너무 잘 보인다. 포로록 포르르르 하는 날갯짓과 타닥타닥 가볍고 분주한 발소리가 보인다. 자기들이 몸무게가 가볍다고 존재감까지 가벼운 게 아니라는 걸 새들은 알까.


미니사과나무 가지에 줄지어 앉은 참새들


얼굴을 빤히 보면서도 빽 소리를 지르고, 눈이 마주쳤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블루베리를 서리해가고, 아주 편하게 등 보이고 앉아 쉬는 우리 집 방문객들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아, 새가 원래 경계심이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반가운 마음에 성급히 새들에게 다가간다면 새를 관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가 새들더러 “이 험난한 세상 살아가려면 야생성 좀 가지고 나도 더 경계해라.”라고 다그친다고 해서 얘네가 정말로 사람하고 어깨동무하고 걸어 다닐 정도는 아니다. 대게는 사람 기척만 나도 휙 도망가버린다.


처음에 새들은 내가 옥상에 발을 딛는 순간 날아가 버렸다. 드르륵 하고 시끄럽게 열리는 옥상문 소리를 듣고 도망간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문을 열기도 전에 이미 유리 벽으로 커다란 네발짐승이 보여서 자리를 떴을지도 모른다. 유리 벽에 등장하는 실루엣을 보기도 전에 슬리퍼 신는 기척부터 딱 알아채고 도망가는 것 같기도 했다.


새가 보고 싶다면 훌륭한 구경꾼이 되어야 한다. 훌륭한 구경꾼이 된다는 것은 사냥 의도가 없다는 것만 빼면 훌륭한 사냥꾼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떻게 해야 새한테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새를 놀라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에겐 위장이 필요하다. 밀리터리룩에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르고 머리엔 풀을 얹고 다니라는 소리가 아니다. 길리슈트 결제도 참아달라. 그저 초록색이나 갈색같이 자연의 색깔에 가까운 편한 옷이면 족하다. 그런 옷이 없다면 최대한 칙칙하게 입어보자. 탐조인들도 새를 보러 갈 때 빨갛고 노란 원색 옷이나 하얀 옷은 피해서 입는다.


위장을 했다면 그다음에는 접근이 문제다. 일단 처음에는 너무 가까이 가지 말자. 새들은 눈이 무척 좋아서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지나치게 잘 보인다. 나처럼 그들 눈에 띄기도 전에 새들을 다 쫓아냈다면 그건 시끄러워서다. 그래서 나는 새들이 있을 때는 최대한 조용히 걷고, 적게 움직이고, 말을 하지 않았다. 이중으로 된 낡은 옥상 문이 끼이익, 드르륵 하고 내는 소리를 줄여보려고 기름칠도 했다. 새를 보러 갈 때 조용히 통과만 하면 되게 미리 문을 열어둔 적도 많았다.


접근 과정에서 은신술을 쓰는 것도 추천한다. 사람의 모습을 온전히 다 노출하는 것보다는 어디 숨어서 눈만 빼꼼 내놓고 보는 것이 낫다. 전체가 유리 벽이라면 반쯤은 종이 상자로 가린다든가, 창문이 있는 벽이라면 벽 뒤로 몸을 숨기고 창문으로 흘긋 본다든가, 창문에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쳐서 나를 좀 가린다든가 하면 새들이 구경꾼을 훨씬 덜 의식한다.


몸을 가려줄 구조물 없이 새를 맞닥뜨렸다면? 그러면 일단 가만히, ‘나는 돌이다. 나는 나무다. 나는 새들이 우습게 보는 바보 허수아비다.’ 주문을 외면서 아주 가만히 있는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은 새들의 도망 경보를 울리기 딱 좋다. 그리고 스윽 딴 데를 보고 있는 척한다. 계속 그렇게 새를 관찰할 수 있다면 좋고, 아니면 최소한 새가 경계심을 조금 풀고 자기 하던 일을 마저 하기 시작할 때까지만이라도 정면으로 쳐다보지 말자.


이렇게 행동하는 데 익숙해지자 나는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새들의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새의 깃털, 흩트려 놓은 모래, 먹다가 떨어뜨린 블루베리 파편, 푸드덕하고 남기고 간 날갯짓의 메아리 같은 것만 줍다가 본체를 보게 되면 얼마나 신나는지 모른다. 연예인 사인만 백날 보다가 진짜 연예인을 보는 것 같다.


새들은 부산스럽고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짓도 한다. 혼자 귀엽고 웃기고 다 한다. 만날 그런 걸 보다가 겨울이 와서 옥상 정원 스파가 휴장에 들어가면 조금 외로워진다. 나무도 잠들고, 곤충도 잠들고, 먹을 것도 없고 하니 새들도 오지 않는다. 날이 추워지고 몇 번은 화분 받침에 물을 내놓아 봤지만 여름처럼 새들이 몰려들지 않았다. 그리고 날이 더 추워지니 물이 얼어서 내놓을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겨울에는 버드 피딩(Bird Feeding)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운 여름에 새들에게 체온을 낮춰줄 물웅덩이가 간절했던 것처럼, 먹이가 적어지는 겨울에는 새들에게 영양공급원이 필요할 테니까. 새들이 어떤 먹이를 좋아하는지, 겨울에 얼지 않게 물을 공급할 방법이 뭐가 있을지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옥상 정원 스파를 옥상 정원 뷔페로 이름을 바꿔서 겨울에도 운영하면 얼마나 재밌을까? 일단 개장만 하면 따로 소문낼 필요도 없을 것이다. 홍보는 직박구리와 참새 네트워크가 알아서 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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