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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Oct 25. 2022

위협의 재발견

이사 온 초기에 이 집은 안전하지 않다고 선언했던 이유 중 하나는 벌집이었다. 벌집을 처음 발견한 건 새로운 집에 적응하려고 옥상 구경을 갔을 때였다. 계단을 올라가 옥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기 직전에 거쳐 가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그곳 천장에 떡하니 벌집이 붙어있었다. 처음에는 천장에 덧댄 나무판자와 비슷해 보이는 색깔과 재질에 도대체 저게 뭘까 싶었다. 얼핏 보면 정물화 소재로 잘 쓰이는 마른 연밥의 끄트머리 같았다. 하지만 육각형의 방들이 외치고 있었다. 나는 벌집이야! 너무나 벌집이야!


벌이 살고 있지는 않았다. 방도 몇 개 없었고, 지은 지도 오래되어 보였다. 아마 벌집을 꾸리기 시작한 초기에 문제가 생겨서 더 번성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면 전 집주인이 벌집을 제거하려다가 어설프게 꽁다리만 남긴 걸지도 몰랐다. 나도 이거 하나 가지고 난리를 치진 않았다. 이 벌집은 흔적일 뿐이었고, 겁먹을 필요 없었다.


그런데 문밖으로 나갔더니 이번에는 무시할 수 없는 벌집이 나타났다. 문에서 나와 벽을 타고 조금 돌아가면 구석에, 그렇지만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곳에 아까 그 벌집과 비슷해 보이는 벌집이 하나 더 있었다. 이 벌집에도 벌은 살지 않았다. 벌은 이미 떠났지만, 전 집주인이 나 못지않은 귀차니스트라 그냥 방치해둔 모양이다. 하지만 얘는 조금 무서웠다. 흔적일 뿐이라기에는 제법 큰 흔적이었다.


“벌집이 있어!” 했지만 다들 시큰둥했다. 벌이 안 살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벌이 지나가다가 “오, 예전에 다른 벌이 여기 집 지어둔 걸 보니까 명당인가 본데?” 하고 와서 집 지으면 어떡하냐고. “그게 신경 쓰이면 벌집만 떼면 되지.”라고 대수롭지 않게들 말했다. 우리 집 귀차니스트들 중에는 내가 제일 부지런한 편이므로 아마 떼면 된다는 그 벌집, 떼는 사람도 내가 될 확률이 높았다.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벌을 싫어하지 않는다. 내가 싫어하는 건 모기다. 걔네는 시끄럽게 굴어서 밤잠을 설치게 하고, 하필 꼭 손가락 뼈마디 같은 데를 물어서 간지럽고 퉁퉁 붓게 만든다. 모기와 달리 벌은 귀엽다. 노랑 검정 줄무늬의 확실한 존재감에, 꽃의 수분을 도와주는 부지런함에, 귀여움의 정점을 찍는 유아동 용품계에서 곰돌이와 토끼에 버금가는 지위까지 모든 걸 갖췄다. 꿀벌 가방을 맨 아기가 지나갈 때 “귀엽다!”고 외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보라.


다만 벌이 귀여운 것과 내가 벌을 무서워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파리는 성가시지만 쏘지 않고, 모기는 침을 꽂지만 손으로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벌은? 벌은 나를 쏠 수 있고 내가 잡을 수는 없다. 벌이 내 의도를 오인한다면 걔는 자기 목숨을 걸고라도 나를 쏠 것이다. 나는 그걸 초등학교 때 알았다.


초등학교 운동회는 달짝지근한 냄새 천지다. 땀 흘리고 갈증 나는 자리에 음료수가 없을 리 없고, 그 많은 애들 중에 꼭 누구 하나는 음료수를 쏟게 되어있다. 벌에게는 유혹적인 장소였겠지.


벌은 아마도 그 단내에 홀려서 우리 주변을 배회했을 것이다. 평소라면 “붕-“하는 소리에 알아서 자리를 피했겠지만,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와 왁자지껄한 함성에 가려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도 벌을 해칠 생각은 없었다. 그건 사고였다. 아마 고양된 분위기에 팔을 휘저었거나, 옆 친구들과 너무 바투 붙어 앉아 있으니 더워져서 간격을 확보하고 있었거나 했겠지. 벌에게는 그게 공격 신호로 읽혔을지 모른다.


팔에 뜨겁게 쏘는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통증이 느껴진 팔을 몸 앞으로 홱 끌어당겼다. 그리고 보았다. 팔에 꽂혀 있는 노랑 검정 줄무늬의 꽁지를. 벌 몸통 앞부분은 어디로 간 건지 없었다. 주변에 도와 달라고 할 어른도 없었고, 보건 선생님이 대기 중이라는 구령대는 내가 서 있는 곳과 정반대 편에 있었다. 무엇보다 토막 난 부위에서 나오는 목공본드 같은 찐득한 액체와 잘린 벌 엉덩이를 본 순간 정신이 반쯤 나갔다.


벌에 쏘였을 때 대처법 같은 건 생각도 안 났다. 손으로 벌 꽁지를 확 잡아 뺐다. 팔에 박힌 침을 깨끗하게 제거하기 위해 카드로 밀어서 뽑지 않은 게 문제였을까? 온몸의 빨간 반점과 가려움을 얻었다. 한 달이나. 증상이 심한 건 아니어서 “요즘 왜 이렇게 가렵지? 뭐 잘못 먹었나?” 하고 벅벅 긁기나 하고 병원에 갈 생각은 못했다. 벌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가설은 가려움이 가라앉을 무렵에나 떠올랐다.


벌이 남기고 간 엉덩이를 마주한 사람으로서 경계하는 건 당연했다. 악의가 없어도 오해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나는 옥상에 올라갈 때마다 새로운 벌집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스캔했다. 다행히도 몇 년간 벌은 찾아오지 않았다. 경계심이 슬슬 느슨해졌다. 전 집주인은 어떻게 벌집도 안 뗐느냐고 나보다 더 게으른 거 아니냐고 할 때는 언제고, 그 몇 년 동안 나 역시 벌집을 떼지 않았다.


위기는 방심할 때 찾아온다고 했던가. 재작년 봄, 몇 년 동안 우리 집을 찾은 적 없던 벌이 옥상을 방문했다. 커다란 벌집을 남겨뒀던 바로 그 구석자리에.


걔가 옥상 정원을 방문한 첫 벌은 아니다. 몇 년 동안 벌이 우리 집을 찾은 적 없다고 말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우리 집에 벌집을 짓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꽃 피는 나무가 그렇게 여러 그루인데 당연히 꿀벌들이 꿀 찾으러 자주 들르지. 괜히 얼쩡대다가 쏘일까 봐 겁먹기는 했다. 그런데 사과꽃과 블루베리꽃에 잔뜩 달라붙어 수분을 해줘서 안 오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내 쪽에서 꿀벌한테 VIP 초청장을 보내 드려야 할 판이었다.


꿀벌이 오는지 몰랐을 때는 인공수정을 해줄 생각으로 붓을 들고 나갔다. 그런데 꿀벌이 하나둘 오더니 나중에는 목을 집어넣고 어깨를 움츠리는 걸로는 감당도 안 될 정도로 많이 오길래 아예 옥상 출입을 포기했다.


벌에 쏘일까 봐 무서운 거지 벌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옥상 문 안쪽에서 유리 벽을 통해 꿀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게 좋았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불멍, 물멍, 숲멍, 산멍 같은 멍때리기 시리즈에 벌멍이라는 장르를 하나 더 추가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벌집을 남겨둔 자리에 등장한 벌을 보고는 머리카락이 쭈뼛 섰느냐? 걔는 꿀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꿀벌은 오동통하니 귀엽고 털이 보송해 보이는데, 이 벌은 딱 봐도 전사였다. 크고, 길쭉하고, 보송한 털 대신 갑옷을 입은 매끄럽고 반짝이는 전사. 꿀벌이 노란 바탕에 매력을 더하기 위해 검정을 포인트 장식으로 배치했다면, 이쪽은 검은 바탕에 사기 증진을 위해 노랑을 살짝 가미한 느낌이었다.


“벌! 벌! 벌!” 하고 경보를 울리러 갔더니 이번에도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거짓말 전적이 화려한 양치기 소년도 아닌데 반응 이러기 있습니까, 가족 여러분? 위기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 “말벌이 나타났다고!” 하고 외쳤다.


그때는 ‘커다랗고 꿀벌 아님’을 뜻하는 단어가 ‘말벌’이었다. 그 외에 내가 구분할 수 있는 벌은 하나뿐이었다. 호박벌. 하지만 호박벌은 통통하다 못해 동그랗고 캐릭터 같다. “너 그렇게 생겼는데 도대체 어떻게 나는 거니?”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니까 물구나무를 서서 봐도 꿀벌도 호박벌도 아닌 쟤는 말벌일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태평하게 “그냥 가만 놔두면 걔네도 공격 안 해.” 했고, 동생은 “그러면 어떻게 해?” 하고 도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에휴, 벌집 제거자는 결국 내가 될 거라는 가설이 이렇게 증명되는구만.


골치가 아팠다. 그렇게 며칠 문제를 회피했더니 그사이에 말벌님은 집을 짓고 계시더라. 그 자리가 매력적인가 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원래 동물들에게 인가는 천적 피하기 좋은 곳이다. 마침 그쪽에 짧긴 하지만 플라스틱 처마 같은 비가림막도 있어서 벌집이 비에 젖을 일도 없었다. 우리 정원에는 온갖 생물이 득실대니까 먹이도 풍족할 거고.


그냥 앉았다 가는 길이길 바랐는데 집을 짓기 시작했으니 선택권이 없었다. 꿀벌에 쏘여도 아팠는데 말벌에 쏘이면 얼마나 아프겠나. 이쪽에서 자극 안 하려고 애쓴다고 그쪽도 자극이 아니라고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옥상에 안 갈 수도 없었다. 나무에 물은 줘야지. 우리 옥상 정원은 저택 정원처럼 넓지 않아서 벌집을 피한다고 해봐야 그 근처로 한 번은 지나가게 되어있었다. 아니지, 갔다가 돌아오는 것까지 하면 최소한 두 번.


내가 찾아낸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119에 전화하기. 다른 하나는 도시 양봉 단체에서 운영하는 도시 벌집 제거 사업단에 전화하기. 도시 양봉 단체는 우리 동네가 아니라 성동구에 있어서 일단은 119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119에 전화하려니 작은 벌집 하나 없애자고 바쁘신 분들을 불러 더 위급한 사고에 투입될 인력이 부족해지는 건 아닐까 싶었다. 물론 내가 직접 살충제나 토치를 들고 설치느니 119에 신고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119에는 벌집 신고가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하지만 신고한 사람들은 진짜 커다랗고 위험한 벌집을 발견했던 게 아닐까? 쟤는 이제 막 집을 짓기 시작했고, 나를 위협한 적도 없는데.


그러면 도시 양봉 단체에 전화해서 물어나 보자 싶었다. 성동구는 우리 동네 바로 옆이니까 와줄지도 모른다. 문의를 하려면 상황 설명을 해야 할 테니, 정리를 해봤다. 어떻게 생긴 벌이고, 걔가 지은 집은 어떻게 생겼고, 집 지은 위치가 어디고 이런 것들 말이다. 현장 정보를 알려드려야 벌집 제거하시는 분도 거기 대비를 하고 오지. 혹시 이게 그 무시무시한 장수말벌이라면 정말 단단히 대비하고 오셔야 할 거다.


옥상에 올라가긴 했는데, 겁쟁이라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사진만 찍어왔다. 그 사진을 보면서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되었다. “어? 이거 장수말벌 아니야?” 하는 의심이 든다면 그것은 장수말벌이 아니고, “헐. 드론이다.”라는 생각이 들면 장수말벌이라고. 우스갯소리겠지만 어쨌든 얘는 그냥 좀 큰 벌이지 엄청나게 큰 장수말벌은 아니라는 소리다.


집도 말벌 집이 아니었다. 말벌 집에는 벌집을 둘러싼 외피가 있다. 외피는 노란 유화물감을 막 문질러 놓은 것처럼, 또는 국자 안에 담아 휘저은 자국이 울렁울렁하게 보이는 달고나 반죽처럼 보인다. 우리 집에 있는 벌집은 이전에 있던 벌집들이나 새로 온 벌이 짓고 있는 집이나 외피 없이 벌집의 방 구조가 그대로 보였다. 회색 종이나 아주 얇게 저민 나무껍질로 만든 것처럼 보였다. 그건 쌍살벌의 집이다.


벌집 구분하기


쌍살벌은 온순한 벌이라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집 문 바로 앞에 벌집을 지어서 사람이 문을 수시로 여닫아도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에 신고 전화는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저 정도 자극을 견딜 수 있으면 문 여닫히는 곳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우리 집은 상황이 더 낫겠지 싶었다.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있어서 실수로 건드릴 일도 없었다. 어쩌면 이 벌은 나를 오해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나는 여기 너는 거기 있기로 한다면 같이 한 공간에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경계심을 푼 것은 아니었다. 판단 유보 결정이었다. “네가 언제라도 우리 가족을 쏜다면 신고 전화를 하겠어. 그렇지만 아직 우리는 괜찮아.” 만약 벌이 사람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답했으리라. “네가 우리 집을 건들지 않는다면 조용히 지내겠어. 그렇지만 우리를 위협한다면 쏠 거야.” 나는 평화의 제스처로 깨끗한 물 한 그릇을 떠다 벌집 앞에 가져다 두었다. 벌들이 집을 짓고 애벌레를 키우기 시작하면 물이 많이 필요하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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