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바지의 진화

- 엄마가 달라졌어요. 더 행복해지세요.

by Naesu

통쾌했다. 막내가 놀러 나간 일요일 오후의 한가함을 즐기는 중이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걔네들은 소녀시대 스키니진을 엄마 바지라고 부르는 애들이야’ 생애 처음으로 아줌마 소리를 들은 초보 엄마에게 친구가 건넨 위로의 말이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이 짧은 에피소드에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이 신선했다. 누군가의 힘겨운 순간을 공감하며 감싸주기보다 장난스러움이 발동하다니, 미안한 마음도 곁들여진다.

소녀시대가 등장했을 때 나는 초보 엄마, 신입 아줌마였다. 이제 그 시절의 소녀들이 같은 카테고리로 진입하고 있다니 감회가 새롭다. 아이를 낳고 아줌마가 된 소녀들이 대견하고 기특하다. 젊음의 전매특허인 스키니진이 이제 엄마 바지란다. 빠르고도 재미있는 세상이다. 이런 유쾌한 생각의 물결을 타고 내 마음은 어린 시절 우리 엄마 바지에 당도했다.

엄마는 사시사철 지독하게도 촌스러운 꽃무늬가 그려진 고무줄 바지를 입었다. 가마솥에 불을 지피느라 불똥이 튀어 있기도 했고 무릎이나 엉덩이 부분이 반들반들해져 곧 구멍이 날 것 같기도 했다. 드물게 새로 산 엄마 바지 역시 이전 것과 구별되지 않을 만큼 비슷했다. 준비물 살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아침 설거지를 하던 손을 행주에 대충 닦으며 허리춤에 손을 넣으셨다. 일바지에 달아놓은 속 주머니에서 대부분은 동전을, 1년에 한두 번은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주시고는 했다. 일바지 외에 다른 옷을 입은 엄마 모습은 사진으로만 기억된다.

초등학교 4학년, 어버이날이 가까워지는 시기였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 엄마와 같이 찍은 사진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사진이 귀한 시절이었다. 사진이 없으면 그려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싶지 않다는 투지에 불타서 집안을 샅샅이 뒤지며 사진을 찾았더랬다.

긴 생머리를 뒤로 묶은 엄마가 양 볼이 지나치게 토실한 아기를 안고 있었다. 롱드레스를 입은 엄마가 흑백사진으로 보아도 참 예뻤다. 내가 백일이 되어갈 무렵 동네에 사진사가 들어와서 백일 사진을 찍으면서 덤으로 얻어진 사진이라고 했다. 뽀글뽀글 짧은 파마머리에 일바지만 평생 입는 엄마인 줄 알았는데 젊은 엄마 모습을 보고 마음 한구석이 시큰해졌다. 드레스를 다시 입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드레스가 아니라 임부복인데 우리 셋을 다 낳도록 입었고 정말로 닳아서 없어졌다고 하셨다. 아쉬웠다.

하지만 이 사진은 낙제였다. 예쁜 엄마가 안고 있는 아기가 문제다. 백일 된 내가 너무 못났다. 볼에 살만 잔뜩이라서 눈 코 입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결코 학교에 들고 갈 사진이 못 되었다. 찾고 또 찾다가 이번에는 엄마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허벅지 중간까지 오는 시냇물에서, 그보다 더 짧은 치마를 입은 앳된 아가씨 네 명이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단발머리에 살짝 컬을 주고 연예인 같은 자태를 뽐내는 엄마를 나는 금방 알아보았다.

그 시절의 눈으로는 ‘바니 걸스’ 같아 보였다. 요즘 식으로 해석하면, 소녀시대의 멤버로 보여질 듯 날렵한 엄마 모습이 뿌듯했다. 그럴수록 일바지만 입는 엄마의 현실이 더 서러워졌다. 저 시절의 화사한 엄마는 어디로 사라지고 일 년 내내 몸뻬에 뽀글이 파마를 한 엄마가 되었을까?

몸뻬라는 단어는 예상 밖에 표준어다. 하지만 일바지로 순화하거나 외래어 몬페로 표기할 것이 권장되고 있기도 하다. 일본 도호쿠 지방의 작업복인 몬페モンペ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몬페가 어머니 바지로 자리매김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엄청난 시대적인 유행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식민지 말기, 일제는 조선 여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서 일바지를 강요했다. 몬페를 입지 않은 여성은 버스나 전차 탑승 금지, 관공서나 극장 출입까지 제한되었던 것이다.

일바지의 슬픈 역사를 알지도 못했건만 엄마의 일바지는 참으로 못마땅했다. 매일 몬페만을 입는 엄마는 미적 감각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단아한 원피스나 투피스를 좀 입으시면 좋으련만 엄마는 일바지가 좋다고 하셨다. 허리와 허벅지는 넉넉하고 발목 쪽으로 내려가면서 통이 좁아 편안하고 기능적인 몬페는 그 당시 일 많은 시골에서는 보편타당한 패션이기도 했다.

시골 엄마 바지로 익숙한 몬페는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예능 프로에 단골로 등장하며 친숙한 재미를 더해주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몇 년 전에는 냉장고 바지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해서 국민적인 바지가 되기도 했다. 촌스러운 꽃무늬가 아닌 기하학적 무늬가 다소 도시적인 느낌을 주는 몬페를 구입해 입어보았다. 어찌나 편하던지 다음날로 까다롭던 고등학생 딸아이의 잠옷으로 낙점되기도 했다.

얼마 전 우리 막내에게 스포츠 트레이닝 바지라는 긴 이름이 붙은 야외 활동용 바지가 배송되어 왔다. 바지를 보자마자 “할머니 바지네”라고 했다. 막내 네 거라고 했더니 “할머니가 자주 입으시는 스타일”이라고 해서 웃었다. 이제는 야외 활동용 바지를 엄마 바지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 시절의 몬페는 할머니 바지가 되지 못했다.

몬페는 젊은이들 패션으로 탈바꿈했고, 우리 엄마 바지는 기능성과 활동성을 모두 갖춘 스포츠용 바지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 초등학생들 기준 엄마 바지는 스키니진이다. 또 다음 세대는 어떤 엄마 바지가 출현할지 심히 기대된다. 하지만 촌스럽게 화려했던 일바지처럼 따뜻하면서도 아픈 바지는 이제 없을 것 같다. 앞으로 모든 엄마 바지들이 유쾌하고 즐겁기를 기대한다.


며칠 있으면 어버이날이다. 새로운 기준의 엄마 바지를 사드려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안티프라민과 해나무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