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 주의

잃어버린 순간을 찾아서

by Naesu

토요일 저녁 집 근처에서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갈 때는 보지 못했던 '소중한 컷'이라는 스티커 사진 가게가 눈에 띄었다. 3월을 가로질러 가는 바람 속에서 언뜻 보이는 공간은 아늑해 보였다. 소품용 안경과 머리띠, 분장 용품들이 아기자기했다. 사진을 찍을 마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지나치기는 왠지 아쉬웠다. '인생 네 컷이 새로 생겼다더니 여기였네'라는 초등학생 막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20240317_152155.jpg 소중한 컷이 나왔다. 원래 테두리도 이게 아니었는데 선택 중에 시간이 가서 배정됐다. 나름 괜찮다. 아이가 바나나에서 파인애플로 교체하러 간 사이 둘만 찍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남편한테서 문자가 와 있었다.


Screenshot_20240317_183339.jpg 주일 아침 받은 첫 번째 메시지

아마 새벽에 생각난 모양이다. 나이가 든 건지, 이런저런 경험치가 쌓여서 그런 건지 찾으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재발급이 번거롭겠다는 생각을 하며 청소를 하는 동안 남편이 카드를 찾아왔다. 스티커 사진 기계에는 중년 커플의 사진이 있었고 남편의 카드는 테이블 위에 잘 놓여 있었단다. 스티커 사진을 두고 간 커플은 지난밤에 스티커 사진을 찍었다는 건 기억할까? 스티커 사진 찍고, 카드를 잃어버리는 것과 스티커 사진을 잊고 오는 것 중에 뭐가 더 강력한 분실일까?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막내의 교회 성탄절 발표용 옷을 잃어버렸다. 아파트 단지 앞에서 내릴 때만 해도 손에 들고 있었는데, 집에는 없었다.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자마자 바로 나가서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로 인해서 초상권 침해의 소지가 있어서 단지 주민이라도 쉽게 CCTV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송까지 했지만 결국은 찾지 못했다. 장갑이나 손수건도 아니고 크리스마스트리 금박이 번쩍거리는 하얀색 맨투맨 티셔츠를 아파트 입구에서 집 사이 겨우 20미터 내에서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긴 잃어버리는 순간, 놓쳤거나 두고 가고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분실할 리가 없다. 카드를 놓고 오거나, 스티커 사진을 찍으러 들어와서는 찍은 사진을 놓고 간 후에도, 심지어 손에 들고 있던 티셔츠를 잃어버리는 순간에 인식을 못하다가 뒤늦게 분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범위를 넓혀서 비물질 영역은 정말이지 언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도무지 그 지점을 특정하기 어렵다. 그냥 사는 동안이라고 할 수밖에...



3년 전, 20년 만에 봄을 맞았다. 여름뿐인 나라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새싹, 이파리, 신선하면서도 차갑지 않은 공기, 모든 게 다 신비롭고 놀라웠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제 발로 바깥세상을 구경하듯 틈만 나면 봄 사이를 비집고 다녔다. 점점이 돋아나서 나무에 색을 입히는 이파리들이 모두 마법 같았다. 작은 일에도 기뻐하는 아이의 순수함, 감탄하는 능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어버리고 살던 나를 발견했다. 사느라 분주했던 날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들끓던 속이 살짝 누그러들면서 사는 게 좀 편안해졌다. 아이들 키우면서 30대 40대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날카롭던 감정돌기들이 자연스럽게 마모되고 감정선이 안정되는 게 성숙이라 여겼는데, 무감해지는 과정이었을까. 아니면 동전의 양면일까.

지난 해 이맘 때는 여름 나라에 있었으니 두번째로 맞는 봄이다. 두 살배기 시선으로 세상 구경을 하려는 데 황사 주의보가 연일 날아든다. 이렇게 또 무디어져 가나. 겨우 되찾아서 아껴 쓰고 있는 경탄의 능력이 퇴화되어 버릴까 두렵다. 잃어버리지 않게 자주 건드려 본다. 있나 없나 어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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