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모든 것들이 읍내를 통하여 들어오던 시절의 이야기
“재분네 아기 사 왔다” 동네 꼬맹이들이 몰려들었다. 몇 달 전에 진천 읍내에 처음으로 문을 연 조산소에서 태어난 나는, 우리 막내 고모의 품에 안겨 고향마을 느릅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스름이 번지던 여름날 저녁 조그마한 동네는 떠들썩한 기대로 가득 채워졌다. 새로운 모든 것들은 읍내를 통해서 들어오던 시절이었다.
하루에 다섯 번 오가는 버스는 모두 읍내로 향했다. 저만치 보이는 다리에서 갈라져 올라가는 성대리 쪽 시내버스의 종착지도 한결같이 읍내의 해나무 거리였다. 그리하여 나는 해나무가 세상의 중심에 심어 놓은 나무인 줄 알았었다. 에덴동산 가운데 선악과나무가 있듯이.
우리 할아버지는 요즘 말로 하면 안티프라민 마니아셨다. 원래의 용도인 근육통, 타박상, 관절통, 가려움증에는 물론이고 코 막히면 콧잔등에 기침 가래가 있으면 목에 발라주셨다. 배 아플 때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가히 만병에 통하는 약이라 할만했다. 가까이 두고 즐겨 쓰셨다.
초등학교 6학년의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시외버스에서 내려 터미널 앞에 붙은 진천이라는 이름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이미 여러 번 가 보았던 대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길모퉁이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바쁜 걸음을 옮기다가 해나무를 만났다.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시내버스 차고지는 멀찌감치 이사를 했으나 해나무는 여전히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이 길 끝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양백리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이발소에 걸린 시계로 시간을 확인한다. 4시 30분. 5시 버스를 타고 가면 어둡기 전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거의 다 온 거나 다름없다고 안심하며 중국집 앞을 지나 약국 쪽으로 걷고 있었다. 곧 맞닥뜨리게 될 엄청난 일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로. 짜장면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약국 조제실 안, 하얀 가운의 움직임이 망막에 잡히는 그 순간, 시간여행이 시작되었다.
막내 고모에게 드문드문 배운 낱자들을 찾아내고 있었다. 처음 가 보는 장소에 잠시 주눅이 들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이발이 끝나면 이 세상 최고의 음식을 먹으러 갈 것이다. 그러니 날카로운 면도칼도 전동식 이발기의 위협적인 소리도 괜찮다. 머리카락이 좀 덜 치워졌어도 좋았다. 간질간질 올라오는 기대에 찬 조바심을 참아내려고, 겨우 읽을 줄 알게 된 글자들을 찾아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따라나설 수 있었던 건, 지난 장날의 버스 시간이 너무나 촉박했기 때문이었다. 난생처음 먹어 본 그 맛있는 짜장면을 반이나 남겨 두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었다. 날이 저물도록 얼굴에 흙을 발라가며 울었고 할아버지께서는 다음 장날이 채 못 미쳐서 나를 데리고 나와 주셨다.
해나무 거리 짜장면집에 도착했다. 냄새부터가 천국이었다. 면을 뽑아내는 탕 탕 소리의 신비로움에 매료되었다. 온전히 1인분을 다 먹었다. 할아버지께서 “더 시켜줄까?” 물으셨다. 배가 불러 도저히 더는 먹을 수 없는 것이 억울할 지경이었다. 언제 또 먹으러 올 수 있는지 여쭤보기라도 했었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친 것이 못 내 아쉬웠다.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약국에 들어섰다. 하나뿐인 장의자에 살풋 앉았다가 아예 위로 올라섰다. 하얀 가운을 입은 아저씨가 약을 만들고 계신 유리창 너머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얇지만 약해 보이지 않고, 비칠 듯 비치지 않는 하얀색 종이에 약을 넣고 익숙하게 집 모양으로 접으셨다. 봉투에 담아주셨다. 그리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안티프라민을 달라고 하셨다. 늘 보아왔고 항상 쓰고 있는 우리 집 만병통치약의 출처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초록색 철제 통에 담긴 안티프라민 연고를 해나무 거리 약국에서 제조해 팔고 있는 거였다. 인기 상품이니 잔뜩 만들어 놓고 파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른 약들은 주문이 오면 바로 그때 만드는 것 같았다. 밀가루를 퉁 퉁 치고 늘리면서 면발을 바로 뽑아내듯이.
나는 짜장면이 주는 행복한 포만감과 지적인 깨달음에 한껏 고무되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약사님은 참 똑똑하기도 하지. 철제 통에 해나무를 그려 넣어서 글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아이도 어디서 안티프라민을 사야 하는지 친절히 알려주다니 진짜 지혜롭다.
시내버스에서 내렸을 때, 학교 마치고 돌아온 은주 언니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최소한, 그날의 깨달음을 그렇게 신나게 떠벌리지는 말았어야 했다. 이 모든 기억은 결코 순차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쓰나미가 되어 나를 덮쳤다. 목덜미를 지나 등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 늦은 오후의 봄볕이 한여름의 태양보다 한층 더 뜨거웠다. 할 수만 있다면 나를 돌돌 말아 어딘가에 감추고 싶었다.
그날, 해나무가 나를 안심시켜주지 못했더라면 시간여행은 없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기억의 쓰나미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열세 살의 오후’는 없었을 것이고 ‘안티프라민의 제조사를 알아차린 때의 감동’은 추억의 페이지에 저장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아직도 해나무 거리가 있어?” “그럼. 해나무가 어디 가냐? 근데 이제는 길이 많이 나서 거기로 안 다니지. 근데 네가 안티프라민만 보면 해나무 거리에서 사 왔네 했던 거 생각나니? 할아버지가 오만데 다 바르시고 그러셔서 항상 있었잖아” 하신다. 나는 “그랬어” 하며 같이 웃었다. 어린 시절 왜 그런 말을 했었는지 밝히지 않았다. 이제는 얼굴이 붉어질 이야기도 아니건만 말하지 못했다.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가장 뜨거운 날을 골라 진천 읍내에 가고 싶다. 내비게이션이 알지 못하는 해나무 거리에 발을 디뎌 보고 싶다. 배가 부르도록 짜장면을 먹고,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해 줄 ‘안티프라민’ 한 통을 사 오고 싶다. 만병에 통하는 ‘안티프라민’을 제조하는 약국과 세계 최고의 짜장면집이 있던 ‘해나무 거리’를 기록해 본다. 해나무가 세상의 중심에 있지 않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