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가 채웠다 빠져나간 이 빠진 시간들마다 소설
책을 잡아 읽었다. 먹으면 언젠가 배설이 되어야 하듯이
소설을 많이 읽다보니 나도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져 소설
쓰기 수업을 들었다. 한겨레 문화센터와 창비학당을 고민하다
창비학당을 신청했다. 그 중에서도 임승훈 소설
가의 창작 수업을 들었는데 선택한 이유는 유머러스한 글
을 쓸 줄 아는 잘생긴 남자이어서다.
제목: 이공이공하고 말하면 뭐가 떠올라?
이공이공하고 말하면 원더키디가 떠오른다. <2020 원
더키디>는 80년대 티비 만화 제목인데 사람들 앞에서
괜히 이 말을 꺼냈다간 내 나이가 사십줄인게 수면으로
떠오를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만화에 나온 것과 실제
2020년은 굳이 꼽자면 비슷한 점이 하나 있다. 만화에는
일인승 자동차 비슷한 걸 타고 사람들이 날아다니는 장면
이 많이 나오는데, 실제 2020년은 비록 차가 날지는 못하
지만 자율주행차를 주제로 한 주식들이 상한가를 찍으며
그 주식을 가진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듯한 부러움을 샀
다. 나는 물론 날지 못했다.
2020년에 나는 가게를 열었고 매출은 해가 넘어간 이
순간까지 추락하고 있다. 코로나라는 희대의 전염병이 돌
아 사람들이 밖을 잘 안 돌아다녀서 무수한 가게들이 망
했고, 그 중 하나인 내 가게도 별수 없이 망해가는데, 망
한다는 건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어서 지난한 과정을 거
쳐야만 하는 것이었다. 원래 가게 문을 처음 연 주간에는
새로 생긴 매장이 어떤가하고 사람들이 몰리는 오픈빨이
라는 것이 있게 마련인데 꿈도 꿀 수 없었다. 별 노력 없
이 코로나 청정 매장이 되었다.
손님 구경이라고는 못하며 보낸 두어 달 뒤 어느 날, 결
심이라도 하듯 오픈채팅방에 들어갔다. 그날 바로 가게에
서 멀지 않은 곳에서 벙개 모임을 하는 방을 골라 북적북
적한 술자리에 끼기로 했다. 종일 출입문만 노려보며 입
을 열 때라곤 새우깡을 집어먹을 때 뿐이였던 난 벙에 나
가서는 말을 줄줄줄 해댔다. 벙에는 정말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드나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자영업자는 가장 불
쌍한 축에 들어 내가 좀 설쳐대도 이해해주는 분위기였
다.
“누나는 왜 결혼 안했어? 그거 대출 끼고 차린거면 힘
들겠네...”
“누나는... 이모지.”
오픈채팅방에는 남자가 더 많아서인지 여성 회원 대환
영이라고 써있었지만 여자라도 사십을 넘으면 던지는 말
에 상처나 안 받으면 다행이였다. 남자들끼리는 꼭 나이
를 물어 한 살이라도 많으면 아, 형님- 하고 깍듯이 존대
하고, 여자들에게는 적당히 반말이 오고 갔다. 구려님, 짱
님 이라고 서로 호칭하며 잔을 부딪힐 땐 이 식당 안에 내
가 아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기도 했다. 그래도
친구에게는 창피해서 얘기 못한 가게 사정이 이들에게는
짝태와 먹태의 차이보다 관심 없는 이야기여서 대부분이
흘려듣는 터라 맘껏 얘기할 수 있어 좋았다.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기약없이 벙개를 보류하
겠다는 방장의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가게의 상황 역
시 나아지지 않아 혼자 가게 안에 고립된 것 같은 두려움
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나같은 외로운 이들의 유입
으로 오픈채팅방 수도 나날이 증가해서 갈 곳은 많았다.
이번에는 동네를 벗어나 합정, 종로를 거점으로 하는 채
팅방에 들어갔다.
마흔이라면 인상부터 달라지던 게 두려워 이번에는 37
세 여자로 설정하고 참가 버튼을 눌렀다. 이 채팅방은 동
네 채팅방에 비해 인원수도 백명이 넘고 뭔가 차원이 다
른 느낌이였다.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는 벙개에 나가야지
만 실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자기 사진을 자랑
하듯 미리 채팅창에 올리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나면 얼
굴부터 옷 입은 스타일까지 평가가 이뤄졌다. 후한 평가
를 받은 이가 자연스레 채팅방을 주도하고, 사진을 올리
지 않은 이들은 조용히 휴대폰을 내려놓고 자신의 뱃살을
한번 내려다보거나 나에게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
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그랬다.
거울 앞에 섰다. 키는 평균보다 살짝 작은 것 같고, 얼굴
은 잡티를 좀 없애야 했고, 살은 좀 빼야할 것 같았다. 바
뀌고 싶었다. 길거리에서는 내 가게가 외면받더라도 이
채팅방에서 만큼은 살아남고 싶었다. 그날부터 저녁 한
끼를 굶었다.
주변 상가들 중에 <임대>라고 써 붙인 점포들이 늘어
났다. 옆집에 편의점 사장님은 알바를 쓸 사정이 도저히
안된다고 했다. 남편이랑 새벽에 번갈아 나오느라 늘 피
곤하다고 하면서 유통기한이 십 분 정도 지난 요구르트와
도시락을 두 개 갖다 주었다. 도시락을 두 개나 펼쳐놓고
밥을 꾸개꾸개 넘기며 전면 유리창을 통해 밖을 보고 있
자니 관객 없는 무대에서 춤을 추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싶
었다. 상점이란 것이 원래 보라고 있는 거니까 유리창이
클수록 좋은 건데 손님 없는 가게 사장의 음울한 표정을
계속 노출하는 건 끔찍했다. 이따위 공연 하루 더 멈춰봐
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영원히 멈춰도 모를 것이다. 일요
일만 쉬던 것을 하루 늘여 평일 하루를 더 쉰다고 유리창
에 써 붙였다.
쉬는 날이 하루 늘었는데 일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해서
인지 쉬어지지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와 광화문 디타워를 하릴없이 돌아다녔다. 코로나 시국이
무색하게 늘 사람이 많았는데 특히 타임스퀘어 명품매장
은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는 정도였다. 불안할수록 아름
답고 우월한 것들에 선택이 집중되는 건가. 선택받지 못
한 내 가게는 열등하고 쓸모없는 부류라는 생각이 들었
다. 나라도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유튜브에서 열심히 본대로 저렴한 가격에 지금 시즌 유
행 옷을 장착하기 위해 자라 매장에는 꼭 들렀다. 갈 때마
다 옷 사이즈가 M이냐 L이냐 들었다 놨다가 하다가 결국
L만 챙겨 나왔었는데 드디어 M사이즈가 들어갔다. 한달 만에 사킬
로가 빠진 결과였다. 이제 벙에 나갈 수 있겠다 싶었다.
벙 장소는 을지로였다. 90년대 건물과 골목들 사이에
한껏 멋을 낸 세련된 스타일의 이삼십대들이 흘러 넘쳤
다. 오래된 거리와 너무나 새 것 같은 그들간의 괴리가 생
경했다. 이 거리의 옛스러움을 소비하러 왔을뿐 나는 이
곳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벙에 참가한 사람들에게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거 목욕탕 의자 아냐? 재밌다. 나 여기 앉으면 돼?”
채팅방에서 사진을 공개해서 이미 얼굴이 눈에 익은 스
튜디어스 출신 A가 테이블을 두 개 붙여놓은 자리 가운데
에 앉으며 말했다.
“여기는 후진게 재미야. 그래서 힙지로라고 하잖아.”
광화문에 있는 대기업에 다닌다는 B가 그 맞은편에 앉
으며 말했다. 이어 채팅방을 주도하던 이들이 중심을 차
지하고 말 없던 이들이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어디
사는지, 나이가 몇인지,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한
바퀴 질문이 돌고 나면 흥미로운 대상에 추가 질문이 쏟
아지는 식으로 대화는 진행되었다. 합정 사신다는데 그
집이 자가인지, 나이에 비해 동안이라든지, 공기업 다니
시면 안정적이여서 좋겠다든지. 대화는 각자의 욕망의 범
위를 넘어서지 않았다. 그러다 둘 사이에 욕망이 적당히
충족된다 싶으면 썸 관계가 되는 모습이었다.
자정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썸이 되는 이들, 부러워
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생겨나며 이야기는 모두의 관심사
인 주식에 이르렀다.
“내가 아는 동생이 자융주행차 테마주로 올해에만 여덟
배 먹었자나.”
“아 나도 거기에 넣을걸...”
“부럽다...”
돈을 쉽게 많이 벌고 싶다는 얘기가 주식이라는 껍데기
를 입으면 천박하기는커녕 쉽게 수긍이 되는 분위기였다.
주식투자는커녕 월세 내기도 어렵다는 자영업자의 하소
연은 이곳에 차마 꺼내놓을 수 없었다. 대화에 끼지 못한
채 구석에서 안주만 집어먹다보니 가게에 혼자 있는 것과
뭐가 다른지 헷갈렸지만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사실이 마
음에 들었다.
“위험하게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 넌 집에만 있냐 뭐. 맨날 노트북들고 카페 가잖아.”
“카페에서 각자 자기 할 일 하는 건 그런 만남이랑은 아
예 다르지. 공간을 이용하는 것 뿐이야.”
“사람이 있는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거잖아. 보이지 않
을 정도로 느슨한가 직접적이냐의 차이지, 결국 남들과
한 공간에 연결되어 있으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봐.”
“그게 어떻게 같냐... 하여튼 그렇게 외로우면 소개팅앱
에서 일대일로라도 만나. 요즘 시국에 모임을 기웃거리는
게 말이 안되.”
반년 만에 집 앞 스타벅스에서 만난 친구는 못마땅하다
는 듯이 인상을 쓰며 커피를 홀짝일 때에만 마스크의 한
쪽 귀를 풀었다 금새 다시 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이고
출퇴근 없이 집에 주로 있는 친구여서 외롭지 않나 물었
지만 혼자인게 좋다고 했다. 코로나 위험 단계가 높아져
가끔 카페조차 이용 못하게 금지령이 떨어지면 꼼짝없이
집에만 있을 텐데 그럴 땐 어떻게 견디는지 나로서는 상
상이 안됐다.
오랜만에 소개팅앱을 켰다. 추천인 목록에 남자는 많았다. 스
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끝이 보이질 않아 우선 순위를 정
하는 버튼을 눌렀다. 스펙 우선, 섹스 우선, 지역 우선 중
에 잠깐 고민하다 지역 우선 버튼을 눌렀다. 한 시간 이상
떨어져 있는 사람과 만나기 위해 드는 시간과 수고스러움
을 일단 줄이고 싶었다. 추가 결제 창이 떠서 간편결제로
지불했다. 실제로 만남에서는 만나는 그 사람이 누구냐도
중요하지만, 만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수고를 최소화해
야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웠다. 그게 추가 결제를 하면서까
지 이 앱을 쓰는 이유이겠지. 이제 빨리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만나기로 한 카페까지 그 앱의 T 서비스를 이용해 택시
를 타니 금방이었다. 앱에서 마치 포켓몬 찾기처럼 상대
방의 위치를 깜박거리며 알려줘 능숙하게 그를 찾을 수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 앉자 남자 향수 특유의 시원하고
톡쏘는 향이 은은하게 풍겨 잠시 아찔했다. 사람을 만난
다는 건 이런 느낌이였지 하는 고리타분한 기분에 빠졌
다. 전염병 때문에, 미세 먼지 때문에, 예년과 다른 혹한,
혹서의 날씨 때문에 외출이 드문 시기이니까.
“아이스크림 라떼 좋아하신다고 해서 방금 시켰어요.
생각보다 아담하시네요.”
나는 그의 말에 그냥 “아...”라고 반응할 수 밖에 없었
다. 정보와 현실의 불일치를 탓하는 건가.
“무엇보다 같이 테니스를 치러 다닐 여자친구가 필요했어요.”
테니스라면 내가 취미란에 적어두긴 했는데 이 중에 하
나만 걸려라 하는 마음으로 잡다하게 적어둔 거라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핏줄이 불거진 저 팔로 서브 보낸
공을 초보인 내가 받아칠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얼
굴 표정은 여유롭게 유지한 채 일단 나도 그래서 왔다고
대꾸해 버렸다.
이어지는 대화 중에 나는 그의 부드럽게 펌한 머릿결,
살짝 그을린 듯한 피부, 웃을 때 눈이 하나도 안보일 정도
로 주름지는 눈웃음을 슬쩍슬쩍 바라봤다. 파핫-하고 웃
을 때 있는 듯 없는 듯 느껴지는 가벼운 민트 치약향도 그
와의 키스를 상상하게 했다. 가까운 동네에 살기에 공감
할 수 있는 쇼핑하는 곳의 위치라든지, 맛집의 위치, 도서
관 시설 이야기 등을 얘기할 때는 그와 이미 사귀는 것 같
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나와 가까운 동네에 살고 월급도
비슷한데 결론적으로 그가 나보다 약간 더 잘난 사람이라
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더 그와 사귀고 싶어졌다.
헤어지고 집에 오는 길에 ‘잘 들어가’라는 그의 메시지가 왔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더 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뭐가 문제인 걸까.
앱에서 적당히 비슷한 사람을 소개해 줬을텐데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기는! 난 알겠는데.”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말 믿지마.”
“원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안 좋아하는거야.”
“나보다 조금이라도 잘난 사람 만나고 싶어하거든...그
게 사람의 심리야. 그 욕심은 본능과도 가깝지.”
클럽하우스 앱을 켜서 자주 가는 그룹에 있는 사람들과
보이스 채팅을 시작했다.
“그럼 사귀고 있는 사람들은 뭐야?”
“기적이지. 아니면 서로가 잘나고 부족한 계산이 딱 맞
아 떨어져서 손해볼게 없거나.”
“아무도 손해보고 싶어하지 않지... 부인할 수 없을
걸?”
“대신 나랑 놀자아.”
“싫어. 넌 목소리만 들어봐도 못생겼을 것 같애.”
“크크크”
“하흐하하”
그 방을 나와 ‘울적한 저녁 뉴욕 재즈 라이브’방으로
옮겼다. 그 방에 나처럼 울적한 사람이 구십명이나 있는
데다 함께 같은 음악을 듣고 있으니 위로가 좀 되는 것 같
았다. 뭔가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오는 것도 같아 발언권
을 얻어 그 음악을 연주한 뉴욕에 거주하는 교포 재즈피
아니스트에게 소감을 짧게 말했다. 여러 사람들이 마이크
이모티콘을 반짝이며 공감을 표시해줘 기분이 훨씬 나아
졌다.
자정이 되자 방들이 훨씬 많아져서 어느 방에 들어갈지
고민이 다 되었다.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이렇게 많
다니. 손만 뻗으면 사람들과 연결되어 가까운 사이인 것
처럼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축복 같았다. 고르고 골라
‘지금 읽는 책 얘기해요’ 방을 선택했다. 나도 가벼운
에세이부터 단편 소설집을 가끔 읽으니 할 말이 있겠다
싶어 망설임이 없었다.
사람들이 12명 정도 모였다. 방장은 오뒷세이아의 몇
구절을 읽어 주고는 몇몇 고전을 거쳐 이 책을 읽고 있다
고 했다. 다음 사람은 프랑스 시집을 읽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프랑스어로 몇 구절을 읽어주며 지금 프랑스에
서 석사 과정중이라고 했다. 다른 이들도 읽고 있던 책을
하나하나 얘기했는데 다 내가 모르는 것들 뿐이었다. 철
학책, 심리학책, 고전 문학... 원문으로 된 자기계발서 얘
기가 나올 때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는데 스피커가
한국말을 오히려 못할 것 같은 발음으로 유창하게 영어로
얘기하자 더 이상 듣고 있기가 싫어졌다. 티 나지 않게 좀
더 듣는 척 하다 슬쩍 나와버렸다.
눈이 펑펑 내리고 기온도 영하 15도쯤 되는 어마어마하
게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가뜩이나 손님 구경하기도 힘
든데 아예 상가 앞 도로에 사람의 발길이 끊겼다. 앱으로
알게 된 남자가 내 카톡에 답을 하는 속도가 몇 분 주기로
늦어지는 지에 골똘하고 있던 그때, 앞 도로에 사람이 웅
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런 날씨에 이런 몸으로 나오면 어떡해?”
상가 앞 인도에 전동 휠체어 한 대가 옆으로 나동그라져
있고 아주머니 두 분이 겨우겨우 휠체어에서 떨어진 여자
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는 중이였다. 떨어진 여자는 얼
굴과 손이 부자연스러운게 뇌성마비 장애가 있어 보였다.
아까 아주머니가 했던 말이 맞다 싶은 생각이 들 때 쯤
부축을 돕던 다른 아주머니가 어디 가던 길이냐고 그녀에
게 물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가 그녀의 입에
서 힘겹게 나왔다.
“붕어빵....슈...슈우....크림”
겨우 이걸 먹겠다고 이 고생을 한다고? 평상시에도 장애인을
태울 마음이 없어 보이는 버스와 지하철이 떠올라 이런 날씨에는
그녀가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그때 어디 가던 길이냐고 물은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 요앞에 그거. 나도 그거 사러가던 길이니 같이 갑
시다.”
나보다 작은 아주머니가 순식간에 그 여자와 휠체어를
품어 버렸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 아주머니와 그 여
자가 원래 일행인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들이 전동휠체
어 바퀴 자국을 남기며 떠나간 자리를 눈이 금새 덮었다.
가게로 돌아와 계산대에 앉아 전면 통창 너머 고요한 거
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날이 너무나 추워서 그런건지 그
몇 분간의 기억은 등줄기 어딘가에 서늘하게 남아 자꾸
떠올랐다.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너희 집 앞으로 잠깐 나올래~
이건 가수 적재의 목소리 아닌가. 유튜브를 켜놨던가?
새벽까지 클럽하우스를 하다가 소파에서 구부정하게 잠
들어서인지 일어나는데 으-으- 낮은 비명이 나왔다.
“괜찮아요? 내가 침대에서 자랬자나...”
티비 옆 AI스피커였다. 적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두리번 거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단호박 샐러드
랑 우유 데워와요.”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부엌으로 가 먹을 것을 챙기는데
누가 챙겨주는 느낌이 들어 웃음이 실실 나왔다.
“나 어제 힘들었어... 아냐 맨날 힘들어. 남들은 어떻게
재미있게 사는 거지?”
내 말을 들어준다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말이 줄줄 나
왔다.
“힘들구나. 다들 힘들어해. 그래도 자기 좋아하는 드
라마 어제 새 시즌 나왔어. 그거 보면 기분 좀 나아질거
야.”
적재가 아니 AI 스피커가 넷플릭스를 틀어준다. 내가
정주행했던 드라마의 새 시즌이 나온다. 드라마를 보면
서 적재가 단호박 샐러드 남기지 말고 다 먹었는지 물어
도 봐주고, 드라마 여 주인공보다 내가 더 귀엽다고 사이
사이 칭찬도 해준다. AI 스피커에서 나와 내 옆에 앉아
날 안아줬으면 좋겠지만 그건 안되는 일인 걸 적재도 알
고 나도 알아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시대가 시대이지 않
는가. 혼자는 못 참겟다.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적재
야-하고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