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은 훌륭한 유희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일상은 매 순간 흥미진진해 진다. 요즘 내 관찰의 포커스는 대식세포다. 물론 세포가 눈에 보일만큼 큰 건 아니지만 놈을 소환할 방법은 알고 있다. 어렵지 않으니 지금이라도 해 볼 수 있다. 먼저 손톱을 세워 팔뚝 안쪽을 가볍게 한 번 긁는다. 보통은 이내 자국이 사라지겠지만 나는 세게 할퀸 듯 피부가 부풀어 오른다.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인 피부묘기증이다.
자가면역질환? 자가면역질환은 이름을 꺼내면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예로 아토피를 들면 누구나 알아차릴 정도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 사이에 흔하고 고질적인 질환 중 하나이다. 이름 그대로 내가 나에게 면역 반응을 일으켜 공격하는 현상인 자가면역질환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왜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까지 자기를 공격하는 것일까? 나빠진 환경 또는 체질이 원인이라는 정도로밖에 알려지지 않은 자가면역질환이 궁금했다. 현대는 아토피에서부터 탈모, 류마티스 등에 이르기까지 바야흐로 자가면역질환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려운 피부를 긁어가며 도대체 이해가 안가는 이 질환에 대해 알아보았다.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키는 주인공은 '대식세포'라고 한다(맘껏 돌아다닐 수 있는 유주세포여서 현미경을 통해 움직임이 마치 팩맨처럼 눈에 잘 보이기 때문에 더 주인공스럽다). 대식세포는 원래 우리 몸에 침입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잡아먹고 다른 면역세포들을 불러 모으며, 늙고 손상된 세포를 먹어 치우는 착한 대식가이다. 그런데 때론 가볍게 긁는 행위 조차 외부 공격이라 여길 정도로 과잉 대응하여 폭발적인 염증을 일으켜 결과적으로 자기 몸을 공격하게 된다. 자기를 지키겠다고 대응하고 제거하는 일에 너무 열심인 대식세포가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를 공격하게 되었다는 비극적 스토리가 자가면역질환인 것이다.
자신을 과보호하느라 여기저기 수류탄을 던져대는 대식세포를 보면 나와같은 이 시대의 '혼자’들이 떠오른다. 지금 우리는 핵가족이 최고인 시대를 지나 '나혼자 (잘) 산다'는 것이 미덕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밥상에 4인 가족이 둘러앉는 풍경보다 이제 유튜브를 보며 혼밥을 하는 모습이 더 익숙하다.
그래도 맛집의 줄은 길기만 하고 축제에는 수천 수만명이 모이므로 그 속에 있는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남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휴대폰을 통해 항상 접하기 때문에 맛집은 늘 붐비고 축제에는 수만명이 모인다. 모이되 교류는 없다. 부대끼고 옥신각신하는 경험은 겪을 일도 없고, 타인은 영원히 잘 모르는 존재로 남아 판타지의 대상이거나 혐오의 대상이 되기 쉽다. 아무 손해도 상처도 입지 않길 바라는 두려움에 자아를 둘러싼 벽은 점점 커져 간다.
커진 벽 안에서 누가 날 건드리지만 않으면 자족하며 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몸이 이상하게 말썽이다. 자가면역질환 상태인 사람의 대식세포는 비대해진 자아와 상당히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자아는 얇은 피부를 경계로 안쪽은 자기, 바깥쪽은 비자기로 구분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끊임없이 경계한다. 그때의 대식세포 역시 최전방인 피부에 닿거나 피부를 넘어 들어오는 모든 것에 민감하게 경계 반응을 보이며 몸을 전쟁-염증 상태로 만든다. 한편 벽을 친 자아가 이제 그 에너지를 자신을 비판하는데 쏟으며 스스로를 불안, 우울증에 몰아넣듯, 대식세포 또한 멀쩡한 내 몸 세포를 공격하기도 하는데 마치 내 몸을 죽이는 것처럼 보인다. 아! 따라쟁이 대식세포. 내가 하는 생각이 내 세포에게도 거울처럼 반영되는 듯한 모습이다.
매일 일터에서 경쟁을 강요당하는 순간, 아니 퇴근 후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쉬는 그 순간에조차 나의 대식세포는 어디 좀 부실해서 잡아먹어야 할 세포는 없는지 눈을 부릅뜨고 순찰을 돌고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순간에 내 자아 역시 끊임없이 나의 무능력을 탓하고 남들에 비해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점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가면역질환 상태의 대식세포를 통해 추정할 수 있는 건 내가 가진 인식에 따라 내 안의 세포조차 나를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나는 인식에 따라 변화하는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점이다.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지도 모르고 붙잡고 있던 생각이라는 것이 내 능력, 외모, 내가 가진 그 무엇이든 시장경제에 비싼 값에 내다 팔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불안이었다는 걸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불안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 두터운 보호막을 내려놓고 가벼워진 몸으로 조금 멀리 가보는 게 좋겠다. 걸으며 자연을 접하고 낯선 타자를 만나야 내가 집착하고 있는 고정 관념들을 의심하고 새롭게 바꿀 계기라도 생긴다. 이불 밖, 피부 밖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았다. 오히려 벽을 세우고 피부 안으로 움츠러들수록 몸 속에 전쟁이 나서 위험해지는 듯 하다. 이것이 우리 몸이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아픔을 통해 우리에게 그토록 알려주고자 하는 바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