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리상담
구청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심리상담을 받았다. 상담사의 일대일 심리 상담이 공짜라니 허술할 것 같아서 기대를 안했는데 꽤 괜찮았다. 50대 여자 상담사분이었는데 상담을 특별히 잘 해준다기보다 상담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 얘기에 집중해주는 사람으로서 충분했다.
남들 다 노는 불금이나 주말에 나만 혼자라는게 힘들어요.
혼자가 어때서요?
혼자는... 못 참겠어요.
혼자는 못 참겠다라는 그 느낌한테 뭘 원하는지 물어보도록 합시다.
불쑥 떠올라 내가 불행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그 느낌한테 말을 걸라니... 그게 내가 아니였어? 어쨌건 말을 걸 대상이라고 생각하니 그만 좀 나타나라고 달래고 싶어졌다. 그 뒤로 우리는 ‘혼자는 못 참겠다’가 지난 주에는 언제 찾아왔는지 그래서 어떻게 달랬는지 얘기했다.
처음에는 말하기가 꺼려졌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심리 상담이 진행되며 이번에는 뭘 얘기할까 하며 이상하게 신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 깊숙히 미뤄뒀던 엄마 얘기를 꺼냈다. 말을 시작하자마자 후두둑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우는걸 한참 바라보시던 상담사분이 엄마를 보내드리는게 많이 힘들었겠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거의 한 몸과도 같은 사이였어요. 다시 볼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엄마를 못 지킨게 다 제 탓 같아요.
그럼 편지를 써보세요.
...
만일 당신이 죽었고 엄마가 남았다면 엄마에게 어떤 편지를 보낼 것 같아요?
...!!!
그래서 팔 년 전 돌아가신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에게
죄책감 가지지마. 나는 온 마음으로 엄마를 사랑하고 있어.
난 엄마가 하고 싶은 것 맘껏하고 원래처럼 남 눈치 안보고 당당하게 사는 모습 보고 싶어.
비가 와서 창문에 타닥타닥 소리가 나네. 엄마라면 시적으로 표현했겠지.
죽음은 자연스런 변화야. 같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지금 생각만해도 벅차오르는 이 느낌은 같이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슬퍼하지마. 그런 모습 하나도 보고 싶지 않아. 지금 할 일은 어떻게 하면 엄마가 평화롭고 평안하게 지낼지 알고 실천하는 것 뿐이야.
언젠가 엄마와 내가 만날 날이 올거야.
그날까지 맘 하나 편안하게 지키면서 재밌게 살아. 매일도 좋구 가끔도 좋구 편지 쓸게.
따순 밥 챙겨 먹고 옷 따뜻하게 입고, 좋은 옷도 아끼지 말고 막 꺼내 입고 걸음걸이 당당하고 예쁘게 걸어다니자.
살다가 작은 고통, 불화 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서 대범하게 지내. 정말 중요한 건 너가 괜찮은지 그거 정도고 죽고 살고 문제 정도이니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남에게 의지하면 노예야. 그 사람이 내 행복과 불행을 쥐고 흔들어. 그냥 내가 내
마음과 몸을 잘 살피고 너무 날뛰지 않게 수행하는 삶이면 좋지.
외롭다고 너무 힘들어 하지마. 잘 지내는지 힘든지 여기서 늘 봐줄게. 이렇게 편지를 쓰자.
맛있는 거 먹고 창작활동 재밌으면 하고 일도 보람차게 좀 하고 하여간 활기차게 살아.
지금은 졸려 보이니 일단 씻고 눕자.
내 엄마... 잘 살어. 아니 그냥 사는 게 잘 사는 거야. 따뜻하게 잘자.
(쓰고 보니 내가 받았으면 하는 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