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토머스 머튼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갑자기 자신이 인류의 한 일원이라는 사실을 느끼며 모든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같은 인‘류’이기에 같은 유‘kind’에서 친절‘kindness’이 나오며, 우리 마음에 있는 친절은 바로 우리와 동류인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이라 하였다. 감이당 세미나 시간에 읽은 <토머스 머튼의 시간>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류’이기에 모두가 그 마음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앞서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으며 우리 하나 하나가 신의 변용이므로, 인류를 넘어 만물이 사실 알고 보면 한 근본이고 한 부류라는 위대한 비밀을 이제 막 알게 되었는데, 이 두 문장을 합하면 결국 ‘나’는 만물에게 다 친절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모두에게 친절하려면, 나에게 내재된 그리스도의 마음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토머스 머튼의 일기>를 좀 더 보며 힌트를 구했다.
토머스 머튼은 생각하기보다 체험하려고 노력한다. 그가 본받고자 하는 그리스도는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단순히 하느님의 작은 손가락 끝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신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하였다. 그래서인지 토머스 머튼은 고독, 현존, 신앙심 같은 내용도 관념화하기보다 체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모습이었다. 이미 유명한 카톨릭 수도사임에도 매일 오후를 숲 속에있는 ‘성녀 안나의 집’에서 홀로 보내며 자신이 추구하는 고독을 정체를 알아가고, 걸을 때 마주하는 자연 풍경에서 현존을 느끼며, 신비에 대한 감각에 열려있되 경외심안에서 두려움을 지니고 겸손해지는 것이 신앙심이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20년차 수도원 생활은 안주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다른 이들이 만든 기준과 형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정한 내면의 자유를 위해 자기가 살고자 하는 방식을 치열하게 추구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짧게 나마 하나임을 느끼는 순간 역시 진실된 체험을 나누는 때이다. 세미나를 함께 듣는 수강생들과 '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작년에 아프고 경제적으로 힘들었는데 누군가 권해준 시편 구절을 읽었더니 치유가 되었더라는 이야기, 버스 안에서 지체장애인과 어머니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더라는 이야기, 홀로 두려운 순간 나에게 미소지어준 낯선 이 덕분에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 이야기 등등…
언젠가 우리가 정말 하나라는 걸 느끼는 순간이 올 것 같은 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