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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주사위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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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혁 Nov 10. 2024

SF 단편소설 - 주사위

07



2

그의 글은 여기서 끊겼다. 원문이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는지, 의도를 가지고 뒤를 편집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온몸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본능이 새로운 자극에 지적인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결코 알아서는 안 되었을 정보에 대한 면역 반응을 수행하는 중인지 선뜻 구분할 수 없었다다. 잠깐이지만 이 글 전체가 거짓이며, 주사위 해석은 성공한 적이 없고, 죽음을 앞둔 평범한 남자가 나를 엿먹이기 위해 고생스러운 짓을 마다치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내심 그런 것이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방금 알게 된 사실에 비하면 그 편이 마음이 편했을 테였다.

지나치게 짧은 시간 동안 머리에 멋대로 쑤셔박힌 정보들을 차분히 정리하기 전에 절반이 넘는 여백 덕에 끝인 줄 알았던 글에 남아있던 마지막 장이 눈에 들어왔다. 첫장의 글을 게걸스럽게 읽어 내려갈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 몰려왔다. 글의 마지막과 함께 내가 알던 세상도 마지막을 맞을 것만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진부한 비유였다고 생각해 새어나온 헛웃음이 긴장을 조금 풀어주었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이미 그 마지막 무언가가 될 수도 있는 일에 발을 담근 것은 물론 그것이 목까지 차올라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저것을 읽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것이며, 어쩔 수 없이 글의 결말과 함께 내게 휩쓸려올 것이 무엇이든 받아들일 운명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떨림이 남아있는 손을 뻗어 종이를 넘겼다. 

다섯 번째 주사위를 당신에게 맡긴다. 이 글은 처음 작성된 뒤 누구에게도 공개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 글을 당신에게 전하는 이유는, 고심 끝에, 나의 추측이 맞다면 누군가는 외계 종족의 메시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스스로 마지막 주사위를 해석하고 그 뒤의 행동을 취하는 방법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내가 처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모든 진실을 알았을 때 정상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다섯 번째 주사위는 다행히 그 크기가 작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해석을 끝마치는 데에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테고 그동안 나의 삶은 끝날지도 모른다. 

나는 마지막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당신에게 전달했다. 회피, 양보, 그 어떤 것으로 해석해도 좋다. 마지막 주사위를 해석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상관없다. 마지막으로, 주사위에 담긴 마지막 말을 알게 된다면, 그것에 대해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하기를 바란다. 장담컨대, 그것은 매우 의미 있는 고민일 것이다. 행운을 빈다.

그가 진료소에서 보여준 성격이나 바로 앞 장에서까지 드러난 문체와 비교했을 때, 마지막 문장에서는 한결 진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가 느껴졌다. 그가 다섯 번째 주사위의 그림과 관련하여 짐작한 바가 있는 것은 분명했으나, 감이 선뜻 잡히지 않았다. 명쾌하고 직설적인 글이 열 쪽이나 이어졌었지만, 마지막 한 장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이 하나 건너 하나 꼴로 이어졌다. 왜 하필 내게 글을 보냈고, 다섯 번째 주사위의 그림은 무엇을 담고 있으며, 왜 그는 그것을 직접 확인하지 않았을까. 또, 그는 대체 마지막 말의 무엇을 추측했고, 그것에 대해 왜 내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일까. 내가 해야 할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크기에 비해 가벼운, 아직 뜯어보지 않은 택배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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