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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주사위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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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혁 Nov 12. 2024

SF 단편소설 - 주사위

08

그것과 ‘눈’을 마주치고 있자니, 왜 십 년 간 그것을 해석하지 못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성냥만도 못한 크기의 정육면체에 새겨진 무늬는 어떤 정보도 담고 있지 않은 듯 무질서했다. 새삼 그가 한 일의 위대함이 실감되었다. 그는 주사위의 비밀을 밝혀냈다. 다섯 번째를 제외한 나머지 주사위를 직접 해석해서 내게 전달했고, 그 방법 또한 글을 통해 자세히 알려주었으며, 심지어는 마지막 주사위의 원본까지 친절하게 전달해주었다. 

그 덕분에 이제 외계 종족의 마지막 말은 내 앞에 있었으나, 그렇다고 무작정 수술용 칼로 ( 잘릴지도 의문이었으나 ) 주사위를 자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숫자 ‘2’를 반으로 가른 이차원 종족과 다를 바 없다는 그의 글이 떠올랐다. 작업을 위해서는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중앙 광장, 정부 소속 연구실 등을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물건을 구했다. 증폭된 빛을 이용해 주사위를 극도로 얇은 면으로 절단하는 절단기가 가장 중요했고, 그 외에도 잡다한 장비들로 진료소의 한 구석이 가득 찼다. 그동안 그의 글을 몇 번 더 읽으며 내용을 정리했다. 어떤 부분들을 읽을 때마다 강도는 약해졌지만 파도처럼 밀려오는 흥분 상태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십 년 전에 사차원 (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 에 존재하는 외계 종족이 인간에게 다섯 개의 주사위로 이루어진 메시지를 보냈고, 그 메시지는 삼차원 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일주일 전에 치료한 한 남자가 우연히도 주사위를 처음으로 해석한 천재 물리학자였고, 그가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고 하필 내게 모든 것을 맡겼다. 글로 남겨 정리하면서도 믿기 힘들 사건들이 고작 보름 동안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택배가 온 밤에 완벽한 반달이었던 달이 꽉 찰 무렵, 주사위를 자를 준비를 마쳤다. 한동안 일을 줄이고, 진료소의 삼층을 통째로 투자해야 했다. 그의 글에는 정확히 몇번 주사위를 잘라야 하는지 나와 있지 않았다. 고민 끝에 주사위를 삼천 번 자르기로 계획했다. 앞의 네 주사위가 가졌던 정보량을 생각하면 이마저도 부족할지도 몰랐으나, 그 이상은 내가 가진 절단기의 성능으로는 무리일 듯했다. 하루에 오십 개의 이차원 그림을 얻는 것을 목표로 했다. 예상보다 큰 소음 때문에 밤에는 작업이 불가능해서, 어쩔 수 없이 진료 시간마저 줄였다. 처리할 수 있는 환자 수가 절반 정도로 줄었으니, 주변의 동료들에게 좋지 않은 건강을 핑계로 대어 양해를 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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