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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주사위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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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혁 Nov 10. 2024

SF 단편소설 - 주사위

06

이러한 교훈을 가지고 두 번째 주사위를 살폈다. 첫째 그림에 나타났던 인간 세상이 갑자기 압축되어, 어느새 이차원으로 변했다. 그러나 방금 전과 동일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차원 세상 속에서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을 했고,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갔다. 

그 순간, 그림에 표현된 삼차원 세상에서 동시다발적인 폭발이 발생했다.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뿔이 달린 존재 여럿이 폭발과 함께 쓰러졌다. 이들이 외계 종족을 표현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시 이차원 인간 세상이 나타났다. 물리학자들이 입자를 충돌시켰다. 한번은 융합하기도 했다. 다시 삼차원의 폭발이 발생했고, 또 다시 물리학자들이 등장했다. 폭발은 물리학자들이 잠에 들자 멈췄다.

세 번째 주사위에서, 폭발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림의 배경은 바로 전의 상황과 같았다. 뿔 달린 존재들은 이차원으로 표현된 인간 세상을 바라봤다. 아니, 노려봤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들은 이차원 세상에 손을 올렸다. 이차원의 평면에 뭔가를 새겨 넣기도 했다. 그러자, 이차원 세상에는 기묘한 일들이 벌어졌다. 지진이 발생해서 의술원이 무너지고, 거대한 해일이 중앙 광장을 덮쳤다. 이차원 세상의 나약한 인간들이 지워져 나갔다.

그러나 다시 물리학자들이 등장했고, 또 입자를 충돌시켰고, 삼차원 세상의 폭발을 일으켰다. 비슷한 양상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두 번째 그림에서는 외계 종족만이 계속해서 공격받았다면, 이번에는 두 개의 다른 차원 사이에 발발한 전쟁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폭발과 자연재해는 그림의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두 차원의 존재들 모두 죽고 태어나기를 반복했다.

네 번째 주사위가 미세하게 다른 주사위들보다 컸던 것은 아마 비교적으로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처음에는 이차원 세상에서 과학이 발전해온 과정이 그림으로 나타났다. 과학뿐 아니라 전반적인 인류사가 담겨 있었다. 초기에 세상의 발전 속도는 아주 느렸다. 몇 백만년이 흐를 동안 인류의 진보는 걷는 데 사용하는 발의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는 점에 불과했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보폭을 넓히더니, 어느새 눈으로 따라가기 힘든 속도로 변화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 이차원 세상은 현재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외계 종족의 시선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세번째 주사위의 가장 처음 상황과 비슷한 구도의 그림이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존재한다면 그들의 표정이었다. 전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던 감정이 녹아났다. 감히 확신하건대 그 감정은 옅지만 분명한 공포심이었다.

보장컨대 그림의 묘사 자체에는 커다란 오류가 없음을 확신하나, 주사위를 통해 외계 종족이 전달하고자 한 정보의 해석은 주관적일 수 있으며 들어맞지 않을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하므로, 그것을 이 글에 싣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그 해석의 방향을 제공하는 것 또한 이 글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판단하였다. 나의 해석에 의문을 가진다면 주사위를 직접 해석하거나, 이 글의 묘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여도 좋다. 결론적으로, 주사위에 대한 나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인간 세상의 물리학 연구는 너희의 삼차원 세계에서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만 쓰이고 있으나, 너희는 그것의 심각성을 알지 못한다.’

‘인간의 물리학은 세상을 삼차원으로만 이해하는 것에 그치므로, 그 이상의 차원에서 입자를 조작하는 것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사건임을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 세상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너희의 기술이 가지는 위험성을 통제할 만한 방법을 연구해 왔으나, 고심 끝에 적절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너희의 물리학이 발전하는 속도를 생각해 봤을 때, 빠른 시일 내에 개입하지 않으면 우리 세계는 막대한 피해를 경험할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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