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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은그림 Dec 17. 2022

즐겁게 쓸어요

12월.

겨울답게 춥고, 고드름도 얼고, 눈도 내렸다.


옆 동네엔 재개발로 인해 이사를 가 빈 집들이 많다. 철거를 곧 시작하는 이 동네 길에 눈을 치울 사람이 없다.


눈이 오면 으레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운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밭에 내 발자국 찍으며 걸어가는 기분은 즐겁지만, 이후에 눈을 쓸어내는 사람에게는 부담이다. 몸무게만큼 눌린 발자국이 빗자루로 쓸어도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빗자루로 여러 번 박박 문질러야 없어진다.

그래서 하얀 눈 밭을 밟는 낭만을 즐기기보다는 우선 쓸어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있다.

눈싸움하고 노는 건 그 이후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지만 많이 쌓이면 치우기 힘들어 계속 쓸어냈다. 우리 집 앞으로 쭉 이어진 골목에서 큰길 어귀까지, 내 집 남의 집 할 것 없이 허리 숙여 오직 땅만 보고 열심히 비질을 했다.

내 앞을 딱 막아선 수면잠옷에 삼선 슬리퍼의 아저씨.

어디선가 염화칼숨을 가져와 쌓인 눈 위에 뿌리고 있었다.

열심히 비질을 한 내가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눈 내리면 비질을 하지 않아도 눈을 녹이는 염화칼슘이 많이 뿌려져 있다.

도로는 이미 제설차량이 뿌리고 다녀서 눈이 녹아 없지만, 인도는 사람이 눈을 치우지 않는 이상 눈은 아직 남아 있다.

손쉽게 눈을 녹이는 염화칼슘이 도로나 인도를 상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적당히 뿌려야 하는데 너무 많이 뿌린 곳도 보인다. 


눈이 오면 즐겁다.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으며 우리의 감성은 충만해진다.

하지만 출근도 해야 하고 빨리 어딘가로 가야 한다. 그래서 도로나 거리의 눈은 치워야 한다.

눈 오는 날 발자국 찍어 남기는 낭만은 없어도 

빗자루로 눈을 치우는 낭만은 아직 간직하고 싶은 1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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