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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연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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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은그림 May 13. 2022

볕이 좋아

걸어본다

작년에 비타민D 부족 진단을 받고 올 초에 검사해서 또 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아서인지 바닥을 치던 수치는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피부 (brunch.co.kr)


한동안 우울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 집에 혼자 있으면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하루 종일 집순이처럼 집에 처박혀 누워있던지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주말이 되어 남자 둘이 있는 본가에 가면 의무감에 몸을 움직이며 반찬을 만들던지 청소를 하던지 뭔가를 했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본가에서 내 집까지 걸어 다니기로 했다.


처음 독립을 했을 때는 본가 근처여서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며 걸어 다니기 좋았지만, 다른 동으로 이사하고 보니 한번 오려면 마을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어서 자차로 가면 금방이지만 한 번에 가는 대중교통 노선이 없다.

걸어서 편도 40분이 걸리는데 만보기로 6000보쯤 되는 것 같았다.

작년에 집 문제로 본가에서 출퇴근한 적이 있었고 볕이 좋은 오전에 팔, 다리 다 내놓고 운동 겸 걸으면 일광욕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5월은 봄보다는 여름에 가까운 날씨를 보인다. 


저번 주에는 이팝나무 꽃이 만발해 축제를 하더니,


이제는 아카시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포도송이 같은 뭉텅이 꽃 향기에 아찔해질 정도였다.

꽃잎에 바람에 날려 바닥에 떨어진다.

그다음은 어떤 꽃 차례일까.


걷다 보니 건물 한 귀퉁이에 우뚝 솟은 민들레를 발견했다.

노란 꽃은 어느새 하얀 홀씨를 만들었나 보다.


어릴 때는 민들레 홀씨를 불어 날려버리기도 했지만, 척박한 보도블록 틈새에 홀로 꽃을 피운 이 녀석을 본 순간 날려버리기보다는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 언제까지 저 모습 그대로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그곳을 지나는데 민들레는 홀씨를 다 날려 보내고 대머리가 되어 있었다.


자손을 많이 퍼트리면 민들레의 입장에서는 좋을 테지만 마지막 할 일을 다 마친 민들레 같아서 가여웠다.



집 근처 음식점 앞에 누워있는 개 한 마리.

너도 일광욕하니?

너무 편안해 보인다.


기가 막히게도 얼굴 쪽은 그늘에, 몸통은 햇볕을 보고 누워있다.

분명 비타민D가 부족한 멍멍일 거다.


걸으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낀다.

내 마음의 우울과 슬픔도 걸으면서 차차 좋아지길 바라본다.

물론 비타민D 생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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