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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연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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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은그림 Jun 17. 2022

이른 여름의 열매

나무의 시간

사람들은 나무가 봄에 꽃을 피울 때만 시선을 준다. 여름이 되면 푸른 잎사귀로 가득한 나무들이 모두 비슷비슷한 것 같아 보이고, 가을에 화려한 단풍이 들 땐 '예쁘다' 하며 한번 또 봐주다가, 겨울에 모든 걸 떨군 뒤의 나무에게는 날씨만큼이나 차갑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무의 모든 것에 관심이 생겼다. 

‘도심의 나무’하면 도로변의 가로수가 제일 먼저 떠오른 나였지만, 주택가 곳곳을 산책하면서 여러 종류의 나무들을 발견하고 관찰하는 소소한 재미를 느낀다.     


꽃이 핀 후엔 열매를 맺는다.

매화꽃은

매실을 만들었고,

살구꽃은

살구를 만들었다.

벚꽃은

버찌를 만들었고,

앵두꽃은

한가득 앵두를 만들어 떨어뜨린다.         


 

버찌와 오디, 앵두는 여름으로 가는 문턱인 지금이 제철이다.

요맘때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작고 까맣고, 빨간 열매들.

도심의 구석에서 잘도 자라 열매도 맺는구나.     

길에 떨어진 열매 몇 개 주워 먹어보니 어찌나 달콤하고 새콤하던지.

손과 입이 까맣게 물들어도 좋았다.


여름의 열매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먹을 수 있구나.

도심에서도 여름 열매들을 맛볼 수 있다니 나는 행복한 도시인이다.    

 

이미 이른 봄에 꽃을 피웠고 진작에 열매를 맺었지만 늦여름이나 가을에 익는 열매들도 있다.    


산수유, 복사나무 꽃사과, 모과 등 열매를 달고 있지만 숙성되지 않은 상태다.

너희들은 더운 여름을 열매들과 더불어 견뎌내야겠구나. 힘내!     


모든 나무가 봄에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지금 꽃피는 나무들도 있다.

감나무와 포도나무는 지금 막 꽃이 지고 열매를 키워나가는 중이고, 밤나무와 대추나무는 한창 꽃이 피고 있어 가을에나 먹을 수 있다.     

나무들은 이렇게 계절의 시간에 맞춰 각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자신의 일을 잘해나가고 있다.

그에 비해 나는 지금 꽃을 피우는 시기일까, 열매를 맺는 시기일까.

혹시 나무보다 못한 사람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무들의 작은 변화를 잘 포착해서 기록하고 싶은데 게으른 나라서 자연의 템포를 따라가는 게 쉽지 않다.

일찍 열매를 맺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름을 나거나,  여름 내내 열매를 달고 숙성시키며 치열하게 살아갈 

너희들을 기억할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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