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과 맨발이 만난 기록
나는 3년째 맨발 걷기를 실천하고 있다.
시작은 "정말 건강에 좋을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몸이 가벼워진 건 분명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더 깊은 본질이 있을 것 같았다.
그 답을 찾고 싶던 무렵,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만났다.
이 책의 화두는 분명하다.
자연과 영혼의 회복이다.
1976년 출간 이후 현대 고전으로 남은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내 영혼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누군가 내게 단 한 권의 인문학 서적을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책을 건네고 싶다.
본문 전체가 대지에 바치는 헌사처럼,
자연에 대한 경외와 사랑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5살 소년,
이름은 "작은나무".
체로키족 인디언 소년의 시선으로 그려낸 성장소설이다.
문장은 숲속 오솔길처럼 구불구불하지만,
그 길 따라가다 보면 진실에 닿는다.
천천히 음미하며 자연의 속도로 읽어야 하는 책이다.
맨발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두 대목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첫 번째.
주인공이 고아원을 떠나 집 앞에서 구두를 벗는 장면이다.
"구두를 벗어버렸다.
산길이 느껴져요.
비로소 흙의 따뜻한 온기가 다리를 지나 온몸으로 퍼져갔다."
나는 이 페이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책상 앞이었으나,
일상의 소음은 모두 사라지는 듯했다.
그것은 활자가 아니라 내 발바닥이 생생하게 기억하는 촉감이었다.
3년간의 맨발 여정에서 수없이 느꼈던 감각,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느낌을
작은나무는 단 한 문장에 담아냈다.
구두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었다.
백인 사회가 강요한 문명의 껍데기였고 대지와 단절시키는 장벽이었다.
그것을 벗는 행위는 문명의 속도를 거부하고 조상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의식이었다.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겠다는 선언이었다.
두 번째는 영혼의 치유에 관한 장면이다.
"영혼은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바람과 나무와 시냇물과 새들이 불러준 그 부드러운 노랫소리로 내 마음이 깨끗이 씻겼기 때문이다."
이 표현에 마음이 꽂혔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지만,
영혼이 아플 때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작은나무는 알고 있었다.
자연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바람과 나무와 시냇물과 새들이 있는 곳으로 말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맨발로 걷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음을.
나는 그저 걷고 있었던 게 아니라,
자연의 품속에서 치유받고 있었다.
흙의 감촉, 풀잎의 촉촉함, 돌의 차가움.
그 모든 것이 내 영혼을 맑게 씻어주었다.
맨발 걷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다.
땅과 하나 되는 방식이자,
자연의 속도로 살아가는 연습이었으며,
영혼을 잃지 않기 위한 작은 의식이었다.
소년에게 신발은 필요치 않았다.
아니, 신발은 방해물일 뿐이었다.
그가 되찾고자 한 것은 신발 너머에 존재하는
땅의 감각과 영혼의 숨결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우리도 한때는 자연의 감촉을 기억했을 테다.
흙과 풀, 돌의 거친 질감을 느끼며 살았을 그 시절을.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신발을 신었다.
아스팔트를 깔았다.
너무 빨리 걸었다.
그 대가로 어느새 영혼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저자 포리스트 카터가 이 책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감각을 기억하게 하고,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잊고 살아왔는지를 상기시키기 위해서.
이 책의 문장은 특별하다.
물 흐르듯 막힘없고,
자연을 유랑하는 바람처럼 거침없이 읽힌다.
그러면서도 깊다.
잔잔한 시냇물이 골짜기를 만들듯 부드럽게 스며 오래 머문다.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이 문장들이 내 발걸음과 닮아 있다는 것을,
글 또한 맨발처럼 써야 한다는 것을.
급하지 않게,
땅을 디디듯
한 문장씩.
그래서 문장은 살아 숨 쉰다.
흙내음을 가득 머금은 것처럼.
그날 이후 글쓰기는 내게 또 하나의 맨발 걷기가 되었다.
책을 덮은 11월 어느 오후,
늦가을 햇살이 따뜻했다.
집을 나섰다.
왕의산 숲길까지는 15분.
맨발로 첫걸음을 내딛자 밤색, 노란색, 붉은색으로 물든 단풍이 발밑에 쌓여 있었다.
두 번째 걸음에 흙이 느껴졌다.
축축한 흙이 악수하듯 발바닥을 감쌌다.
그 순간 작은나무의 글귀가 다시 떠올랐다.
"비로소 흙의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갔다."
정말 그랬다.
11월의 흙은 포근했다.
그 온기가 발끝에서 가슴까지 차올랐다.
천천히 걸었다.
말은 필요 없었다.
늦가을 숲길 위에서 내 영혼은 충분히 따뜻했으니까.
이제 분명히 안다.
맨발 걷기는 건강을 넘어 영혼을 위한 의식이라는 것을.
신발 벗는 일은 잃어버린 나를 되찾는 여정이라는 것을.
지금, 신발을 벗고 땅을 밟아보라.
당신 영혼 또한 따뜻해질 것이다.
작은나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