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맨발에서 시작된다

발바닥으로 듣는 대지의 언어

by 김수만

비 그친 오후,
순천만국가정원 앞 오천그린광장을 맨발로 거닌다.
비 머금은 잔디는 짙은 초록빛을 띠고,
곁을 지키는 동천은 조용히 흐른다.
낡은 통나무 벤치 위에 내려앉은 정원의 고요.
그 평온한 정경이 나를 명상 속으로 이끈다.

-순천 오천그린광장 전경-


내면의 나를 만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여행지에서,
누군가는 글쓰기나 달리기에서 자신을 찾는다.
나는 그 길을 맨발 걷기에서 찾았다.

흔히 명상하기 좋은 곳을 물으면 답은 다양하다.
오대산의 깊은 숨결이나 섬진강의 잔잔한 물결,
혹은 순천 어싱길의 싱그러운 초록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사실이 있다.
명상은 특정 명소가 아니라,
우리의 발바닥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어디든 신발 벗고 서는 시,
그곳이 곧 최고의 명상 자리다.
집 앞 황톳길도,
동네 공원 흙길도,
이름 모를 계곡의 거친 돌길도 명상하기엔 더할 나위 없다.

한때 나는 명상에 심취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가부좌를 트는 법부터 숨 쉬는 법,
각종 주문과 의식을 탐구했다.
책 읽고 강의 들으며 명상 앱까지 설치해 보았다.
하지만 대부분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방식들은 나를 이론의 늪에 매몰시켰다.


"현재에 집중하라."
명상 서적마다 강조하는 글귀였지만,
정작 내 생각은 늘 지금을 벗어나 있었다.
몸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으나 마음은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시간의 방랑자'였다.
요동치듯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멀어졌다.

이론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호흡에 집중하라.
생각은 흘려보내라.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워라.
그러나 머리로 얻은 평온은 삶 앞에서 쉽게 흔들렸다.
아는 것과 살아내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맨발로 흙을 밟았다.
차갑고 거친 감촉이 발바닥을 번쩍 깨웠다.
날것의 땅을 만나는 즉시 비로소 생각이 멈췄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지금'의 촉감만이 또렷했다.

책 속에서 그토록 찾던 "현재"는 멀리 있지 않았다.
발아래 흙의 온기와 결 속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그날 알았다.
현재에 머무는 은 붙잡는 기술이 아니라,
맨발로 땅을 딛는 행위였음을.

명상에 대한 갈증은 맨발로 딛는 한 걸음으로 충분했다.

굳이 가부좌를 틀지 않아도,
만트라에 의지하지 않아도,
싱잉볼 소리를 빌리지 않아도 좋다.
격식 차리는 명상보다 이 정직한 걸음이 훨씬 깊은 울림을 주었다.

허리 펴고 그저 들숨과 날숨을 바라보며 걷기만 하면 된다.
신발 벗고 걷는 위만으로,
우리 몸은 이미 '현재'라는 시간에 닿아 있다.
우리 발은 태초부터 땅의 언어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일반적 명상이 호흡으로 마음을 모은다면,
맨발 걷기는 감각으로 마음을 모은다.
여기에 호흡이 더해지면 걷는 행위 자체가 '움직이는 명상'이 된다.
발바닥 촉감과 깊은 들숨이 만날 때,
'지금 여기'는 더욱 또렷해진다.

왜 맨발은 쉽게 마음을 붙잡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감각은 언제나 현재에만 머물기 때문이다.

생각은 과거나 미래를 떠돌 수 있지만,

발바닥 감각은 오직 지금 밟고 있는 땅만을 느낀다.


땅과 맞닿는 순간,

몸은 대지와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진다.

일상에 쌓인 팽팽한 긴장들이 발바닥을 통해 흙 속으로 스르르 빠져나간다.

신발에 갇혀 있던 신경들이 깨어나 지구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가장 예민한 통로가 된다.

누군가는 이를 어싱, 혹은 접지라 부른다.


차갑거나, 따뜻하거나, 부드럽거나, 거칠거나.
그 생생한 자극이 잡념을 멈추게 한다.
감각을 통한 집중,
가장 자연스러운 명상이 되는 이유다.

함께 걷는 이들은 말한다.

매일 한 시간의 맨발 걷기로 수면과 삶의 질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복잡했던 마음이 단순해졌다고.

맨발 걷기는 특별한 수행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어디서든 즉각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신발 벗는 작은 용기뿐이다.

명상이 어렵고

시간이 부족
생각이 많아 잠 못 이루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명상은 나를 향한 깊은 위로며,
위로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맨발 걷기라고.

신발을 벗어라.
땅을 밟아라.
발바닥에 마음을 실어라.


​복잡한 이론도,
긴 시간도 필요치 않다.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내딛는 한 걸음,
그것이면 충분하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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