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표정을 바꾸는 순간들
맨발아카데미 모임에는 독특한 사진 문화가 있다.
한 시간 남짓 걷고 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원을 그린다.
카메라를 중앙에 두고 어깨동무한 채 서로의 얼굴을 모은다.
동시에 외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찰칵 소리와 함께 일제히 웃음꽃이 터진다.
-맨발아카데미 회원들-
그날 찍힌 모습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서로에게 전달된 온기이자,
땅에서부터 밀고 올라온 생생한 표정이었다.
이 사진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완벽하게 꾸미지 않았음에도 모두의 얼굴이 환하다.
좁은 앵글 속에는 눈 감거나 입 벌리거나,
브이 혹은 하트 날리는 익살스러운 얼굴들이 가득하다.
각 잡힌 증명사진도,
SNS용 연출 사진도 아니다.
배경 역시 단출하다.
파란 하늘 한 조각, 연둣빛 잎사귀 몇 줄기가 전부다.
특별한 포즈도 화려한 구도도 없는데,
사진은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 넘친다.
이유는 하나다.
맨발로 흙을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카메라는 풍경이 아니라,
흙이 선물한 표정만을 오롯이 담아냈다.
맨발과 흙의 만남.
그것이 이 평범한 기록을 '인생샷'으로 변화시킨 힘이다.
대체 어떤 힘이 사람의 표정까지 바꿀 수 있을까.
우리에게 흙은 그저 발밑의 땅바닥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흙은 살아 숨 쉬는 생명체였다.
작은 티스푼 하나에도 1억 개의 생명체가 숨 쉬는,
우주의 또 다른 조각이었다.
우주에서 오직 지구에만 존재하는 이 경이로운 물질을 찾아 사람들은 먼 외계까지 헤매지만,
정작 살아 있는 우주는 우리 발밑에 있었다.
맨발로 땅을 딛는다는 것은,
단지 서 있는 행위가 아니다.
생명과 연결되는 숭고한 순간이다.
그 연결은 우리를 대지에 붙잡아 주고,
묵은 생각을 풀어주며,
마침내 표정까지 바꾼다.
걷는 동안 발바닥에서 시작된 온기가 온몸을 타고 올라 얼굴로 스며든다.
그때 번지는 미소는 억지가 아니다.
땅이 정성껏 빚어 올린 선물이다.
이날 내가 선 곳은 보성 벌교 중도방죽이었다.
해풍에 물든 노르스름한 땅 위에 맨발로 섰다.
5월의 여린 갈대는 바람이 스칠 때마다 사르륵 소리 내며 흔들렸고,
초록이 일렁이는 방죽길 위로 우리는 천천히 떠다니듯 걸었다.
이슬 묻은 풀섶을 지나며 한 시간 남짓 흙을 딛자,
내 얼굴도 스스로 환하게 피어났다.
땅의 온기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밝아진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은 순간이었다.
-중도방죽 갈대-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인생샷 찍으려면 어디가 좋은가요?"
대개 숨이 멎을 듯한 절경이나 이국적인 경치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이렇게 답한다.
연두색 잎사귀 몇 줄기와,
파란 하늘이면 충분하다고.
흰 구름 두어 조각 걸쳐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진짜 배경은 사진 너머에 있었다.
렌즈에는 담기지 않아도 표정에는 고스란히 묻어나는 배경.
맨발로 느낀 땅의 온기다.
사진 속엔 없어도 웃음의 뿌리는 발바닥에서 시작된다.
흙을 밟은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이자,
살아 있는 대지가 빚어낸 얼굴이다.
풍경은 사진을 만들고,
흙은 표정을 만든다.
행복은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행복은 발끝에서부터 올라온다는 것을.
소란한 일상에 지쳤다면 신발 벗고 누군가와 원을 그려 얼굴을 모아보라.
흙이 전해주는 온기가 당신의 얼굴을 환하게 열어줄 것이다.
진짜 웃음은 흙에서 시작해 하늘 끝까지 단숨에 솟아오른다.